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음악 '봄의 제전(The Rite of Spring)'의 초연은 1913년 5월, 파리에서였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안무와 생소하기 짝이 없는 음악에 관객들은 극심한 반감을 표출했다. 관람을 했던 비평가의 기록에 따르면
관객들은 '던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무대로 내던졌다'고 했으며, 분노에 휩싸인 이들의 난동으로 경찰이 출동해서 40명에 이르는
이들을 쫓아내야만 했다. 마니 카울(Mani Kaul) 감독의 1969년작 '그의 로티(Uski Roti, A Day's
Bread)'를 보고 나서, 나는 '봄의 제전' 초연 때의 파리 관객들을 떠올렸다. 아마도 이 영화를 극장에서 처음 본 인도
관객들의 반응도 그에 못지 않았을 것 같다. 영화를 본 어느 인도 의회 의원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영화'라고 혹평했다. 대중들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도 없고, 아무 재미도 느낄 수 없는 이 영화에 국가의 세금이 지원되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대체 어떤
영화이길래 그랬을까?
'그의 로티'는 인도 작가 모한 라케시의 단편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버스 운전사 수차 싱의 아내 발로는 매일 남편의 먹을 거리 로티(인도의 빵)를 만드는 것을 중요한 일과로 여긴다.
남편은 아내가 있는 시골 마을에 정차할 때 그 빵을 가져가는데, 발로는 매일 먼 거리를 걸어와서 정류장에서 남편을 기다린다. 어느
날, 아내가 늦게 와서 빵을 받아가지 못하자 수차 싱은 화를 낸다. 도시에서 방을 얻어 사는 그는 1주일에 한 번 아내를
찾아오는데, 그것도 발을 끊겠다고 말한다. 내연녀를 두고 도박이나 일삼는 남편이라도 없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발로.
밤늦게까지 로티를 가지고 버스 정류장에서 남편을 기다린다.
"나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에 반대한다."
25살의 마니 카울은 기존의 영화 문법과 관습 전부를 배반하기로 결심했다. 우리가 흔히 '영화'가 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들, 또는 '영화'가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것들을 젊고 야심만만한 신인 감독은 내던져 버렸다. '그의
로티'를 보는 관객들은 분절되고 파편화된 이미지들, 시간 순서를 무시하는 서사, 때론 제각각인 장면의 속도를 견뎌야만 한다.
관객들은 발로의 마음 속 불안과 고통, 걱정이 만들어낸 환영들을 보게 된다. 거기에는 '조화'나 '논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신체의 일부분, 특히 '손'을 몽타주로 편집한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것은 마니 카울이 로베르 브레송에 대한 경의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브레송의 '소매치기(Pickpocket, 1959)'에서 손이 영화의 서사 그 자체가 되는 것에 카울은 깊은 인상을
받았다. 로티를 만드는 발로의 손, 자신의 머리와 수염을 정리하는 수차 싱의 손, 그의 외투에서 돈을 빼가는 내연녀의 손, 이
밖에도 이 영화에서는 여러 다양한 '손'의 활약을 볼 수 있다.
마니 카울은 이 영화에서 자신이 이야기를 듣고
떠올린 이미지를 마치 그림을 그리듯 한 장씩 보여주는 것을 원했다. 그가 재현한 머릿 속의 이미지들은 사실에 부합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통적으로 영화가 보여주는 방식, 즉 배우들과 그들이 나누는 대사,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 카메라의 원근법이
존재하는 영화와는 전혀 다르다. 그런 이유로 '그의 로티'의 내러티브는 기존의 영화 문법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매우 낯설고,
기이하며, 이해하기 어렵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이 영화는 마치 끊임없이 관객들로부터 서사를 격리시키는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므로 관객은 영화가 만들어낸 서사의 거리를 어떤 식으로든 메꾸어야하는 짐을 짊어지게 된다.
이 난해하기 짝이
없는 영화적 실험에 동시대의 관객들은 냉담했다. '그의 로티'는 인도 영화 산업의 육성을 위해 만들어진 정부 기관
FFC(Film Finance Corporation)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는데, 대중성이 결여된 이 작품에 '세금 낭비'라는
일반의 비난이 쏟아진 것은 당연했다. 오히려 카울이 보여준 새로운 영화 문법에 주목한 이들은 서구의 비평가들이었다. 이 영화가
던지는 근원적 질문, 즉 '과연 영화적인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카울이 제시한 답에 시간이 갈수록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였다.
리트윅 가탁(Ritwik Ghatak), 사티야지트 레이(Satyajit Ray)로 대변되는 인도 평행 영화(Indian
Parallel Cinema, 1950년대에 주류 상업 영화인 볼리우드를 거부하면서 일어난 새로운 영화 운동)에서 마니 카울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색채를 보여준다. 그는 사실주의적인 영화 문법을 거부하고, 그것에 균열을 일으키고 흔드는 것에 흥미를 가졌다.
'그의 로티'가 좋은 영화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그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엉성하고 조악한 내장재로 지어진 건물
같은 이 영화는 분명히 '새로운 그 어떤 것'이다. 감독 마니 카울은 관객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그의
로티'의 관객들은 이 영화에 접근할 자신만의 모험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지루하지만, 한편으로는 의미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사진 출처: screendaily.com
**사진 출처: pinterest.com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