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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와 삶의 불안정성에 대한 은유, 남쪽(El Sur, 1983)

 

  내 기억 속에 '남쪽'이란 영화는 페르난도 솔라나스(Fernando E. Solanas)의 작품이었다. 그런데 역시 제목이 '남쪽'으로 번역되는 또 다른 영화가 있다. 스페인의 감독 빅토르 에리세(Víctor Erice)는 1983년에 'El Sur'를 만들었다. 페르난도 솔라나스의 영화는 정관사 el이 없는 'Sur(1988)'로 표기된다. 빅토르 에리세는 프랑코 정권의 폭압적 지배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벌집의 정령(El espíritu de la colmena, 1973)'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현대 스페인 역사는 '프랑코'란 이름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프랑코는 1975년에 사망했지만, 스페인 정부가 국립 묘역인 전몰자의 계곡에서 그의 유해를 이장시킨 것은 2019년이었다. 독재자의 그림자는 죽어서도 스페인을 암묵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빅토르 에리세의 '남쪽'에서도 프랑코의 어두운 그림자가 감지된다.

  영화는 어린 소녀 에스트렐라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별'이란 뜻의 이름을 지닌 소녀는 별 모양의 반지를 늘 끼고 있다. 에스트렐라는 의사인 아버지 아구스틴, 평범한 주부인 엄마 줄리아와 함께 스페인 북부에서 살고 있다. 소녀에게 아버지는 신비한 비밀과 영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비춰진다. 진자로 수맥을 알아내 마을 사람들이 우물을 파도록 돕는 아버지는 에스트렐라에게 흠모의 대상이다. 그러나 혼자만의 시간을 대부분 다락방에서 보내는 아버지의 모습에 어린 딸은 쉽게 다가서지 못한다. 엄마는 아버지가 프랑코 충성파였던 할아버지와 싸우고 '남쪽'의 고향집을 떠났다고 일러준다. 어느 날, 에스트렐라는 아버지의 다락방 서랍에서 '아이린 리오스'라고 써진 종이를 발견한다. 그리고 얼마 후, 시내 영화관 앞을 지나다 본 영화 포스터에 그 이름이 적혀있다. 소녀는 영화관에서 나오는 아버지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는다. 아가씨가 된 에스트렐라는 어렵게 아버지에게 여배우와의 관계를 묻지만, 아버지는 답해주지 않는다. 예기치 않았던 아버지의 죽음을 겪고, 에스트렐라는 아버지가 말해주지 않은 과거의 삶을 살펴보기 위해 '남쪽'으로 떠난다.

  놀랍고 허망하게도,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아니, 무슨 영화가 말을 하려다 말고 중간에서 그렇게 끝나는가? 그렇다. 이 영화는 미완성작이나 다름없다. 에스트렐라가 남쪽으로 떠난 이후의 이야기가 영화의 후반부를 채우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제작자는 도중에 제작 중단을 통보했고, 빅토르 에리세는 그것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만 했다. 표면상의 이유는 '제작비 부족'이었지만, 에리세는 다른 모종의 이유가 있을 거라며 이후 여러 번에 걸쳐서 불만을 토로했다. 영화의 원작은 에리세의 부인이 쓴 소설이었다. 굳이 소설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 언급하자면, 에스트렐라는 '남쪽'에서 이복 오빠를 만나게 된다. 여배우는 아버지의 과거 연인이었다. 아버지의 숨겨진 삶의 이야기는 결국 영화로 만들어질 수 없었다. 에리세는 이미 찍어놓은 전반부를 가지고 편집을 해서 '남쪽'으로 내놓았다.

  미완성작이 반드시 실패작을 뜻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영화를 이야기 중심의 서사로 파악한다면, '남쪽'은 분명 불완전한 작품이다. 그러나 소녀 에스트렐라가 아버지의 비밀스런 과거와 조금씩 조우하면서 성장하는 과정 그 자체로도 이 영화의 서사는 충만하다. 무엇보다 사물 그대로의 색감을 온전히 살리면서 빛과 어두움을 대비시킨 촬영이 무척 빼어나다. 에스트렐라가 살고 있는 북쪽 마을의 풍경, 에스트렐라의 첫 영성체와 파티 장면을 비롯해 '남쪽'은 풍성한 회화적 이미지로 채워져 있다. 이 영화가 절반의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많은 이들에게 완전한 작품으로 여겨지는 데에는 그런 영화적 요소들 때문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영화가 말해주지 않은 나머지의 이야기들, 에스트렐라의 남쪽 여행과 아버지의 과거의 삶에 대한 이야기 없이도 온전하게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남쪽'을 반드시 스페인 현대사와 연결지어서 해석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물론 에스트렐라의 아버지는 공화파로 프랑코 지지자인 할아버지와의 불화로 고향을 떠난 인물로 나온다. 그러나 영화는 에스트렐라와 아버지의 관계, 한 소녀의 '성장'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가장 가까운 존재인 부모와 관계를 맺는 방식, 그것이 한 사람이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한다. 어린 에스트렐라는 혼자 있는 시간에 익숙해진다. 표현하기 보다는 속으로 감추고, 아버지와 거리를 두면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인생에는 결코 말할 수 없는 어떤 비밀이 있다는 것도 받아들이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한 사람을 알고 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그의 삶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것으로 그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 아닌 타인의 삶에는 말해지지 않은 것, 알지 못하는 접혀진 시간들이 존재한다. '남쪽'은 관계와 삶의 불완전성에 대해 넌즈시 일러준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남쪽'을 실패작이라고 느끼지 않는 데에는 영화가 담고 있는 그러한 인생의 진실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 출처: criterionchann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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