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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일본 영화(Post-war Japan Movie, 1946-1955) 3편: 전후 일본 사회가 마주한 고통과 혼란, 미스터 푸(プーサン, Mr. Pu, 1953)

 

  노로는 고등학교 선생이다. 그는 과속을 하는 트럭을 피하려다 손을 다친다. 그가 받는 빠듯한 봉급으로 단칸 월세방 돈 내는 것도 힘든데 병원비까지 나가게 생겼다. 그는 학교에서 그의 봉급을 올려주길 기대한다. 하지만 깡패같은 고등학교 이사장은 노로에게 야간 고등학교 강의까지 더하라고 강권한다. 천성이 유약한 노로는 '아니오'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한다.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 노로. 그는 자신의 제자가 권유한 반정부 시위에 나가보기로 한다. 시위대는 경찰의 강경대응으로 무참히 진압되었다. 노로는 경찰서에 끌려갔다가 겨우 풀려난다. 하지만 이 일을 빌미로 이사장은 노로를 해고한다. 전후의 어려운 시절, 노로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이치카와 곤(市川崑, Kon Ichikawa) 감독의 영화 '미스터 푸(プーサン, Mr. Pu, 1953)'는 고등학교 선생 노로와 그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후 일본 사회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원작이 되는 만화가 있다. 만화가 요코야마 타이조(横山泰三)는 1950년부터 1953년  마이니치 신문(毎日新聞)에 4컷 만화 '미스터 푸(プーサン)'를 연재했다. 4컷 만화에 담긴 날카로운 사회비판적 메시지 때문에 만화는 연재 중단의 압력을 받았다. 이치카와 곤은 그 만화에서 영화의 주요한 소재를 차용했다. 영화  '미스터 푸(プーサン)'는 명확한 서사 대신에 다양한 등장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영화의 그러한 구성은 전후 일본 사회의 여러 면면들을 부각시킨다. 

  노로는 다친 손의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간다. 그런데 의사는 노로의 몸을 진찰하더니 '영양실조'라면서 잘 먹어야 한다고 처방을 내린다. 젊은 의사는 환자들 대부분이 제대로 먹지 못해 건강이 좋지 않다고 말한다. 노로가 의사에게 손을 치료받고 싶다고 하자, 의사는 병원의 X-ray 기계가 고장나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전후 일본 사회가 처한 열악한 경제 상황을 암시한다. 패전은 일본 사회 전체에 내려진 파산 선고나 다름없었다. 식량 수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일본은 배급제를 실시해야만 했다. 영화 속에서 노로는 그의 학생에게 배급 카드를 암거래로 싼값에 구매한다. 암거래는 전후 일본 경제를 특징짓는 주요한 요소였다. 국가가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물자들은 민간업자의 손에 의해 암시장으로 흘러들었다. 모두들 먹고 살기 위해 암시장에 뛰어들었다.

  패전국 국민 일본인들에게 생계를 해결하는 것은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런 면에서 전후의 일본인들에게 돈과 물질에 대한 강렬한 욕망은 필연적인 것이다. 노로가 세들어 살고 있는 집의 주인은 세무소의 직원 카네모리이다. 카네모리의 딸 칸코는 은행에 다니는데, 칸코는 박봉을 받으면서 늦은 밤까지 일을 한다. 늘 돈에 쪼들리는 칸코는 자신의 앞에 쌓인 돈뭉치를 센다. 칸코가 세어서 묶어놓는 지폐는 산더미처럼 쌓인다. 몽타주 쇼트로 제시되는 이 장면은 물질적인 부가 하층 계급과 유리된 것임을 보여준다.

  대다수의 일본인들, 특히 하층 계급의 사람들에게 전쟁이 가져다준 결과는 참혹했다. 노로는 우연히 들어간 경찰서에서 총을 들고 나타난 미친 남자와 아들을 죽였다고 말하는 미친 여자를 본다. 경찰서에는 살인 사건 신고가 들어온다. 패전의 정신적 공황은 일상 속에 광기와 범죄를 끌어들였다. 하층 계급의 일탈적 면모는 여성의 성(性)을 상품화하는 형태로도 나타났다. GHQ(General Headquarters)로 대변되는 미 주둔군은 미국식 소비주의와 향락주의를 일본에 이식시켰다. 영화 속에서 노로는 칸코와 함께 데이트를 하는데, 그 장소가 나름 충격적이다. 두 사람은 반라(半裸)에 가까운 무희의 스트립쇼 공연을 본다. 대낮의 번듯한 공연장에 모인 사람들은 무대 위 스트립걸에게 넋이 나가 있다.

  영화는 패전 이후 일본 사회의 극명한 혼란상을 만화경(萬華鏡)처럼 보여준다. 노로의 제자들 가운데에는 부잣집 아들 아와다가 있다. 그의 부친은 전쟁에서 장군으로 복무한 사람이었다. 전직 장군은 전쟁 수기를 써서 대성공을 거둔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그는 정계에 입문해 자신의 입지를 세우려 한다. 전직 장군은 정치인으로 비교적 쉽게 변모한다. GHQ는 '일본 사회의 안정'이라는 명목하에 전범의 처리와 전쟁 책임에 대한 규명을 소홀히 하였다. 그 결과 아와다의 부친과 같은 전직 군 고위층은 자신의 계층적 지위를 지켜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지배 계급이 별 어려움 없이 전후 일본 사회에 적응해 나간 것과는 달리, 대다수 일본인들에게 전후의 사회는 혼돈 그 자체였다. 노로는 반정부 시위에 나갔다는 이유로 해고당한다. 영화 속에서 노로가 참여한 시위는 실제 1952년 5월 1일에 일어난 '피의 메이데이 사건(Bloody May Day, 血のメーデー事件)'이다. 이는 일본의 좌익이 주축이 된 반정부 시위였다. 미 군정(GHQ)의 종료와 함께 1952년 4월 28일, 샌프란시스코 조약(Treaty of San Francisco)이 발효되었다. 이 조약에서 미국은 오키나와의 반환을 거부하고, 사실상 일본을 미국의 식민지의 지위로 두려는 뜻을 명문화했다. '피의 메이데이 사건'은 그에 대한 좌익의 반발로 일어났다. 격렬한 시위는 폭력 사태와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이어졌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1953년 5월부터 9월까지 닛산 자동차 노동자들의 시위가 있었다. 닛산 쟁의(日産争議)는 하층 계급 노동자들의 억눌린 불만이 터져나왔음을 보여준다.  

  "별 거 아닌 작은 일이 싸움으로 번지는 게 꼭 지금의 일본 같네."

  노로는 집주인 카네모리와 동네 음식점에서 밥을 먹던 중이었다. 갑자기 옆자리에서 일어난 사소한 말다툼이 음식점 안에 있던 사람들의 난투극으로 번진다. 노로와 카네모리는 구석진 곳으로 피하면서도 자신들의 밥그릇을 꽉 붙잡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렇게 한탄한다. 전후 일본 사회는 극심한 대립과 투쟁이 뒤엉킨 곳이었다. 한국 전쟁(Korean War)은 그런 일본에게 있어 새로운 출구를 제공했다.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노로는 무기 공장에 취직하게 된다. 전에는 미싱 공장이었던 곳은 이제 총알을 생산한다. 그곳에서 노로는 총탄 상자를 나르는 일을 한다. 노로가 실수로 떨어뜨린 상자에서 총알이 무더기로 쏟아진다. 전쟁으로 패망했던 일본에게 한국에서 일어난 전쟁은 재기의 발판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노로는 일하러 나가기 위해 이른 새벽에 일어난다. 그는 차비를 꺼내려고 지갑을 열지만 거기엔 땡전 한 푼도 없다. 노로는 어둠이 가시지 않은 거리를 휘적휘적 걷는다. 거리에는 아와다의 부친이 새로 낸 책의 광고판이 곳곳에 있다. 선거법 위반으로 붙잡힌 그는 감옥에서의 경험을 글로 팔아먹었다. 갑자기 군용 트럭이 줄지어 지나간다. 겁에 질린 노로는 전봇대 뒤로 숨는다. 트럭이 사라진 다음에 노로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노로가 멀리 사라지는 텅 빈 거리. 영화의 이 마지막 장면은 이후 일본 사회에 대한 묵시적 통찰을 보여준다. 피의 메이데이 사건 이후, 일본은 좌익 세력을 분쇄하고 보수주의로 나아갔다. 아와다의 부친과 같은 전쟁의 주역들이 서서히 일본의 정치계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패전의 기억은 탈색되었다. 또한 일본은 전쟁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그 위치를 재정립하게 될 터였다. 감독 이치카와 곤은 전후 일본 사회의 고통과 혼란을 통렬하게 뒤틀린 블랙 코미디 영화에 담았다. 이 영화는 어떤 면에서 이치카와 곤의 진정한 걸작인지도 모른다.

 


*영화의 원작 만화의 작가 요코야마 타이조(横山泰三)는 주인공의 이름 '푸(プー)'는 의미없는 단어이며, 발음이 재미있어서 그렇게 붙였다고 말했다(출처: ja.wikipedia.org). 


**사진 출처: natalie.mu           노로 역의 이토 유노스케(伊藤雄之助)


***사진 출처: k-plus.biz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피의 메이데이 사건(血のメーデー事件, 1952년 5월 1일)




*****이치카와 곤(市川崑, Kon Ichikawa) 감독의 영화들 리뷰

미시마 유키오와 이치카와 라이조의 만남, 불꽃(炎上, Conflagration, 1958)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9/conflagration-1958.html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기묘한 향수, 도련님(ぼんち, Bonchi, 1960)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9/bonchi-1960.html

파계(破戒, The Outcast, 1962)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11/apostasy-1948-outcast-1962.html

복고주의적 감성으로 그려낸 제국의 시절, 마키오카 자매들(細雪, The Makioka Sisters, 1983)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9/makioka-sisters-1983.html

       
******추천 도서: 전후 일본 사회를 연구한 기념비적 저작
Embracing Defeat : Japan in the Wake of World War Ⅱ, John W. Dower 저

한국어 번역본: 패배를 껴안고(2009, 민음사) 현재는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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