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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잊혀진 역사와 현실을 이어줄 때, 라메리카(Lamerica, 1994)

 

  1939년, 이탈리아는 알바니아를 침공했다. 무솔리니는 집권 이후 알바니아에 대한 야욕을 서서히 드러냈다. 경제적인 수탈로부터 시작한 합병 작업은 2차 대전의 혼란기를 틈타 알바니아 본토 점령으로 이어졌다. 1944년까지 알바니아는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이탈리아 감독 Gianni Amelio '라메리카(Lamerica, 1994)'에는 그 역사적인 사건의 기억이 얄궂게 포개어져 있다.

  1990년대의 알바니아, 두 명의 이탈리아인이 알바니아를 찾는다. 지노의 상사 피오레는 알바니아에 신발 공장을 짓겠다고 공언한다. 사실 피오레는 합작 사업을 핑계로 눈먼 정부 보조금을 받아내려는 사기꾼이다. 바지 사장으로 내세울 알바니아인을 찾던 피오레는 요양원에서 아픈 노인 스피로를 데려온다. 이탈리아로 급하게 돌아간 상사를 대신해 지노는 스피로와 함께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몸과 정신이 온전치 못한 스피로는 지노를 피해 도망친다. 과연 이탈리아인의 신발 공장 사기극은 시작이나 할 수 있을까...

  이탈리아 청년 지노에게 알바니아는 후진국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거리에는 실업자와 거지 아이들이 들끓는다. 어렵게 스피로를 찾아낸 지노, 그는 시골 마을 휴게소에 들렀다가 잠깐 주차해둔 차의 모든 부품이 사라졌음을 발견한다. 지노에게 알바니아는 총체적인 부정부패와 범죄가 횡행하는 나라이다. 스피로와 함께 하는 지노의 여정은 바로 그 피폐한 알바니아의 현실에 대한 영상 보고서나 다름없다. 휴게소에는 커피는 물론이고 그 어떤 음식도 팔지 않는다. 그곳 사람들은 먹고 살 방도를 찾을 수 없다. 알바니아인들은 어떻게든 이탈리아로 가고자 한다.

  지노는 스피로를 비롯해 알바니아 사람들을 차별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가난하고 더럽고 무능한 사람들. 지노의 우월 의식은 한때 알바니아를 점령했던 이탈리아 제국주의자들의 관점과 다를 바 없다. 지노가 알바니아인으로 알았던 스피로는 바로 그 제국주의의 피해자이다. 알바니아 침공에 징집된 이탈리아 군인 스피로, 아니 미켈레는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50년을 타국에 매여있었다. 그는 자신의 나이를 스무 살이라고 말한다. 미켈레의 머릿속 시계는 전쟁이 끝난 1944년에 멈춰있다. 미쳐버린 늙은 군인은 어떻게든 시칠리아로 돌아가려 한다. 거기에는 아내와 그가 떠난 직후에 태어난 아들이 있다.

  뜻하지 않게 사업이 엎어지고, 가진 돈이 다 떨어지면서 지노의 행색은 자신이 경멸하던 알바니아인들처럼 변해간다. 알바니아 경찰은 지노를 사기 혐의로 체포하고 추방 명령을 내린다. 그는 이탈리아로 향하는 알바니아인들의 거대한 무리 속에 섞인다. 지노의 얼굴은 수심으로 그득하다. 지노에게 고국은 별 달리 기대할 것이 없는 곳이다. 낯선 나라 알바니아에서 한탕 사기로 인생 역전을 노렸던 지노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와는 달리 알바니아인들에게 이탈리아는 '꿈의 나라'이다. 20세기 초, 이탈리아 이민자들에게 '아메리카'가 그러했던 것처럼 역사는 기이한 방식으로 반복된다. 지아니 아멜리오 감독은 난민선에 탄 알바니아인들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찬찬히 보여준다. 카메라에 잡힌 그 얼굴의 주인공들은 실제 알바니아 난민들이다.  

  파시즘으로 뒤틀려버린 알바니아의 전후 역사는 공산 독재자의 철권 통치로 이어졌다. 1990년에 공산 정권이 몰락한 이후, 빈곤과 부패의 악순환에 빠진 알바니아 국가 시스템은 회복 불능의 상태가 되었다. 알바니아인들은 생존을 위해 무작정 이탈리아로 향했다. 이후 이탈리아에서는 지속적인 난민 사태가 발생했다.
거듭되는 추방 조치에도 불구하고 알바니아 난민 문제는 아직까지도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있다.

  영화 '라메리카'는 음울하게 접혀진 이탈리아 현대사의 한 귀퉁이를 조심스럽게 펴본다. 거기에는 파시스트 무솔리니와 알바니아 공산 독재자 엔베르 호자(Enver Hoxha)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스피로는 무너진 건물벽에 낙서처럼 써진 엔베르 호자의 이름을 무솔리니로 읽는다. 지아니 아멜리오 감독은 과거와 현재를 대표하는 두 명의 이탈리아인, 스피로와 지노의 여정을 통해 이탈리아의 국가 정체성을 탐색한다. 동시에 영화는 난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대책을 촉구한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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