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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忍びの者, Shinobi no Mono, 1962): 8부작 닌자 영화의 시작

 

  닌자(忍びの者, Ninja)가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나와있지 않다. 대략 12세기 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닌자의 역사는 중세 시기 일본의 정치적 격변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일종의 정치 스파이라고 할 수 있는 닌자의 주요 업무는 '정보 수집'이었다. 치열한 세력 다툼을 벌이던 다이묘들은 경쟁자들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닌자를 고용했다. 말하자면 닌자는 하청을 받고 일하는 사업자였다. 그들의 신분은 미천했다. 닌자는 사회의 최하층에 속하는 천민 집단의 사람들로 무리를 지어 산골 지역에 은거했다. 평상시에는 농사를 짓고 살다가, 일감이 주어지면 비밀리에 활동해서 수익을 올렸다. 수집한 정보로 적들을 교란시키고, 때론 납치와 암살 같은 범죄도 저질렀다. '무사도(武士道)'를 따르는 사무라이들이 대놓고 할 수 없는 '더러운 일'을 닌자들은 떠맡았다. 

  '忍びの者(Shinobi no Mono, 1962)'의 도입부에는 산다유가 이끄는 닌자 무리가 등장한다. 깊은 산 속에서 밭을 일구며 사는 그들은 경계 경보가 울리자 일사불란하게 모인다. 그들 가운데 주인공 이시카와 고에몬도 있다. 우두머리 산다유는 오다 노부나가 타도를 내세우며 닌자들을 압박한다. 그런데 이 늙고 병약해 보이는 우두머리에게는 비밀이 있다. 그는 밤에 비밀 통로로 빠져나와 다른 곳의 은거지로 향한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장한 산다유는 또 다른 닌자 무리를 이끌고 있다. 그는 왜 이런 이중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한편 고에몬은 산다유의 젊은 아내와 사랑에 빠진다. 둘의 모습을 엿보는 산다유의 음흉한 미소에 고에몬의 험한 앞날이 예고되어 있다.

  무라야마 토모요시(村山知義)는 1960년부터 1962년까지 '忍びの者(Shinobi no Mono)'라는 소설을 잡지에 연재했다. 센코쿠 시대(戦国時代)의 닌자(Ninja)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 소설은 큰 인기를 끌었다. 영화사 다이에이(大映)는 발빠르게 영화화에 착수했다. 주연은 다이에이의 간판스타 이치카와 라이조, 감독은 야마모토 사츠오(山本薩夫)가 내정되었다. 그것은 이후에 이어질 8부작 닌자 시리즈 영화의 첫걸음이었다. 영화는 계속해서 초대박 흥행 기록을 이어갔다. 주인공 닌자 이시카와 고에몬은 3편을 끝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새로운 닌자 사이조를 내세워 시리즈를 이어갔다. 6편에서는 사이조가 죽고 그 아들 사이스케가 등장한다. 감독은 바뀌었지만, 이치카와 라이조는 배역만 달리할 뿐 계속 출연했다. 이 영화는 이치카와 라이조의 인기와 명성에 기대고 있었다.

  배우 이치카와 라이조는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금각사'를 영화화한 '불꽃(炎上, Conflagration, 1958)'으로 스타의 길에 들어선다.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 일곱, 이후 이치카와 라이조는 영화사 다이에이의 간판스타가 되었다. 1962년에는 결혼도 했는데, 상대가 다이에이 사장 나가타 마사이치의 양녀였다. 이제 이치카와 라이조에게 영화는 가족 사업이 되었다. 흥행 보증 수표였던 그는 쉴 새 없이 영화를 찍었다. 시대극(時代劇, じだいげき)은 이치카와 라이조가 두각을 나타내는 분야였다. 1962년에 시작한 닌자 시리즈물은 1966년까지 이어졌다. 1969년에 이치카와 라이조가 서른 일곱의 나이에 세상을 뜨자 시리즈는 8편을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그즈음, 영화사의 명운도 사그라들고 있었다. 1970년에 '忍びの者 9편'이 나오기는 했다. 하지만 1971년에 다이에이는 파산 신청을 하게 된다.

  어떤 면에서 '忍びの者(Shinobi no Mono)'는 다이에이의 흥망성쇠를 함께 한 시리즈물이기도 하다. 1, 2, 3편의 원작자 무라야마 토모요시는 닌자를 계급주의적 관점에서 그려냈다. 공산주의자였던 그는 일본의 제국주의가 발호할 때에도, 그리고 패전 이후에도 늘 박해의 대상이었다. 연극과 미술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 영역에서 활동하던 그는 역사 소설로 눈길을 돌렸다. 시대물은 검열의 압력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가 소설을 연재한 곳은 공산당 잡지 '적기(赤旗)'였다. 

  오다 노부나가를 비롯해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이르는 권력자들의 역사 속에서 닌자는 이용당하고 버려진다. 지배 세력은 닌자를 소모품으로 취급한다. 무라야마 토모요시는 그 계급적 불평등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공고함을 드러낸다. 자본가와 노동자는 다이묘 권력자와 닌자로 치환된다. 소설이 쓰여진 1960년대는 일본이 본격적으로 고도 경제 성장에 접어들기 시작한 때였다. 무라야마 토모요시는 닌자의 삶에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비운을 투사한다. 뼛속 깊이 공산주의자였던 원작자가 왜 역사 속의 닌자를 새롭게 부각시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시 영화 '忍びの者 1편'의 고에몬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고에몬은 갑작스런 폭발 사고로 아버지를 잃는다. 닌자는 여러가지 비술을 사용해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폭약을 비록해 독극물, 여러 살상 무기를 사용하는 방법이 그들의 직업적 가치를 높였다. 고에몬의 아버지는 바로 그 폭발물 제조의 비책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아들에게 평범한 농부의 삶을 살고 싶다는 뜻을 내비추지만 결국 비명횡사했다. 아버지의 죽음에 이어 산다유의 아내가 사고로 죽자 고에몬은 도망길에 오른다.

  닌자라고 해서 다 같은 닌자가 아니다. 그들 사이에도 엄연히 계급이 있다. 산다유는 닌자 무리를 이끌면서 오로지 자신의 안위와 영달을 추구한다. 그가 비밀리에 두 개의 닌자 무리를 꾸려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닌자들 사이에 경쟁을 부추겨 성과를 내게 만들면 닌자들의 몸값은 올라간다. 그렇게 되면 닌자를 고용하는 다이묘들에게 더 많은 돈을 받아낼 수 있다. 고에몬이 믿고 의지한 산다유는 그런 추악한 인물이었다. 영화 속에서 오다 노부나가는 잔혹한 압제자로 묘사된다. 혼세한 시대적 상황에서 닌자 고에몬은 수탈과 착취의 제일 하부 구조에 자리한다. 과연 고에몬은 자신을 옥죄는 시대의 그물에서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을까? 그 뒤의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진다.


*사진 출처: vintageninj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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