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대회 출신인 여자는 자신의 인생에서 왕자님 같은 남자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짧은 기간 동안 연애를 했고, 여자는
결혼을 꿈꾸었다. 그런데 몰몬교도인 남자는 선교를 위해 영국 런던으로 파송된다. 여자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지 않았다. 영국으로
남자를 찾아 떠났다. 여자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경호원까지 채용한 여자는 남자를 찾아내 납치한다. 데본 지역의 시골 오두막집으로
남자를 데려간 여자는 3일 동안 남자를 감금하고 함께 지낸다. 여자는 런던에서 진짜 결혼식을 올릴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런던으로
돌아온 남자는 경찰서로 달려간다. 그리고 자신이 납치와 감금, 강간을 당했다고 여자를 고발했다.
에롤 모리스의
2010년작 다큐 '타블로이드(Tabloid)'는 1977년에 영국과 미국을 뒤흔들었던 희대의 사건을 다룬다. 사건의 주인공인
여자는 미인대회 출신의 조이스 맥키니, 자신이 사랑한 남자 커크 앤더슨의 고발로 맥키니는 정식 재판까지 3개월을 감옥에서 지낸다.
보석으로 겨우 풀려나서는 캐나다를 경유해 미국으로 도망쳤다. 맥키니는 재판 전 청문회에서 앤더슨과 보낸 3일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했다. 맥키니 사건은 황색 언론에게 둘도 없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온갖 선정적이고 저질스러운 내용의 기사가 신문에 넘쳐났다.
미국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하이에나 언론의 사냥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다큐는 맥키니의 인터뷰, 당시 사건을
보도한 영국 타블로이드와 TV 영상 자료들, 맥키니의 주변 인물들과 전직 몰몬 선교사의 증언으로 구성되어 있다. 커크 앤더슨은
인터뷰를 거부했기 때문에 관객은 맥키니가 일방적으로 진술하는 인터뷰 내용으로 사건을 들여다 보게 된다. 이 여자의 말솜씨는
정말이지 대단해서 배우, 성우, 만담가를 뺨친다. 맥키니는 여자가 남자를 강간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며 합의하에 이루어진
관계라고 강변한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일까? 이에 대해 전직 몰몬교 선교사였던 이는 하나의 단서를 던져준다. 맥키니가 주장한
합의에 의한 관계, 앤더슨이 고발한 강압에 의한 범죄, 아마도 그 둘의 이야기가 섞어진 중간 지점이 아니겠느냐고 추측한다.
이미 맥키니 기사로 돈맛을 본 영국의 신문들은 미국의 맥키니를 취재하기 위해 '특파원'을 파견한다. 데일리 익스프레스(Daily
Express)가 맥키니의 협조하에 이벤트와 설정 사진과 같이 흥미롭고 다채로운 뉴스를 쏟아냈다면, 데일리 미러(Daily
Mirror)는 맥키니의 과거를 파헤치며 악의적이고 선정적인 합성 사진으로 맞불을 놓았다. 신문의 전면 2페이지가 맥키니의 누드
사진과 불미스러운 과거(맥키니는 영국행 여비를 모으려고 콜걸로 일했다) 기사로 도배되었다. 맥키니는 절망했고, 거의 정신이 나가서
자살 시도까지 했다.
에롤 모리스는 황색 언론의 추악한 보도 행태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당시 기사 자료들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기술의 발달 덕분이었다. 마이크로 필름으로 저장된 기사들은 자료 복사 신청을 하고 돈만 부치면 대서양을 건너
모리스에게 배달되었다. 관객들은 너절하고 입에 담기도 민망한 기사 제목과 사진들로 도배된 당시 신문들과 시간을 뛰어넘어
마주한다. 그 기사들은 한 여성에 대한 인격적 모독과 사회적 죽음을 선고하는 부고장 같다. 물론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감독인 에롤 모리스조차도 맥키니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나중에 토로했다. '타블로이드'는 실체적 진실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다. 관객들 또한 감독이 맥키니에 대해 느끼는 혼란스러움과 불신을 공유할 수 밖에 없다. 과장과 허풍이 섞인 이 여자의
진술은 진실과 허구를 구별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다큐의 후반부는 언론에 의해 수난을 겪은 여성이 중년에
이른 현재 이야기를 담는다. 외딴 근교의 거주지에서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고 지낸다는 맥키니는 다시 한번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자신이 아끼던 개가 죽자, 맥키니는 한국의 유전 공학 사업체에 개 복제를 의뢰한다. 타블로이드는 맥키니를 잊지 않고 있었다.
여자는 가명을 쓰며 부인했으나, 결국 정체가 드러난다. 다큐의 마지막, 여자는 누군가 자신의 집에 침입하려 한다면서 개들만이
자신의 유일한 친구라고 쓸쓸히 말한다. 과연 맥키니가 이런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 때문일까? 이 괴상하고
특이한 한 인물의 연대기를 에롤 모리스는 균형감각을 가지고 찬찬히 펼쳐 보여준다.
'타블로이드'가 개봉된 뒤에
맥키니는 2011년과 2016년, 두 번에 걸쳐서 에롤 모리스를 고소했다. 다큐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였다. 모리스는
'가늘고 푸른 선(The Thin Blue Line, 1988)'에서 살인범으로 몰린 남자가 무죄 판결을 받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그런데 남자는 모리스가 다큐로 부당한 이득을 취득했다며 소송을 냈다(그는 제작사와 합의해서 돈을 뜯어갔다). 독특한
소재와 흥미로운 인물들을 취재하는 다큐멘터리스트의 숙명인가? 어쨌든 맥키니의 소송은 모두 패소했다. 다큐 제작자가 아무리 객관적인
시각으로 사건과 인물에 접근한다고 해도,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에롤 모리스는 실제적으로 입증한다. 지리한
소송으로 에롤 모리스를 타블로이드에 오르내리게 만들었던 맥키니는 노숙자로 매우 곤궁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사진 출처: movieste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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