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헐리우드 영화에서 프로이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아마도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히치콕의
'스펠바운드(Spellbound, 1945)'이겠지만, 로버트 시오드막(Robert Siodmak)의 '다크 미러(The Dark
Mirror, 1946)'도 그에 필적할 만하다. 시오드막 감독은 독일 출신으로 '다크 미러'에서 표현주의와 정신분석학을
절묘하게 결합시켰다. 사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정신의학과 심리학 전공자들은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는 유사(類似) 심리학적
지식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쌍둥이는 선과 악이 분리된 각각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는 이론이 등장하며, 로르샤
검사(Rorschach test)는 범죄 성향을 파악하는 도구로 쓰인다. 이런 영화들을 보다보면 정신분석학이 당시 헐리우드
영화들을 망가뜨린 것인지, 헐리우드 제작자들과 시나리오 작가들이 프로이트의 학문을 곡해한 것인지 가끔씩 생각해볼 때가 있다.
'다크 미러'는 도입부에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곧이어 목격자들에 의해 용의자로 지목된 여성이 등장한다. 백화점 판매원으로
일하는 테리(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분)는 경찰의 심문을 받는다. 그런데 테리에게는 쌍둥이 동생 루스가 있고, 그 두 사람은 각자
강력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스티븐슨 형사는 쌍둥이 연구자인 엘리엇 박사의 도움을 받기로 하고, 박사는 쌍둥이들에게
자신의 연구에 참여하길 요청한다. 개별적으로 테리와 루스 자매의 정신 분석 연구를 진행하던 엘리엇 박사는 점점 자매의 서로 다른
기질을 파악하게 된다. 박사가 루스에게 호감을 느끼자, 테리는 질투에 휩싸이고 루스의 불안을 조장하기 시작하는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1인 2역을 맡아 테리와 루스의 서로 다른 면을 섬세하게 연기한다. 편집증적이고 냉혹한 내면을 지닌
테리, 그런 테리에 의해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는 착하고 유약한 루스, 이렇게 분리된 선과 악의 캐릭터는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연상하게 만든다. 엘리엇 박사는 나름대로 자신의 전문적 지식을 총동원해서 테리와 루스 가운데 누가 범인인지 알아내려고 애를
쓴다. 거짓말 탐지기로 알려진 폴리그래프(polygraph)도 나오고, 잉크 반점을 이용한 카드를 제시하며 연상되는 것을 말하게
하는가 하면(로르샤테스트), 심지어 왼손잡이(영화 속 테리)는 뭔가 비뚤어진 어두운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과연
전적으로 선하기만 하고, 또는 사악하기만한 인물이 존재할 수 있을까? 어쨌든 영화 속 테리와 루스는 전혀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처럼 분리된 성향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
영화는 사악한 기질을 범죄 성향과 연결시킨다. 그것은 타고난
것으로 결코 외적 요인에 의해서 변화될 수 없다고 상정된다. 엘리엇 박사는 루스를 가장하고 자신을 찾아온 테리에게 '테리의 내면은
뒤틀려 있다'고 말한다. 무언가 결여된, 일그러진 내면을 가진 이 여성은 자신의 쌍둥이 자매를 죽음으로 몰고 가려고까지 한다.
'다크 미러'가 보여주는 범죄에 대한 관점은 타고난 천성, 생득적 요인에 의한 필연적 결과이다. 그러한 시각은 종종 살인 사건과
같은 중대 범죄 재판에서 정신분석학을 감형 요건으로 이용하려는 데에까지 미쳤다.
리처드 플라이셔(Richard
Fleischer) 감독의 '강박충동(Compulsion, 1959)'은 1924년에 시카고에서 있었던 실제 살인 사건 재판을
다룬다. 명문대에 재학 중인 두 명의 부유한 남학생들이 아동을 납치, 유기한 잔혹한 범죄였다. 니체의 초인 사상에 경도된
'레오폴드와 로우브(Leopold and Loeb)'는 자신들의 지적인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 완전범죄를 기획하고 실행한다.
영화는 그들이 저지른 범죄의 세부적 묘사는 생략하고, 대신 재판 과정을 길게 늘어놓는다. 실제로 동성 연인이었던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언급은 검열(Hays code) 때문에 드러낼 수 없었다. 그것은 그 사건의 설정을 따온 히치콕의 영화 '로프(Rope,
1948)'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들의 동성애적 관계가 범죄의 주요한 동기 가운데 하나였지만, 그것을
묘사할 수 없게 되면서 범죄의 동기는 정신병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병들고 썩은 내면, 즉 구제할 수 없는 정신적
이상(abnormality)이 법정에서 두 사람의 범죄를 설명하는 근거가 된다. 그리고 정신의학자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주요한
증인으로 등장한다. 실제로 레오폴드와 로우브 사건의 재판과정에서 변호인 측이 내세운 논리가 그와 같았다. 변호인단은 범인들이 성장
과정에서 겪었다는 학대와 심지어 내분비계의 문제가 환각 증상을 불러왔다는 이야기까지 들먹였다.
20세기를
지나오면서 심리학과 정신의학은 인간 내면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는 하나의
유용한 도구일 뿐이지, 절대적인 기준은 될 수 없다. 특히 이상 심리와 범죄를 연결지어서 보여주는 기존 영화의 내러티브 방식은
때론 지나치게 단선적이고 구태의연하게까지 보이는 면이 있다. '다크 미러'는 1940년대 헐리우드 영화가 천착한 '이상 심리학'
장르의 계보를 보여준다. 오늘날의 시각에서는 군데군데 헛점이 보이고 때론 실소가 나오기도 하지만, 영화는 그 시대가 범죄를
바라보는 지배적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플라이셔의 '강박충동'에서도 그러한 관점은 강력하게 지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영화에서 프로이트의 정식분석학적 틀이 인용되는 것을 보기는 어렵다.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제 인간 심리의 연구는 뇌과학과
유전자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으로 확장되었고, 영화도 그러한 시대적 흐름을 따라갈 수 밖에 없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런
시대적 조류에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사진 출처: classicfilmnoir.com 'The Dark Mirror'의 루스와 테리(그들은 각자 이름이 새겨진 목걸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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