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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미국 영화사의 특이점, Spring Night Summer Night(1967)

 

  남자는 딸의 배를 불러오게 만든 놈팽이를 찾기 위해 마을을 헤집고 다닌다. 남자의 딸 제시카는 뱃속의 아이 아빠가 누군지 말해주지 않는다. 제시카에게는 그 이름을 입에 올리지 못할 나름의 사정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이복 오빠 칼의 아이이기 때문이다. 근친상간, 이 영화의 시놉시스만 보면 참으로 역겹고 추저분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렇다. 그것이 이 영화를 50년 동안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잊혀지도록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1965년, 당시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교수였던 Joseph L. Anderson은 자신의 수업을 듣던 학생들과 영화를 한 편 찍는다. 학생들 대부분은 영화 제작 경험이 없었다. 최소한의 제작비로 애팔래치아 산골 마을에서 찍은 이 영화는 서정성과 독창성을 인정받아서 1968년 뉴욕 영화제(New York Film Festival, NYFF)에 초청받는다. 그런데 다른 작품에 밀려서 영화제 상영이 취소된다. 그 경쟁작은 John Cassavetes의 'Faces(1968)'였다. 카사베츠가 'Faces'로 화려하게 각광을 받고 성공하는 동안, 영화는 싸구려 영화 배급업자의 손에 넘어간다. 원래 영화에는 없었던 노출 장면이 추가되었고, 영화의 제목 또한 바뀌었다. 'Miss Jessica Is Pregnant'는 그렇게 교외 자동차 극장과 비디오 시장을 전전하면서 잊혀졌다. 영화 제작에 참여했던 학생 Nicolas Winding Refn은 세월이 흘러 그 영화와 다시 만난다. 그는 영화를 제대로 살려내기로 결심했고, 복원된 영화는 2018년 뉴욕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무려 50년에 걸친 긴 여정이었다(출처 indiewire.com).

  앤더슨 감독은 네오리얼리즘(Neorealism)을 바탕으로 한 영화를 찍으려 했다. 그는 오하이오 주의 자연 풍광과 그곳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Spring Night, Summer Night(1967)'은 그런 감독의 의지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영화는 퇴락한 탄광촌 마을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준다. 초반부에 보이는 동네 선술집의 떠들썩한 음주 가무 장면은 실제 동네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만들어졌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친밀함 속에 삶의 소박한 기쁨을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불황과 폐쇄적인 지리적 여건이 뿜어내는 쇠락의 기운은 영화 전체를 휘감는다. 좀처럼 출구가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이복 남매는 탈출을 꿈꾼다. 그런 가운데 예기치 못한 제시카의 임신은 가난에 찌든 대가족을 혼란에 빠뜨린다.

  이복 남매의 금지된 사랑. 영화는 금기시 되는 소재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충격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은 없다. 칼과 제시카가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만 아니라면, 그들은 마치 평범한 연인처럼 보인다. 그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오하이오의 광활하고 고요한 자연 풍광은 '근친상간'이란 소재의 충격을 중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관객은 칼과 제시카가 올무처럼 자신들을 옥죄는 가난하고 희망없는 현실에서 어떻게든 탈출하기를 응원하게 된다. 이미 벌어진 일 보다, 그들의 미래를 염려하게 되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그런 용납받지 못할 행위를 옹호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두 주인공들을 억누르는 비극적 운명의 굴레에는 작은 균열들이 존재한다. 아버지 버질은 사별한 첫째 아내에게서는 칼을, 재혼한 아내에게서는 제시카를 얻었다. 그러나 제시카의 엄마 매(Mae)는 젊은 시절부터 단정한 품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급기야 칼은 매에게 제시카의 진짜 아빠가 누구냐고 따져 묻는다.

  앤더슨의 이 영화는 그리스 비극을 떠올리게 만든다. 'Hamartia'라고 부르는 주인공을 비극으로 이끄는 결함, 그것은 성격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 모두를 포함한다. 칼과 제시카가 안고 있는 심각한 도덕적 하자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서 재현되는 hamartia와 일치한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Spring Night, Summer Night'의 배경은 궁정이 아닌, 퇴락한 탄광촌을 품고 있는 애팔래치아 산맥의 외딴 마을이라는 점이다. 또한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는 명백한 모자(母子) 사이이지만, 영화 속 이복 남매에게는 해소되지 않은 출생의 비밀이 존재한다. 그 점은 이 영화가 그리스 비극의 현대적 변용을 절묘하게 이루어냈다는 인상을 준다.

  50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를 견뎌낸 이 영화를 만나는 것은 관객에게도 커다란 행운이다. 'Spring Night, Summer Night'은 헐리우드의 상업적 틀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예술적 궤적을 보여준다. 1960년대 후반에 미국 영화사의 특이점을 만들어낸 이들은 모두 아마추어들이었다. 열정과 패기로 뭉친 이들이 만들어낸 화면에는 흘러넘치는 서정성과 놀라운 흡인력이 존재한다. 안개가 끼고 바람이 부는 봄 밤과 여름 밤의 아련한 풍경, 운명과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이복 남매의 절망적 사랑, 광대한 오하이오의 자연, 앤더슨 감독은 그렇게 새로운 '애팔래치아 비극'을 완성해냈다.   


*사진 출처: blueprintreview.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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