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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갈등에 숨겨진 미국 사회의 노인 문제, 아버지의 노래(I Never Sang for My Father, 1970)

 

  "너희들이 살고 있는 집, 대학 등록금은 다 나한테서 나온 거다. 내가 얼마나 뼈빠지게 일했는지 알기나 해?"

  아버지 톰은 자식들에게 자신의 공덕을 입버릇처럼 내세운다. 가족들에게 독불장군처럼 군림해온 그는 자식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 대학교수인 아들 진은 강압적이고 독선적인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미워한다. 딸 앨리스는 유태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큰 비난을 받은 후 아버지와 소원한 상태다. 그런 자식들은 갑작스런 어머니의 죽음 이후, 연로한 아버지의 거취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앨리스는 입주 가사 도우미를 두자고 하지만 톰은 완강히 거부한다. 재혼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떠나려는 진은 아버지에 대한 애증과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 사이에서 갈등한다.

  강한 아버지 밑에서 상처받은 아들을 연기한 진 해크먼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프렌치 커넥션(The French Connection, 1971)'의 그 열혈 형사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 길버트 케이츠 감독의 영화 '아버지의 노래(I Never Sang for My Father, 1970)'에서의 해크먼은 매우 위축되어 있고, 많은 감정을 속으로 삭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통불능의 아버지 톰은 자신이 좋아하는 TV서부극을 크게 틀어놓으면서, 아들이 말하는 것을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캘리포니아에 가서 함께 살자는 아들의 제안을 듣고는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면 되는데 왜 그러냐고 말한다. 톰은 자식들이 자신을 짐짝처럼 여긴다고 분노하며, 배은망덕하다고 비난을 쏟아낸다. 결국 아들과 아버지 사이의 해묵은 불화가 독설과 함께 터져 버린다.

  영화는 매우 건조하며, 연출은 밋밋하기 짝이 없다. 오직 미움만이 존재할 뿐인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깊게 패인 세월의 상처를 보는 일은 괴롭다. 여기에 자식이 가진 부모에 대한 '부양의 의무'라는 윤리적 가치가 개입되면서 이야기를 더 무겁게 만든다. 진이 아버지의 거취에 대한 대안으로 요양 병원과 양로원을 살펴보는 장면은 마치 공포영화의 장면들처럼 제시된다. 그때에 흘러나오는 음악은 음산하기 짝이 없는데, 이 영화에 쓰인 음악들은 그렇게 단선적이고 조잡스럽다. 그 장면은 그런 곳에 부모를 보내는 행위는 '유기'나 '방치'와 같다는 암시를 준다. 그곳을 돌아보고나서, 진은 미워하는 아버지에 대한 감정과는 별개로 아버지의 노후에 대한 책임감을 더욱 느끼게 된다.

  미국 사회가 고령화 문제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였다. 사회학자와 경제학자들은 고령화가 미칠 노동 시장에서의 고용 방식, 연금 수당, 건강 관리 및 가족의 형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영화 '아버지의 노래'는 부모의 사회 경제적 능력의 상실이 가져오는 가족 내의 노후 부양 문제를 부각시킨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립과 갈등은 단순히 가치관과 신념에서 비롯되는 것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회적 변화의 흐름 속에서 발생한다. 톰은 진과 앨리스에게 키워준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며 부양의 의무를 부각시키지만, 자식들은 그 의무를 부담스럽게 여긴다. 그 의무를 온전히 지는 것은 진과 앨리스에게는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흔드는 일이 된다.

  '아버지의 노래'가 보여주는 그런 고민들은 이미 1937년에 만들어진 '내일을 위한 길(Make Way for Tomorrow)'에서 제시된 바 있다. 레오 맥캐리 감독의 이 영화는 오갈 데가 없어진 노부부가 자식들에게 삶을 의탁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가슴아픈 일을 담았다. 바크와 루시 부부는 은퇴 후 소득없이 지내면서 집을 은행에 저당잡히게 되는데, 부부가 의지할 곳은 5명의 자식들 뿐이다. 서로 헤어져 다른 자식들의 집에서 지내던 부부는 자신들이 짐짝처럼 여겨지는 현실을 깨닫고 절망한다. 건강이 악화된 남편은 또 다른 자식의 집으로, 아내는 양로원으로 갈 예정이다. 그 부부는 떠나기 전 함께 50년 전 신혼여행지 뉴욕을 돌아본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만남을 끝으로 그들은 기차역에서 헤어진다. 이 영화에 드러난 노부부의 고통은 노후 계획의 실패와 자식들과의 갈등이라는 개인적 차원에 머무른다. 세월이 흘러 1970년에 만든 '아버지의 노래'는 그 부모 부양의 문제가 좀 더 사회적 차원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진이 목격한 열악한 수용소와 같은 요양원의 실상은 미국 사회가 직면하기 시작한 고령화 사회의 문제점을 부각시킨다.

  동명의 희곡을 영화화한 '아버지의 노래'는 상처와 증오 뿐인 부자간의 관계를 뻣뻣하고 거칠게, 그리고 전혀 영화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보여준다. 길버트 케이츠 감독은 원작 연극의 제작을 맡기도 했다. 그는 차라리 연극 제작자로 남아있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주로 강인한 남성상을 연기했던 진 해크먼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다는 점은 새롭다. 해크먼은 1988년 Filmcomment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 역을 맡은 멜빈 더글라스가 자신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촬영 내내 불편했었다는 것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것이 영화 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는 데에는 좋게 작용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서로를 싫어하는 배우들의 진짜 연기와 함께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당시 미국 사회가 가진 노인 문제에 대한 고민도 엿볼 수 있다.


*사진 출처: filmcommen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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