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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테렌스를 만나다, The Long Day Closes(1992)

  

  영화를 보다보면 가끔은 감독 자신에 대한 사실을 추론 내지는 직감으로 알게 되는 때가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와 동시대에 활약했던 키노시타 케이스케(木下惠介) 감독의 '오늘 또 오늘(今日もまたかくてありなん, 1959)'을 보는데, 유부녀인 여자 주인공이 알게 되는 퇴역 군인과의 관계가 영 부자연스러웠다. 두 사람은 동네 주민으로서 서로 예의를 깍듯하게 차리는, 전혀 이상한 사이가 아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그 어떤 성적인 긴장감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튼 뭔가 어색하고 딱딱한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감독에 대한 자료를 읽다가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화 속 캐릭터들의 관계에서 내가 느꼈던 그 이질감은 감독의 성 정체성에서 나온 것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테렌스 데이비스의 1992년작 'The Long Day Closes'의 경우에도 그런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1950년대의 영국 리버풀을 배경으로 12살 소년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영화에서 감독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암시하는 주요한 장면들이 있다.

  말수가 없고 내성적인 소년 버드는 주로 집안에 머물면서 창밖으로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느 때처럼 밖을 내다 보던 버드는 집 건너편의 공사 현장에서 젊은 인부와 눈이 마주친다. 청년은 버드에게 윙크를 하고, 소년은 당혹스런 표정으로 창문 안쪽 벽으로 얼른 돌아선다. 동성애자로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꾸준히 영화 속 소재로 다루었던 테렌스 데이비스의 작품들을 본 이들에게 그 장면은 명백한 암시일 것이다. 그러나 사전에 감독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도 없고, 처음으로 보는 그의 영화에서 나의 눈길을 끌었던 장면은 버드가 목욕하는 형의 등을 닦아주는 부분이었다. 소년은 씻고 있는 형의 옆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형이 부탁하자 작은 수건으로 등을 닦는다. 고요하고 매혹적으로 포착된 그 장면에서 그것이 감독의 성 정체성과 관련이 있는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감독에 대한 글을 읽다가 내가 생각한 것이 맞았음을 확인했다.

  'The Long Day Closes'는 테렌스 데이비스 감독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만든 영화이다. 영화는 엄밀히 말하자면, 감독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의 초반부, 교실에 앉아서 필기를 하던 버드의 모습에서 갑자기 어둑한 하늘의 흰색의 돛이 휘날리는 배가 등장하는 장면으로 바뀐다. 뒤이어 교실에 혼자 있는 버드는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고 있다. 이런 식의 시공간을 뛰어넘는 점프컷은 이 영화가 시간 순서에 따른 것이 아닌 비선형적 구조의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관에서 엄마와 함께 나와 길을 걷던 버드는 어느새 집의 거실에 들어와 있다. 그제서야 관객들은 이 소년의 이야기가 아닌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는 점을 비로소 인지하게 된다.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지 않지만, 덩어리지어진 여러 작은 기억의 파편들이 버드의 어린 시절과 소년의 내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소년 버드에게 영화는 매우 중요한 일상이며 탈출구이다. 교사가 가하는 체벌이 일상화된 강압적 분위기의 학교, 여리고 내성적인 성향 때문에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는 버드에게 영화관은 평온한 안식과 위로를 준다. 영화관과 더불어 집도 버드에게 온기를 주는 곳이다. 넓은 바다와 같은 품을 지닌 엄마, 다정한 두 형과 누나, 그리고 친숙한 이웃. 그럼에도 모두 연애 중인 형들과 또래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누나에게 버드는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 소년의 일상은 홀로 보내는 시간으로 더 많이 채워진다. 창가에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관찰하거나, 학교 생활의 고통을 잊기 위해 교회에서 기도하는 버드. 수업시간에 교사가 설명하는 '침식(erosion)'이란 단어는 버드의 어린 시절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버드의 내면에 생채기를 내는 냉혹하고 무지막지한 교사들, 괴롭히는 아이들... 소년은 자신을 침식시키는 모든 것들을 마주하고 견뎌낸다. 영화관에서 교회, 그리고 학교로 이어지는 하이 앵글 쇼트는 소년 버드의 일상인 동시에, 전후 폐쇄적이고 변화없는 영국 사회의 단면을 축소시켜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의 끝부분에 이르면, 소년의 집은 무너져 내린다. 그 집을 떠나지 못하고 헤매는 버드의 모습은 이 소년에게 유년기의 기억이 훗날 계속적으로 변주되는 창작의 소재가 됨을 암시한다. 거미줄이 쳐진 어두운 심연 같은 집으로 들어가 버린 소년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어진 장면에서 버드는 친구와 함께 달을 가린 구름이 흘러가는 저녁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버드의 소년 시절, 정확히 말하자면 테렌스 데이비스의 어린 시절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소년은 자신을 견디게 해준 영화를 만들게 되고, 관객들은 그가 만든 영화를 통해 소년 테렌스를 만난다. 냇 킹 콜, 도리스 데이, 데비 레이놀즈의 오래된 노래와 아카펠라로 연주되는 성가들이 그 과거로의 여행에 함께 한다. 베르메르의 인물화 구도를 차용한 쇼트들에서 느끼는 평온함과 따뜻함 또한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 


*사진 출처: criter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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