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언제나 이야기가 문제가 된다. 마치 사람에게는 이야기를 쫓아가려는 유전자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신화와 전설,
그리고 문학 작품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늘 이야기에 매혹되었다. 영화라고 뭐가 다를까? 물론 영화는 다양한 시각적 실험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야기에 종속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관객들은 언제나 주인공과 이야기를 파악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카렌 샤크나자로프(Karen Shakhnazarov) 감독의 1998년 영화 '보름달이 뜬 날(Day of
the Full Moon)'은 그런 관객들의 기대를 보기좋게 배반한다. 이 영화에는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무려 80명에
이르는 등장인물이 쏟아지는 영화, 그런데 거기에는 주인공도 이야기도 없다.
영화의 도입부, 영화사를 찾아가는
한 남자가 보인다. 남자는 영화사 관계자들과 짧은 대화를 나눈다.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인지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는 골머리를
썩고 있다. 남자의 조부모가 귀족 출신이라는 말을 듣고 거기에서 소재를 얻고자 모친의 영화사 방문을 의뢰한다. 그렇게 남자는
떠나고, 두 사람은 몽골 제국의 칭기스 칸을 등장시키는 것은 어떤지 서로 의견을 나눈다. 그러고 나서 화면은 몽골 초원의 소년
칭기스 칸을 비춰준다. 다음 장면, 영화사 복도에 오디션을 보러 온 배우 지망생이 등장한다. 멋진 외모의 여성은 버스에 타는데,
버스 안에서 차창 밖의 자동차 승객과 눈이 마주친다. 미소를 지어보이는 젊은 남자, 그와 일행은 외딴 차고지에 도착한다. 잠시
후, 어디선가 도착한 승합차의 문이 열리고 기관총이 난사된다. 차에 탄 이들은 모두 죽는다. 차고지 근처를 지나는 지하철이 마침
멈춘다. 늙은 승객이 처참한 현장을 목격하지만 그는 공원으로 향한다. 공원에 앉아있던 노인은 방송국 인터뷰에 응한다. 노인이
들려주는 과거의 기억, 장면은 1940년대의 어느 레스토랑으로 바뀐다.
그쯤 되면 영화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대충
감이 온다. 마치 연쇄적으로 쓰러지는 도미노처럼 영화의 내러티브는 서로 스쳐지나가는 인물들에게서 끊임없이 부딪혀서 튕겨져 나가며
그 어떤 이야기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시간은 현재에서 1940년대, 근대와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이러한
비선형적(非線形的) 시간 구조, 스토리를 계속 분쇄시켜가는 이 영화는 로버트 알트만의 '숏 컷(Short Cuts, 1993)'을
떠올리게 만드는 지점이 있다. 그러나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되는 '숏 컷'과는 달리 '보름달이 뜬 날'은 방사형으로 뻗어나갈
뿐이다. 카렌 샤크나자로프 감독은 자신의 영화적 실험이 관객들의 저항을 받을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런
영화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가 제작된지 20주년을 기념하며 모스 필름과 했던 인터뷰에서 그는 새로운 예술적 도전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영화가 1990년대의 러시아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그의 부연 설명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여러 등장 인물들의 삶의 편린들은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에 대한 이해를 촉진시킨다. 기관총을 난사하는 갱들과
청부 살인을 저지르는 저격수는 자본주의의 도입과 함께 러시아에 자생하기 시작한 폭력조직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차에 탄
저격수를 비추던 카메라는 차 안의 노래를 소개하는 DJ가 있는 라디오 방송국으로, 그리고 나서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그 노래를
신청한 여성 청취자의 방으로 이동한다. 새로운 러시아의 젊은 여성은 신나게 자신의 방 안에서 춤을 춘다. 이 아가씨의 모습은
이전까지 보았던 구 소련 영화의 젊은 세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렇다. 소련은 붕괴했고, 이제 '러시아'라는 이름의 나라가
등장했다.
국가가 영화를 검열하던 소련 시절이라면 등장하지 못할 매춘부도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귀엽고 청순한
외모의 매춘부는 TV를 보다가 중세 수도원의 미라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썩지 않고 발견된 공주의 시신, 그런데 그 공주는
매춘부의 얼굴과 똑같다. 1990년대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은 영화 속에서 여러 번 작동한다. 푸쉬킨이 몽골계 민족인
칼미크족 여성과 만나는 장면도 있다. 그런 장면들을 통해 샤크나자로프 감독은 '러시아'라는 나라의 근원,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비에트 연방은 붕괴했지만, 러시아인이 가진 고유의 정체성은 손상될 수 없는 것이다. 러시아 정교의 오랜 전통,
위대한 문인 푸쉬킨, 칭기스 칸이 호령했던 중앙아시아의 끝없는 들판, 이 모든 것은 현대의 러시아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보름달이 뜬 날'은 분명히 소련 이후의 러시아 사회를 보여주지만, 샤크나자로프 감독의 시선은 좀 더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차원을
바라 본다. 그의 시선은 인간에게서 동물의 내면으로까지 향한다.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늙은 개는 주인과 함께 했던 사냥의 기억을
떠올린다. '기억'은 이 영화에서 주요한 주제가 된다. 과거의 연인인 재즈 연주자를 무대 뒷편에서 만난 여자는 둘의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1940년대 화려한 레스토랑에서 와인잔을 깨뜨리는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기억을 가진 두 명의
사람도 나온다. 그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이지만, 그렇게 공동의 기억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그들을 비롯해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은
'역사'라는 거대한 모자이크화의 미분화된 점들처럼 보인다.
샤크나자로프 감독의 영화적 실험은 성공적인가? 관객에
따라서는 이야기의 깊이가 없는 이 영화의 피상적 접근 방식에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겉으로는 무의미한 편린들의 나열처럼
보이는 '보름달이 뜬 날'에서 의외로 굳게 내린 현실의 뿌리를 발견했다. 샤크나자로프 감독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와 시대에 대해
예리한 관찰력을 가지고 그것을 영화 속에 끌어들인다. 영화가 만들어진 1998년, 어설프게 이식된 자본주의는 러시아를 벼랑 끝으로
내몬다. 그해 러시아는 갑작스럽게 닥친 금융 위기로 모라토리엄(채무지불유예)을 선언했다. 결국 러시아는 혹독한 경제 성장통을
치루어야만 했다. 그 시기에 만들어진 '보름달이 뜬 날'에는 공산주의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가는 신생 국가의 흔들림과 들뜸,
불안정한 모습이 들어 있다.
*사진 출처: mosfilm.ru '보름달이 뜬 날'에서 연기지도를 하는 카렌 샤크나자로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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