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Sirocco(1951)'와 'The Garment Jungle(1957)'의 결말이 들어 있습니다.
소설을 쓰는 데는 세 가지 법칙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게 뭔지 아무도 모른다 - 윌리엄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 영국의 작가)
흥행이 잘 되는 영화를 만드는 법칙이란 것이 있을까? 그 비밀을 아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는 아직까지 듣지 못했다. 다만,
망해버린 영화에 대해서라면 언제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차고도 넘칠 것이다. 이 글에서는 1950년대 헐리우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과거의 영화를 베끼려다 쓴 맛을 본 두 편의 영화를 다룬다. 커티스 베른하르트 감독의 '시로코(Sirocco,
1951)'와 빈센트 셔먼 감독의 '패션 전쟁(The Garment Jungle, 1957)'이 그것이다.
"우리의 보기(Bogie)는 슬프고 늙어 보였어요."
영화 '시로코'를 본 험프리 보가트의 어느 팬은 리뷰에 그렇게 썼다. 'Bogie'는 팬들이 보가트를 부르는 애칭이기도 하다.
그랬다. 영화 '카사블랑카(Casablanca, 1942)'를 베낀 티가 역력한 '시로코'에서 보가트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에는
활기와 열정이 부족했다. 보가트의 팬들로서는 정말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짠할 만도 하다. 영화는 서사의 엉성함과 총체적인
부실로 마치 무너지기 직전의 건물 같다. 1925년에 프랑스가 점령한 시리아 다마스커스에는 아랍 토후 에미르 하산을 중심으로 무장
독립 투쟁이 벌어진다. 해리(험프리 보가트 분)는 아랍 측에 무기를 밀매하면서 꽤 큰 수익을 내고 있다. 무기 밀매상을
찾아내려는 페로 대령(리 J. 콥 분)과 해리와의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거기에 페로의 애인 비올레타(마르타 토렌 분)가 해리와
도피를 시도하게 되면서 상황은 복잡해 진다.
'시로코'의 대본을 본 보가트는 뭔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는지 이 영화의 제작자로 뛰어들었다. 시나리오 작가 11명이
달라붙어서 보가트를 부각시킬 최선의 각본을 만들려고 애썼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그 시도가 실패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는 시종일관 '카사블랑카'를 떠올리게 만든다. 무기 밀매로 얻은 수익으로 불안한 정세의 다마스커스에서 편안한 삶을 살고 있는
해리는 '카사블랑카'의 도박장 운영자 릭과 병치된다. 페로가 해리의 정체를 의심하고 그의 정보 파일을 들여다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해리의 전직은 '도박장 운영자'였다.
실소를 자아내게 만드는 그런 베끼기는 '카사블랑카'의 보가트를 상징했던 담배와 모자, 트렌치 코트가 똑같이 재현된다는 점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배우조차도 잉그리드 버그먼을 연상케 하는 외모를 지녔다. 마르타 토렌은 버그먼과 같은 스웨덴 출신의 금발
미녀 배우였다. '시로코'가 '카사블랑카'와 다른 점이 있다면 타락한 캐릭터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도박장을 운영하면서 해외로
도피하려는 이들에게 통행증을 얻어주는 댓가로 돈을 챙기는 릭과는 달리 해리는 무기 밀매로 이득을 보는 비도덕적인 인물이다.
비올레타는 자신을 구속하고 억압하는 페로를 증오하고 그의 죽음까지 간절히 원하는 여자다. 잉그리드 버그먼이 보여주었던 가슴저린
사랑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개연성이 떨어지는 '시로코'의 서사는 관객들에게 그 어떤 설득력도 갖고 있지 못하며, 감동을
불러일으키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심드렁하게 볼 수 밖에 없는 관객에게도 마지막 장면은 좀 놀라울 수 있다. 해리가 죽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이 영화의 결말에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왜 무기 밀매상 해리가 죽어야 했을까? '카사블랑카'의 결말은 미국의 2차 대전 참전과 연합국과의 관계를 상징하지만,
'시로코'의 결말은 당시의 미국 상황과 연관해서 이해할 수 있다. 당시 미국을 휩쓸던 매카시즘 광풍은 영화계에까지 밀어닥쳤다.
이른바 헐리우드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의회에서 증언을 강요당했던 해당 영화인들은 극심한 고초를 겪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증언을 거부하고 매장되거나, 적극적으로 협조하거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타협하거나, 그 세 가지 가운데 하나였다. 영화
'시로코'에서 페로 대령 역을 연기했던 리 J. 콥은 마지막의 경우였다. 공산주의자로 찍힌 그는 증언을 내내 거부하다가 영화
경력을 이어가기 위해 협조했다. 어떤 식으로든 그 시대에는 중간 지대란 존재할 수 없었고,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해야만 했다.
무수한 인명 피해를 내는 무기 밀매를 하면서 프랑스 군와 아랍 게릴라 사이에서 생존을 모색했던 '해리'라는 캐릭터는 박쥐와도 같은
회색 분자나 다름없었다. 배신자, 변절자는 처단해야 마땅한 존재였다. 결국 해리는 자신들의 존재를 밀고할까 두려워하는 아랍 세력
측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이익에 따라 그 누구와도 협력했던 '카사블랑카'의 닉에게 허용되었던 관용이 해리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시로코'의 페로 대령으로 나왔던 리 J. 콥은 영화 '패션 전쟁'에서 이윤에 눈이 먼 악덕 기업가 월터 역으로 나온다. 영화
'워터프론트(On the Waterfront, 1954)'의 패션 업계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로버트 알드리치가 영화
촬영 도중 제작사 컬럼비아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은 것으로도 유명한 영화이다. 영화를 좀 더 부드럽고 등장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로
끌어가기를 바랬던 제작자 해리 콘과의 극심한 갈등은 알드리치의 하차로 이어졌다.
알드리치는 노조 탄압을 위해 폭력 조직과 손을 잡는 사업가와 의류 산업계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내고 싶어했다. 그러나 영화 제작
과정에서 늘 강한 목소리를 냈던 컬럼비아의 창업주 해리 콘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알드리치 대신에 투입한 셔먼의 '패션 전쟁'은
월터와 노조와의 투쟁 보다는, 월터의 아들 알란과 노조 지도자의 미망인 테레사의 관계가 더 부각되었다. 알란 역을 맡은 배우 커윈
매튜스는 컬럼비아 소속의 신인 배우로 컬럼비아에서 밀고 있는 배우이기도 했다. '워터프론트'가 보여주었던 사회적인 메시지는
'패션 전쟁'에서는 좀 더 희석되었다. 매우 현실타협적인 이 영화에서 부도덕한 사업가와 그가 손잡은 갱의 우두머리는 처벌받는다.
빈약한 서사와 신인 배우들의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한 연기는 이 영화가 '워터프론트'의 작품성과 흥행 성공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음을 입증한다.
1950년대에 제작된 두 편의 영화, '시로코'와 '패션 전쟁'은 흥행에 성공한 앞선 영화들을 모방했다. 플롯과 캐릭터의
유사성을 최대한 강조함으로써 관객들의 기호를 맞추려고 애썼다. 그러나 독창성과 예술성이 결여된 모방은 실패로 귀결되었다. 그럼에도
두 영화는 헐리우드의 흥미로운 자기 복제를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관객들은 이 글에서 언급한 세 편의 영화에 나온 리 J.
콥의 다양한 연기도 볼 수 있다. '워터프론트'에서 그는 부두의 무법자 조니 프렌들리를 연기한다. 그 영화의 감독은 엘리아 카잔,
그는 공산주의자 동료들을 적극적으로 밀고하며 헐리우드에서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했다. 그런 카잔과 함께 작업하면서 리 J. 콥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슬프고 늙은 Bogie를 볼 수 있었던 '시로코'의 서늘한 결말 또한 그 시기의 미국
사회를 보여준다. 이렇듯 두 영화 속에는 제작 당시의 시대적인 사건과 분위기, 제작사와 감독과의 갈등, 배우의 개인사가 들어있다.
*사진 출처: en.wikipedia.com 배우 Lee J. Cobb
**사진 출처: tc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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