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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에 매혹된 남자 바실리 슉신, 스토브 벤치(Печки-лавочки, 1972)

 

   그의 아버지는 당의 집단 농장 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총살되었다. 불순분자의 가족으로 낙인이 찍힌 그의 성장기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강인한 어머니는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는 정규 교육의 혜택은 받았으나, 원하지 않은 자동차 기술 학교에 입학해야만 했다. 학업을 마치지도 않은 상태에서 운전사, 엔지니어 같은 직업으로 떠돌았다. 해군으로 병역을 마친 뒤에는 교사 자격증을 따서 문학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다 영화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그는 25살의 나이에 무작정 모스크바로 갔다. VGIK(러시아 국립 영화 학교)에 들어간 그는 배우와 감독으로서 경력을 쌓아간다. 그는 소설도 꾸준히 써냈다. 자신의 고향 알타이와 그곳 사람들의 삶을 그려냈다.

  그가 1972년에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 '스토브 벤치(Печки-лавочки)'에도 알타이 농민 부부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Happy Go Lucky', 러시아어 원제목인 '스토브 벤치'와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동명의 제목으로 2008년에 나온 영국 영화가 있어서 우리말 제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스토브 벤치'로 쓰기로 했다. 그것은 러시아 주택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스토브(화덕)와 연결된 벽돌 의자를 뜻한다. 감독 바실리 슉신(Vasily Shukshin)은 그곳에 앉아서 보내는 것을 좋아했는데, 고향의 따뜻함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외딴 알타이 시골 마을의 평화로운 일상 풍경에서부터 시작한다. 유유히 흐르는 강가에서 뱃사공이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마을에는 이반 부부의 여행을 축하하는 잔치가 벌어지고, 주민들은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즐거워 한다. 우수 농민으로 뽑힌 이반은 흑해 휴양소 입장권을 포상으로 받았다. 그렇게 시작된 부부의 여행은 결코 편하거나 즐겁지 않다. 이반은 촌사람이라며 대놓고 자신을 무시하는 사업가와 말다툼을 벌이는데, 사업가는 차장을 불러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려고 한다. 차장이라는 인간도 이반을 깔보고 하대하기는 마찬가지. 그들은 서로를 '동무(comrade)'라고 부르지만, '기차'라는 공간은 그들 사이의 명백한 위계 관계를 드러낸다. 촌부를 경멸하는 사업가, 행색과 지위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속물적인 차장, 도둑과 같은 칸에 머물렀다는 이유로 이반을 강압적으로 취조하는 경찰. 어떤 면에서 그것은 소련 사회의 내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부부의 여행은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광활하고 유려한 대자연의 풍경과는 다르게 삐걱거리는 소음을 낸다. 이반은 그럴수록 고향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그가 자는 동안 꾸는 꿈에서는 고향의 들판에서 아내와 행복하게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이 나온다. 이반은 고향의 부모님과 아이들 생각을 하며 편지를 보내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껄끄러운 여행을 그나마 상쇄시켜주는 것은 부부에게 호감을 보이는 언어학자 노교수의 친절이다. 그는 모스크바의 집에 부부를 초대한다. 그러나 화려하고 복잡한 대도시 모스크바는 이반에게 피곤함을 가중시킬 뿐이다.

  바실리 슉신에게 자신이 나고 자란 알타이의 풍광은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영화의 초반부에 펼쳐지는 시골 마을의 묘사는 마치 민속지학 다큐멘터리를 연상케 한다. 가진 것은 없지만 여유롭고 순박한 농촌 사람들에게 결핍과 불행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슉신은 있는 그대로의 알타이를 담으려고 했다. 그러나 Goskino(소련 국가 영화 위원회, 영화의 검열과 제작 전과정을 주관했다)는 좀 더 세련되고 부유한 모습의 농촌이 담겨지길 바랬다. 그때문에 슉신은 영화를 자신의 뜻대로 만들 수가 없었다. 검열 과정에서 여러 장면들이 삭제 되었고, 그 결과 영화는 온전하지 않은 서사를 가지게 되었다. 기차에서 이반이 겪게 되는 갈등을 묘사하는 부분도 당국은 마뜩잖게 여겼다. 제작 전과정에서 당국은 압력을 행사했고, 슉신은 지루하고 치열한 싸움을 이어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만큼은 슉신도 양보할 수 없었다. 마침내 보고 싶었던 흑해의 해변가에서도 이반은 그다지 즐겁지 않다. 그는 탁 트인 고향의 대지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이게 다야. 끝이라구."

  영화 속 이반을 연기한 배우이면서 감독이었던 슉신은 그렇게 대담하게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알타이 대지의 일부분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싶었던 슉신의 의지는 그 마지막 장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영화 '스토브 벤치'는 어떤 면에서는 슉신의 자전적인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속 뉴라 역을 연기한 사람은 그의 아내였고, 그들 부부의 두 딸도 영화에 잠깐 동안 등장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찍은 그 언덕에는 슉신의 동상이 세워졌다. 그는 이 영화를 완성하고 2년 뒤, 촬영 도중 갑작스런 심근경색으로 45살의 나이에 세상을 떴다. 어쩌면 그가 제일 좋아했던 스토브 벤치처럼 고향 알타이의 언덕은 그를 기념하기에 가장 어울리는 장소일 것이다. 


*사진 출처: in-w.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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