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과 정서, 나루세 미키오가 건네는 유년의 편린
나루세 미키오 감독은 매우 과묵한 사람이었다. 그와 여려 편의 영화에 함께 한 여배우 타카미네 히데코는 후일 이 감독에 대해
회고하기를 '좀 무서웠다'고 했다. 주연 배우에게조차 그는 별다른 연출 지시를 하지 않아서, 타카미네 히데코는 자신의 감을 믿고
그냥 연기하는 수 밖에 없었다. 젊은 시절의 짧은 결혼 생활과 이혼, 그리고 꾸준히 영화 경력을 이어간 것 이외에 그의 사생활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그의 자전적 편린이 들어있는 영화가 '秋立ちぬ(Autumn Has Already Started, 1960)'이다. 제목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가을이 다가온다' 쯤이 될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12살 소년 히데오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뜨거운 한여름, 도쿄에 이제 막 도착한 엄마와 아이를 보게 된다. 히데오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삼촌집을 찾아
간다. 허름한 뒷골목에서 식료품 가게를 하고 있는 삼촌. 엄마는 히데오를 맡기고 근처 여관에 일자리를 얻는다. 가장이 세상을 뜬
후, 이 모자(母子)는 살던 나가노를 떠나 도쿄에 왔다. 팍팍한 숙모 아래에서 조금 눈칫밥을 먹기는 해도, 사촌들은 히데오에게 잘
대해 준다. 동네 애들은 히데오를 촌뜨기라며 무시하고 텃세를 부리지만 히데오는 의연하다. 우연히 알게 된 준코라는 여자 아이는
히데오에게 호감을 보인다. 알고 보니 엄마가 일하는 여관 여주인이 준코의 엄마다.
러닝타임 79분. 이 소품 같은 흑백 영화는 아이들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나루세 미키오는 이 영화를 제작하기 이전에 '내 마음의 휘파람(コタンの口笛, 1959)'에서
아이들과 작업한 적이 있다. 말수가 적었던 감독이 일일이 아이들에게 연출 지시를 하는 일은 익숙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듬해인
1960년에 '가을이 올 때'를 만든 것을 보면, 감독 본인이 꼭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영화 속 아이들의 연기는 요즘 아역
배우들이 보여주는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좀 있다. 어색한 구석이 있기는 해도 히데오와 준코가 전달하는 정서의 깊이는 충분히
무리없이 전달된다.
히데오에게는 모든 상황이 낯설기만 하다. 가까운 곳에 있다고는 하나 엄마와 떨어져 지내야 하고, 같은 방을 쓰는 사촌 형이
밤늦게까지 기타 치며 노래부르는 것도 참아야 한다. 밥값이라도 하려면 가게 배달일도 도와야 한다. 성질 나쁘고 재수없는 동네
녀석들은 시덥잖게 괴롭히려고 든다. 그나마 히데오에게 유일한 위로가 되는 건 고향에서 갖고 온 큰 하늘소이다. 녀석을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런데 어느 날, 작은 상자집에 있던 하늘소가 사라졌다. 히데오는 그새 친해진 준코의 학교 숙제를 위해 하늘소를
빌려주기로 약속했던 터였다. 사촌형은 쉬는 날 도쿄 근교 숲으로 가서 하늘소를 잡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영화는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세계를 펼쳐 보여준다. 히데오가 보기에 쥐꼬리만한 매상으로 겨우 먹고 살아가는 삼촌은 늘
허허실실, 팔다 남은 채소 반찬이 오르는 지겨운 식탁에서 맥주만 들이킨다. 깍쟁이 숙모는 히데오가 그대로 여기 눌러 살까
걱정이다. 사촌 형과 누나는 돈 안되는 가게 팔고 좀 번듯한 곳으로 이사가자고 삼촌에게 볼멘 소리를 하지만 별 소용이 없다.
부잣집 딸처럼 보이는 준코에게도 고민이 있다. 다른 도시에 사는 늙은 아빠는 가끔 오는데, 이번엔 나이든 언니 오빠를 데려와서는
형제라며 인사를 시킨다. 가만 보니까 아빠가 데려온 그 아이들은 자신을 무척 싫어하는 것 같다. 왜 아빠는 집이 두 군데에 있는지
엄마에게 물어보니 성질만 낸다.
나루세 미키오는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 1960년 도쿄의 풍경을 펼쳐 놓는다. 한국 전쟁으로 인한 특수 덕에 일본 경제는 고도
성장기에 진입한다. 히데오와 준코가 구경하는 번화한 백화점 안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늘소를 잡으러 사촌형과 함께 나간 교외의
숲에는 젊은 남녀들이 시시덕거리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회색빛의 도시에는 고향의 하늘소 같은 건 없다. 백화점
옥상에서 아이들이 내려다본 도쿄 시내는 빽빽한 고층 건물의 숲이다. 히데오가 보고 싶은 푸른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히데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준코는 늘 타던 택시를 대절해 바닷가로 간다. 허허벌판 같은 바닷가 근처 공터에 곧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거라고 준코는 일러준다.
도쿄에서 보내게 된 히데오의 유년 풍경은 어딘지 모르게 비어있다. 사라진 하늘소의 작은 상자집은 열려있고, 엄마는 여관 손님과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할머니가 보낸 사과 상자에서 발견한 하늘소를 준코에게 주려고 했더니, 여관 앞에는 이삿짐 차가 서있고 그
안은 텅 비어 있다. 아이는 외롭고 막막한 마음을 어찌할 줄 모른다. 전에 가봤던 백화점 옥상 난간에 하늘소를 올려놓고 도시를
바라볼 뿐이다.
히데오가 느꼈을 그리움과 외로움은 스크린 너머로 바람처럼 스며든다. 나루세 미키오는 그렇게 자신의 영화적 역량을 입증한다. 그는
영화를 통해 정서를 전달하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이였다. '나루세 미키오, 오즈 야스지로의 구식 영화 따위를 보는 건 시간
낭비다'라고 폄하하는 이들도 있다. 아마도 아직 너무 젊거나, 실패를 경험해본 적이 없는 이들일 것이다. 어떤 영화들은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기까지 인생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나는 영화 속 비어있는 풍경을 가득 채우고, 마침내 흘러 넘치는 정서에 가슴이
뻐근해졌다. 이 영화를 만나는 이들은 나루세 미키오가 겪었던 유년의 편린을 그와 공유하게 된다.
*사진 출처: http://kookaimorita.livedoor.blog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 리뷰
아내(妻, Wife, 1953)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7/wife-1953.html
산의 소리(山の音, The Thunder of the Mountain, 1954)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3/1954.html
만국(晩菊, Late Chrysanthemums, 1954)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8/late-chrysanthemums-1954.html
흐르다(流れる, Flowing, 1956)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7/flowing-1956.html
안즈코(杏っ子, Little Peach, 1958)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3/little-peach-1958.html
내 마음의 휘파람(コタンの口笛, 1959)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7/1959.html
여자의 자리(女の座, A Woman's Place, 1962)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7/womans-place-1962.html
여자의 역사(女の歴史, A Woman's Life, 1963)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7/womans-life-196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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