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국 영화를 보았다. 영어 자막이 있었는데, 계속 외국 영화를 보다 보니 우리말 대사임에도 나도 모르게 자막을 따라가고
있었다. 한 5분 정도를 그러다가 대사에 익숙해지니 그제서야 자막을 무시할 수 있었다. 미국 사람들이 자막 있는 외국 영화를
싫어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거추장스러운 자막 없이 온전히 영화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렇게 본 영화는
홍상수의 2020년작 '도망친 여자'이다.
영화의 첫 장면, 전원 주택의 텃밭에서 물을 주고 있는 영순이 등장한다. 이웃에 사는 젊은 여성이 오늘 면접을 보러 간다며
영순에게 인사를 한다. 그런데 영순의 대사톤은 연극하는 것처럼 영 어색하고 느리게 들린다. 영순과 대화하는 이웃 여성도 마찬가지.
영화 내내 이 이질적이고 느린 대사톤이 이어진다. 보다보면 적응이 되기는 한다. 홍상수식 '낯설게 하기'인가? 아무튼 그렇게
이어지는 대화들의 내용도 시시하기 짝이 없다. 남편이 출장을 간 사이에 모처럼 영순을 방문한 감희(김민희 분)는 고기와 막걸리를
사들고 온다. 고기 구워먹으면서 하는 대화들이 어떤 것이냐 하면, '고기맛이 정말 좋다'와 '소의 눈망울이 세상에서 제일
순수하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들. 뭐 그런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웃에 산다는 남자가 그들을 찾아온다. 아내가 고양이를
무서워 하니까 고양이 밥을 주지 말라는 부탁을 한다. 감희는 집안에서 CC TV로 그것을 보고 있다가 나중에 나온다.
두 번째 방문에서도 그런 상황은 비슷하게 반복된다. 감희는 인왕산 아래 주택에 사는 수영(송선미 분)을 만나러 간다. 대화 도중
수영의 집을 찾아온 남자가 있다. 감희는 현관의 인터폰 화면으로 수영과 남자의 대화 장면을 본다. 세 번째 만남의 장소는
영화관, 그곳에서 감희는 과거의 친구를 우연히 만난다. 우진은 감희와 한 때 사귀었던 남자 정 선생과 결혼했다. 정 선생(권해효
분)은 마침 그곳에서 북 콘서트를 하고 있다. 감희는 남자와 대화를 나눈다. 이번에는 관찰자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대면한다.
이렇게 등장하는 세 명의 남자들은 다 등을 돌린 채로 대화를 한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이렇게 남자들이 쪼그라든 비중으로 나온 적이 있었던가? 영화는 시종일관 여자들의 이야기들로 채워진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라고 말하는 것도 우습다.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들은 지극히 일상적이며 건강과 돈, 관계에 대한 시시한
잡담들이다. 물론 남자들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기는 한다. 영순은 전 남편과 힘든 과정을 거쳐서 이혼했고, 수영은 필라테스 강사일
하면서 10억이나 되는 돈을 모았지만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 고민이다. '한국 남자들이 좀 심하지'라고 말하는
수영은 건축가 별거남과 잘해보려는데, 연하의 스토커가 말썽이다. 감희의 과거 남친과 결혼한 우진은 어떤가? 남편의 유명세와 말
많은 허세가 싫다며 감희에게 토로한다.
그렇다면 주인공 감희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을까? 남편과 지낸 5년 동안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고, 사랑하는 사람은
늘 가까이 있어야 된다는 남편의 신조 때문에 그렇게 살아왔다고 말하는 감희. 남편을 사랑하냐는 영순의 질문에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들기는 한다고 얼버무린다. 감희와 지인들이 나누는 이런 대화들을 듣다보면 정말로 저 사람들은 진심을 말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홍상수는 그 대화 장면들을 대부분 풀 쇼트와 미디엄 쇼트들로 처리한다. 관객이 인물들의 표정을 좀 더 자세히 보면서 대화의
뉘앙스를 파악하고 싶어도, '딱 여기까지만'하고 선을 그어놓고 더 이상의 정보를 주지 않는다.
감희는 자신이 만나는 지인들의 삶의 여건을 부러워하는 말들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한적해서 살기 좋을 것 같은 영순의 집은 이웃이
키우는 닭 우는 소리가 새벽 내내 들리고, 또 다른 이웃인 젊은 여성은 아버지의 눈을 피해 영순의 집 문 앞에서 담배를 피운다.
수영은 또라이 같은 연하 스토커에게 시달리는 중이다. 우진은 잘 나가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괴리감을 느낀다. 영화의 제목
'도망친 여자'는 과연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영순은 이웃집에 살던 여자가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갔다고 말한다. 그러나 남편과
힘겹게 이혼한 영순은 교외의 전원 주택으로 도피한 것일 수도 있고, TV에서 매번 같은 말을 늘어놓는 남편에게 진력을 내는
우진은 그렇게 마음이 멀어져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감희는? 관객은 감희가 남편을 사랑하는지, 결혼 생활은 어떤지 알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은 떨어지면 안된다는 것은
남편의 신조이지 감희의 의지가 아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감희는 과거 남친을 만나서 대화를 나눈다. 감희는 정말로 정 선생을
우연히 만난 것일까? 일부러 찾아온 거 아니라고 말하는 감희와 그게 아니지 않냐고 되묻는 정 선생. 두 사람의 대화에는 질척거리는
과거의 잔재가 느껴진다. 정 선생과의 대화를 황급히 끝낸 감희는 영화관을 나오다 다시 되돌아간다. 그리고는 본 영화를 다시 또
본다. 감희가 보는 영화에는 끊임없이 파도가 일렁이고 있다. 그 영화를 보는 감희의 모습은 남편에게서 도망쳐 나와 잠깐의 휴식을
누리는 사람 같다.
이 영화의 IMDb의 관객 리뷰에 별점 1개를 준 이는 이렇게 써놓았다.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어처구니 없으며(absurd),
마치 학교 과제 프로젝트 같다. 이 영화를 본 내 시간이 아까울 따름이다' 나는 그 리뷰의 두 가지 사항에는 부분적으로 수긍할
수는 있지만, 마지막 부분은 좀 생각이 다르다. 시시한 대화들로 채워진, 뭔가 어설프게 보이는 이 영화를 나는 꽤 즐겁게 보았다.
그냥 즐거웠던 정도가 아니라, 매료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이 영화에는 기이한 매혹이 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영화관에서 본 것이 1996년, 나는 결코 홍상수 영화의 열성적인 관객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그의 영화들과 거리를 두고 지냈지만, 어느 때고 다시 돌아가 홍상수의 영화들을 챙겨서 보기는 했다. 한 명의 관객이 25년이 지났음에도 그가 내놓는 영화들에게서 마음이 멀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 또한 홍상수가 지닌 재능이다. 영순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던 감희는 영순이 문닫고 보여주지 않는 3층에 대해 말한다. 너무 더러워서 보여주지 않는 거라고 말하는 영순에게 감희는 자신을 못믿어서 그런 거 아니냐고 묻는다. 정말로 영순의 집 3층은 더러운 곳일까? 아니면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까? 홍상수에게는 영순의 집 3층처럼 아직도 꼭꼭 감춰둔 자신의 영화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 출처: asianmovie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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