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예멘 유대인의 이스라엘 정착기, 살라 샤바티(סאלח שבתי, Sallah Shabati, 1964)

 

  영화는 비행기에서 한무리의 승객들이 쏟아져 나오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멋진 옷차림을 한 승객들 사이로 초라한 행색의 사람들이 눈에 띈다. 그들은 외모도 다르다. 말쑥한 승객들은 유럽계 백인들이고, 후줄근한 옷차림에 페즈(fez: 챙없는 아랍 남자들의 모자)를 쓴 남자들과 그 일행들은 아랍계 사람들이다. 백인들은 고급 관광 버스에, 아랍인들은 허름한 트럭에 올라탄다. 그들은 이제 막 새로운 땅에 도착했다. 이곳에 오기만 하면 집도 주고 먹고 살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들었다. 정말 이 나라는 그 약속을 지킬까?

  이스라엘의 건국과 함께 인접 아랍국가들에서는 반유대주의의 기운이 커져갔다. 특히 예멘 지역에서 오랫동안 정착해서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심각한 박해의 위협에 놓여 있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른바 '마법의 양탄자 작전(Operation Magic Carpet)'으로 1949년에서 195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약 4만 9천명 가량의 예멘계 유대인들을 이스라엘로 수송한다. 에프라임 키숀(Ephraim Kishon)감독의 1964년작 '살라 샤바티(סאלח שבתי, Sallah Shabati)'는 그렇게 이스라엘 땅을 밟게 된 예멘 유대인의 힘든 정착기를 담아냈다.

  털털거리는 트럭을 타고 살라 샤바티의 가족들이 도착한 곳은 이른바 '임시 캠프(ma’abara)'라고 불리는 곳이다. 겨우 비바람이나 막을 것 같은 판잣집들이 모여있는 판자촌. 그곳에서 6명의 아이들에, 이제 곧 태어날 아이를 가진 부인이 있는 중년의 남자 살라는 오매불망 번듯한 새집이 주어지길 기다린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집단농장 키부츠의 막노동과 허드렛일이다. 일하고 받은 푼돈의 임금으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현실에 살라는 좌절한다. 그는 술집에서 술과 노래, 주사위 놀이로 시간을 때운다. 정치인들이 온갖 공약을 내걸었던 선거에도 기대를 걸었지만, 판잣촌에는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는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주인공 살라 샤바티의 캐릭터는 한마디로 일자무식의, 전형적인 아랍인의 가치관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 보다는 예멘인, 아랍인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살라는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술집에서 사람들과 함께 아랍풍의 민요를 흥겹게 부른다. 그들의 복장 또한 아랍의 전통 일상복이다. 유럽계 백인 유대인들을 지칭하는 '아슈케나짐(Ashkenazim, Ashkenazi Jews)'과 구분되는 '미즈라힘(Mizrahim, Mizrahi Jews)'이 그들을 지칭하는 명칭이다.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그 정착의 과정에서 미즈라힘은 계몽의 대상으로 철저히 관리되고 차별받았다. '살라 샤바티'는 미즈라힘이 겪는 차별의 현실을 보여주지만, 그 묘사는 사실적인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살라가 보여주는 무지와 게으름, 그리고 결혼을 앞둔 딸의 지참금을 남자에게 요구하는 모습은 아랍의 전근대성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살아야할 새로운 나라 이스라엘이 요구하는 시민의 덕목에 어울리지 않는다.

  열악한 환경의 판잣집에서 사는 것을 더이상 견딜 수 없는 살라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주택 사무국 앞에서 시위를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 장면은 결코 심각하게 연출되지 않았다. 다소 코믹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시위 장면에서 알 수 있듯, 에프라임 키숀 감독은 영화를 전반적으로 가볍고 활기차게 이끌어 간다. 깨끗하고 좋은 집에 대한 살라의 소망은 결국 이루어지며, 그의 아들과 딸은 키부츠의 아슈케나지 유대인과 결혼하게 된다. 그러한 결말은 이 영화가 매우 현실타협적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미즈라히 유대인들이 영화 속 살라의 캐릭터를 마음에 들어할 리가 없었다. 또한 이스라엘 당국으로서도 유대계 내부의 현실적 차별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당시 외무부 장관이었던 골다 메이어는 이 영화의 해외 반출을 금지시키기까지 했다. 그러나 영화는 아카데미 영화제와 골든 글로브에 출품되었고,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 이스라엘 영화가 해외에서 거둔 최초의 성공이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단 1대 밖에 없었던 Arriflex를 가지고 찍었던, 신인 감독의 첫 작품이 거둔 성과였다.

  주로 풍자적 칼럼과 소설 작품을 썼던 키숀은 자신의 단편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적인 것에 대한 별다른 이해없이 만든 이 작품에 어떤 미학적 성취나 서사의 완결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살라 샤바티'가 가진 내적 결함, 즉 미즈라히 유대인 캐릭터의 편향적 묘사와 피상적인 현실 인식이 매우 실망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아랍계 유대인들의 이스라엘 정착기의 한 단면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살라 역의 연기로 미국 영화계에 이름을 알린 차임 토폴은 노만 주이슨 감독의 '지붕 위의 바이올린(Fiddler on the Roof, 1971)'의 주연을 맡기도 했다.   


*사진 출처: edb.co.il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적룡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영화, 천애명월도(天涯明月刀, The Magic Blade, 1976)

    영화의 제목이 독특하다. '천애명월도'라는 명검을 두고 벌이는 검객들의 혈투인가, 막연한 생각으로 영화를 봤다. 그런 검은 영화 속에 나오지 않는다. 대신에 이 영화를 지배하는 비장의 무기는 공작령(孔雀翎, 공작의 깃모양 무기로 막강한 화력을 지님)이다. '천애명월도(天涯明月刀, 1976)'는 '유성호접검( 流星蝴蝶劍, 1976)'을 만든 초원 감독의 작품이다.     검객 부홍설(적룡 분)은 강호의 일인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고향을 떠나 방랑 중이다. 그는 자신과 적대 관계에 있는 연남비로부터 흑도파의 우두머리 공자우가 공작령을 차지해서 강호제패를 노린다는 말을 듣는다. 공작령을 찾아내기 위한 여정에 함께 하게 된 연남비와 부홍설, 부홍설은 공작령의 주인이자 공작산장의 우두머리 추수청에게 공작령을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 과정에서 추수청이 공자우의 밀정에 의해 죽게 되고, 추수청은 딸 옥정을 부홍설에게 부탁한다. 공자우는 자신의 부하 검객들을 보내 부홍설을 죽이고 공작령을 빼앗으려 한다. 그 와중에 연남비의 생사도 알 수 없게 되고, 추옥정은 납치된다. 부홍설은 공작령을 지키고, 옥정을 구해낼 수 있을까...   이 영화의 원작은 무협 소설 작가 고룡의 동명 소설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전작이 있다. 말하자면 시리즈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변성랑자(邊城浪子)'가 그것으로 '부홍설'이라는 인물의 인생을 담고 있다. 그러나 영화 '천애명월도'는 부홍설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주지 않고 바로 연남비와의 대결에서부터 시작한다. 초원 감독은 캐릭터에 대한 묘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 같다. 영화는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대결로 꽉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공자우의 본거지에 부홍설이 들어가기까지 너무나 많은 자객들이 나오고, 대결이 이어진다. 말하자면 볼거리 위주의, 철저히 흥행을 노린 감독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관객들 시각에서

전후 일본 영화(Post-war Japan Movie, 1946-1955) 3편: 전후 일본 사회가 마주한 고통과 혼란, 미스터 푸(プーサン, Mr. Pu, 1953)

    노로는 고등학교 선생이다. 그는 과속을 하는 트럭을 피하려다 손을 다친다. 그가 받는 빠듯한 봉급으로 단칸 월세방 돈 내는 것도 힘든데 병원비까지 나가게 생겼다. 그는 학교에서 그의 봉급을 올려주길 기대한다. 하지만 깡패같은 고등학교 이사장은 노로에게 야간 고등학교 강의까지 더하라고 강권한다. 천성이 유약한 노로는 '아니오'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한다.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 노로. 그는 자신의 제자가 권유한 반정부 시위에 나가보기로 한다. 시위대는 경찰의 강경대응으로 무참히 진압되었다. 노로는 경찰서에 끌려갔다가 겨우 풀려난다. 하지만 이 일을 빌미로 이사장은 노로를 해고한다. 전후의 어려운 시절, 노로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이치카와 곤(市川崑, Kon Ichikawa) 감독의 영화 '미스터 푸(プーサン, Mr. Pu, 1953)'는 고등학교 선생 노로와 그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후 일본 사회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원작이 되는 만화가 있다. 만화가 요코야마 타이조(横山泰三)는 1950년부터 1953년  마이니치 신문(毎日新聞)에 4컷 만화 '미스터 푸(プーサン)'를 연재했다. 4컷 만화에 담긴 날카로운 사회비판적 메시지 때문에 만화는 연재 중단의 압력을 받았다. 이치카와 곤은 그 만화에서 영화의 주요한 소재를 차용했다. 영화  '미스터 푸(プーサン)'는 명확한 서사 대신에 다양한 등장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영화의 그러한 구성은 전후 일본 사회의 여러 면면들을 부각시킨다.    노로는 다친 손의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간다. 그런데 의사는 노로의 몸을 진찰하더니 '영양실조'라면서 잘 먹어야 한다고 처방을 내린다. 젊은 의사는 환자들 대부분이 제대로 먹지 못해 건강이 좋지 않다고 말한다. 노로가 의사에게 손을 치료받고 싶다고 하자, 의사는 병원의 X-ray 기계가 고장나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전후

Shirley Clarke의 실패한 타자성 탐구, Portrait of Jason(1967)

  1. 이상한 나라의 Jason Holliday   한 남자가 자신을 소개한다. 자신의 이름이 Jason Holliday라고 말한 그는 본명이 Aaron Payne이라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유명한 재즈 연주자)와도 안다고 말하는 그는 자신이 가진 직업을 줄줄이 늘어놓는다. 그가 말한 직업들 중에는 남창(whore)도 있다. 손에 술잔을 든 그는 심부름꾼(houseboy)으로 시작한 자신의 인생 역정을 늘어놓는다. 미국의 독립 영화 제작자 Shirley Clarke는 1966년 12월 3일, 자신이 머물던 첼시 호텔(Hotel Chelsea) 펜트 하우스에서 제이슨 할러데이의 인생 이야기를 주제로 다큐를 찍었다. 저녁 9시에 시작된 촬영은 12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Portrait of Jason(1967)'이다.   제이슨은 술에 취해 기분이 아주 좋아보인다. 화면 밖에서 목소리로만 들리는 셜리 클라크는 제이슨에게 질문을 던지며 그가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도록 유도한다. 마치 인형극의 조종하는 사람(puppeteer)처럼 클라크는 제이슨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려는 것 같다. 흑인이며 동성애자이기도 한 제이슨에게 미리 준비해놓은 소품으로 작은 공연을 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소품 가방에서 꺼낸 모피 목도리를 두르고는 제이슨은 여성스럽고도 우스꽝스러운 제스처를 취하며 킬킬거린다. 제이슨이 원하는대로 술과 담배가 계속해서 제공된다. 시간이 갈수록 술에 취한 제이슨의 말소리는 알아듣기 어렵게 뭉그러진다.   러닝 타임 1시간 45분의 이 다큐 'Portrait of Jason(1967)'은 보면 볼수록 기이하다. 관객은 'Jason Holliday'라는 인물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도록 초대받지만, 다큐가 끝나고 나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가장 큰 이유는 제이슨이 가진 뛰어난 공연자(performer)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