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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세 미키오가 그려낸 국외자 아이누의 초상, 내 마음의 휘파람(コタンの口笛, 1959)

 *이 글에는 영화 '내 마음의 휘파람(コタンの口笛, 1959)'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타카가 평생 그런 부당한 대우를 참으면서 사느니, 차라리 이대로 죽는 게 나아요."

  누나 마사는 동급생에게 얻어맞아 다리가 부러진 동생을 보며 흐느낀다. 중학교에 다니는 동생 유타카는 자신을 괴롭히고 모욕하는 동급생과 싸우다 다친다. 더러운 피를 가졌다느니, 개(いぬ 이누로 발음, 아이누인들에 대한 욕설)와 닮았다는 수군거림을 듣는 유타카는 아이누(Ainu)이다. 일본의 북쪽 지방에 거주하는 선주민(先住民) 아이누.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1959년작 '내 마음의 휘파람(コタンの口笛, Whistling in Kotan, 1959)'은 훗카이도의 코탄 마을을 배경으로 아이누족 남매의 시련과 고통을 그려낸다. 주로 여성 주인공의 이야기와 그 내면을 다루는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작품들 중에서 아이들, 그것도 차별받는 아이누족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작품이다. 거기에다 컬러와 시네마스코프를 채택한 화면은 늘 보던 이 감독의 흑백, 실내 촬영 위주의 영화와도 다르다. 훗카이도의 맑은 호수로 유명한 시코츠호(支笏湖)의 풍경과 그 일대의 모습, 단편적이지만 아이누족들과 그들의 공연 장면이 영화 속에 들어있다. 영화는 동화작가이며 교육자인 이시모리 노부오(石森延男)가 1957년에 발표한 소설 '코탄의 휘파람(コタンの口笛)'을 충실하게 재현한다.

  내가 알기로 아이누족에 대해 다룬 일본 영화는 거의 없다. 재일교포의 이야기는 일찍부터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둘째 오빠(にあんちゃ, 1959)'는 탄광촌을 배경으로 차별받는 재일교포의 아픔을 그려낸다. 재일교포 소녀 야스모토 스에코가 쓴 일기를 원작으로 하는데, 이것을 같은 해 유현목 감독은 '구름은 흘러도(1959)'로 만들었다. 국외자들을 다루는 일본 영화가 드문 당시의 현실에서 나루세 미키오는 일본 내에서 철저히 차별받는 아이누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실제 아이누족 배우들은 나오지 않는다. 일본 배우들이 아이누족 분장을 하고 나오는데, 그 모습은 아이누족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관객들에게는 매우 낯설게 보일 수도 있다. 주로 긴 수염에 어두운 얼굴색으로 나오는 성인 남자들과 두꺼운 입술 문신을 한 이웃 할머니 이칸테의 분장은 전형적인 아이누족의 외모를 보여준다. 어떤 면에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아이누족의 이미지는 차별적 요소를 띄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아이누족의 생활 방식, 신화와 전설, 장례 풍습과도 같은 민속지학적인 자료에 매우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머니를 여의고 알콜중독자인 아버지와 가난하게 살아가는 마사와 유타카 남매.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꿈을 가지고 살아가려 하지만 남매가 처한 현실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마사는 지갑을 잃어버린 반 아이에 의해 도둑으로 몰리고, 유타카는 공부를 잘하지만 그것을 시기하는 동급생의 괴롭힘과 마주한다. 그래도 이 남매에게는 정서적인 지지와 위로를 보내는 이웃과 선생님이 있다. 미술을 가르치는 타니구치 선생은 마사에게 힘이 되어주고, 마사는 그런 선생님을 흠모한다. 옆집에 사는 이칸테 할머니와 후에 언니도 마음을 나누는 이웃이다. 그러나 후에가 가출하고 이칸테 할머니가 그 충격으로 세상을 뜨면서 남매를 둘러싼 세계는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미군 부대의 철수로 군무원 일자리를 잃게된 아버지는 벌목일을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남매의 곁을 떠난다. 그렇게 남겨진 남매에게 비정하기 짝이 없는 삼촌은 남매의 집을 팔아버리고, 일꾼으로 살아갈 것을 종용한다.

  마사와 유타카 남매가 겪는 모욕적이고 부당한 차별의 현실은 아이누족들에게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것이다. 몽둥이로 얻어맞아 다리가 부러진 유타카를 보며 남매가 의지하는 이웃 청년은 아이누 남자라면 저렇게 다 맞아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분을 이기지 못하는 마사에게 경찰은 아이누 편이 아니며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달랜다. 문제는 그들이 겪는 이 조직적인 차별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데에 있다. 물론 모든 일본인들이 나쁜 사람은 아니다. 유타카에게는 착한 일본인 친구도 있고, 학교 교장인 타자와 선생은 아이누인들을 인간적으로 존중하며 그들을 평등하게 대한다. 그러나 정작 그는 자신의 아들이 좋아하는 아이누 아가씨 후에와 엮이는 것은 용납하지 못한다. 이칸테 할머니는 타자와 선생에게 손녀딸의 혼사를 말했다가 거절을 당하고, 그것을 알게 된 후에는 가출해서 돌아오지 않는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루고 정든 고향을 떠나게 되는 남매까지, 이렇게 '내 마음의 휘파람'에 나오는 코탄 마을의 아이누 공동체 구성원들이 가진 꿈들은 모두 냉혹한 현실 속에서 바스러진다.

  나루세 미키오가 보여주는 아이누족 남매의 수난기는 암울하고 슬픔으로 차있지만, 놀라운 흡인력과 핍진성(逼眞性)을 갖고 있다. 사실 남매로 나오는 아역 배우들의 연기는 어색하고 뻣뻣하며, 다른 아역 배우들이 보여주는 연기 또한 실망스럽다. 그러나 배우들에 대한 연출 지시를 최소화하고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나루세 미키오의 스타일은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나름의 완성도를 성취해낸다. 126분의 러닝타임이 결코 지루하지 않다고 생각할 만큼, 영화의 내러티브는 잘 짜여져 있다. 영화의 마지막, 인정머리 하나 없는 삼촌을 따라나서는 남매의 모습은 처연하기 짝이 없다. 아직 다리가 낫지 않은 유타카는 절룩거리며 걷고, 마사는 고향 마을을 보며 마음 속으로 작별 인사를 건넨다. 서로를 바라보며 괜찮냐고 묻는 남매. 유타카는 기운을 내려는듯 휘파람을 신나게 분다. 그러한 결말은 일본 사회의 국외자로서 아이누족 남매의 미래가 험한 길 위에 있을지라도 고통을 견디어 내며, 세상에 지지 않을 거라는 희망의 한 조각을 던져주는듯 하다.     


*사진 출처: kookaimorita.livedoor.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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