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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ma의 삶을 통해 육식의 미래를 생각하다, Cow(2021)

 

  어미소는 이제 막 출산을 했다. 태반을 뒤집어쓰고 태어난 새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힘으로 일어선다. 새끼는 본능적으로 어미의 젖을 찾아서 고개를 들이댄다. 이야기만 듣는다면 뭔가 가슴 뭉클한 동물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같다. 하지만 이 어미소가 있는 곳은 기업형 낙농 목장이다. 어미소가 새끼와 함께 하는 시간은 출산 후 단 몇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어미소가 원래 있던 축사로 돌아가기를 재촉한다. 어미소는 배설물로 질척거리는 시멘트 바닥을 터벅터벅 걸어간다. 그렇게 자신의 축사로 돌아온 소는 불안한듯 이리저리 몸을 움직인다. 그리고 카메라를 향해 여러 번 울음 소리를 낸다. 소의 얼굴을 보여주는 이 극단적인 클로즈업 쇼트는 좀 무섭다. 나는 태블릿 PC의 전체 화면 대신에 일부러 작은 화면으로 보았다.

  Andrea Arnold는 영국 Kent주에 위치한 목장에서 'Cow(2021)'를 찍었다. 다큐는 'Luma'라는 이름의 젖소의 일생을 담아낸다. 농장에서 루마는 이름이 아닌 인식번호 1139로 구분된다. 루마가 낳은 새끼는 태어나자마자 귀에 인식표가 부착된다. 새끼의 번호는 04481. 어미소와 분리된 새끼는 비슷한 또래의 새끼들과 같이 지낸다. 새끼들에게 주어지는 우유는 급유통을 통해 배분된다. 새끼들이 있는 축사는 건초더미가 있고 나름 공간의 여유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젖소들이 있는 축사는 비좁고 바닥에는 늘상 오물이 흐르고 있다. 농장의 인부들은 정해진 시간이 되면 원형으로 배치된 자동 축유 시스템으로 소들을 몰아 넣는다.

  이 농장에서 소는 하나의 상품으로 관리된다. 그것은 루마의 새끼 04481이 제각(除角)하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젖소도 뿔이 난다. 그런데 그 뿔을 제때 제거해주지 않으면 소들끼리 부딪히면서 상처가 날 수 있다. 농장의 인부는 뿔이 나려는 자리를 가늠해보고 인두로 지진다. 어린 송아지가 고통으로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렵다. 그렇게 04481은 뿔을 잃는다. 수의사는 암소들이 수태하기에 알맞은지 수시로 점검한다. 날짜가 정해지면 숫소와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다. 루마는 또 새끼를 갖고 출산을 한다.

  농장에 끊임없이 울려퍼지는 시끄러운 팝송을 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는 알 수 없다. 인부들이 좋아서 틀어놓은 노래를 들으며 소들은 정해진 일과에 맞추어 축유기에 몸을 맡긴다. 계속 자라는 발굽도 주기적으로 다듬고 잘라주어야 한다. 좋은 품질의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젖소들은 정해진 매뉴얼에 맞추어 관리된다. 이 농장의 시스템이 특별히 비인간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근처에 목초지가 있어서 소들은 비록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그곳에서 지낼 수 있다. 감독 안드레아 아놀드는 소들을 우리와 같은 감정을 가진 생명체로 바라보도록 만든다. 소들이 밤하늘의 별을 보고 울 때,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들을 볼 때, 관객은 무언가 이 소들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그 크고 순한 눈망울을 지닌 동물이 고통도 슬픔도 모른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그곳 농장의 소들은 오직 인간을 위해서 온전히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다. 전통적 낙농업에서 키우는 사람과 가축 사이에 존재했던 유대감은 오늘날의 기업형 낙농업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소는 상품이며 거기에서 최대한의 이윤을 뽑아낼 수 있도록 잘 관리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먹는 우유와 고기, 유제품은 바로 그러한 과정을 통해 생산된다. 이 다큐가 채식주의를 고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안드레아 아놀드는 상품 생산을 위해 사육되는 가축이 아니라, 우리와 이 지구상에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로서의 '소'를 바라보도록 요구한다.

  다큐의 마지막, 한적한 축사에 홀로 있는 루마에게 한 그릇의 사료가 주어진다. 잠시 후 들리는 짧고 날카로운 총성. 농장의 1139번, 루마는 그렇게 농장에서의 삶을 끝마쳤다. 모든 사람들이 채식주의자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육식의 미래는 인류를 위해서도, 지구를 위해서도 지속가능하지 않다. 과학자들이 인공육을 비롯해 다양한 방식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소들은 비좁은 축사에서 끊임없이 오물 바닥을 오가며 새끼를 낳고, 우유를 짜내며, 인간의 손에 의해 죽는다. 'Cow'는 축산업과 육가공업의 근원적 토대에 대한 묵직한 물음을 던진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동물을 다룬 다큐 리뷰

농장의 돼지 Gunda의 삶, Gunda(2020)
터키 길거리 떠돌이 개의 삶, Stray(2020)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1/aquarela2018-gunda2020-stray20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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