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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성한 페미니즘 서사에 담긴 치유와 희망, 용과 주근깨 공주(Belle, 2021)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 부분이 들어있습니다.
  

  메타버스(Metaverse). 3차원의 가상 세계와 소셜 미디어가 결합된 새로운 플랫폼. 호소다 마모루의 2021년작 '용과 주근깨 공주(Belle, 2021)'는 바로 그 메타버스를 애니메이션 영화 속으로 끌어들였다. '미녀와 야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는 하나, 이 특이한 애니메이션은 프랑스 동화에서 한참을 이탈한 모습을 보여준다. 호소다 마모루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 '늑대아이(2012)'로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확보한 감독이다. 그런데 작년 가을에 국내 개봉한 그의 신작은 별다른 화제가 되지 못하고 곧 잊혀졌다. 아니, 혹평 속에 버려졌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개연성 없는 이야기, 지나치게 난삽한 플롯, 빈약하게 구축된 캐릭터들. 메타버스 열풍에 발빠르게 탑승한 이 영화는 실패작인 걸까?

  보고 나면 한숨만 나오는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애니메이션 영화에 대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내가 놀랐던 부분은 일본에서의 초대박 흥행 성적이었다. 이 영화는 2021년 일본 흥행 성적 3위로 65억 3천만 엔의 극장 수익을 기록했다. 물론 일본 관객들의 특촬물과 애니메이션 사랑은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용과 주근깨 공주'가 특별히 관객성에 더 호소하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과연 무엇이 일본의 관객들을 이 영화 앞으로 모여들게 만들었을까? 이 글은 그런 의문에서 출발한다.

  주인공 스즈는 17살 고등학생이다. 스즈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겠다고 강물에 뛰어들었다가 목숨을 잃었다. 그 사건은 성장 과정에서 스즈에게 커다란 트라우마로 남는다. 가장 가까운 아버지와도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 스즈에게 절친 히로는 가상 메타버스 'U'를 소개한다. 'Belle'이라는 아이디로 U에서 가수로 데뷔한 스즈는 엄청난 인기를 얻는다. 마침내 전세계의 팬들이 모인 가운데 Belle의 콘서트가 열린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Dragon'의 난동으로 콘서트는 엉망으로 끝난다. U에서 자경단을 이끄는 저스틴이 드래곤을 추적하는 동안, 스즈 또한 드래곤의 정체를 궁금해 한다. 히로의 도움으로 드래곤의 은신처를 찾아낸 스즈는 드래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는데...

  스즈는 현실 세계에서 '목소리'를 잃은 존재이다. 엄마는 스즈의 애원을 뿌리치고 아이를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들었다 목숨을 잃었다. 엄마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 스즈는 마음의 말문을 닫아버린다. 그런 스즈에게 'U'는 새로운 안식처, 탈출구가 된다. 노래에 소질이 있는 스즈는 현실에서는 부를 수 없는 노래를 U에서 불러 스타가 된다(U는 접속자의 생체 정보를 그대로 반영한다). 메타버스의 가상 현실 속에서 스즈는 내성적인 17살 소녀가 아니라, 주근깨가 있는 인기 미녀 가수 Belle이다.

  거기까지의 내러티브 개연성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스즈, 그러니까 Belle이 자신의 콘서트를 망쳐놓은 드래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좀 이상하다. Belle은 드래곤의 숨겨진 내면의 상처에 감응하고 고통을 느낀다. 이런 설정은 현실 세계에서 아동 학대의 피해자인 드래곤과의 연결점을 만들려는 데에서 생겨난 무리수이다. 드래곤은 케이라는 이름의 아이로 남동생 토모와 함께 가정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드래곤은 그런 케이에게 현실 세계의 학대 피해자가 아닌 강력한 힘을 지닌 가상 캐릭터로 기능한다. 스즈가 잃어버린 자신의 목소리를 Belle을 통해 표현하듯, 케이는 학대의 현실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소망을 드래곤에게 투사한다.

  호소다 마모루는 현실 세계의 해결되지 않은 고통과 상처를 그렇게 메타버스와 결합시킨다. 메타버스는 치유와 평화를 가져오는 거대한 인큐베이터가 되며, 그 중심 역할을 떠맡는 것은 수줍고 내성적이며 트라우마가 있는 여고생 스즈이다. '용과 주근깨 공주'는 이제 페미니즘 서사로 명백하게 전환된다. 스즈는 학대받는 '케이' 형제를 위해 'U'에서 자신의 진짜 정체를 드러내야 하는 '언베일(unveil)'의 희생을 감수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먼 거리에 있는 케이의 집에 직접 찾아가서, 폭력을 휘두르는 케이의 부친과 대면한다. 아동 학대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것은 공권력과 국가 기관의 몫이지, 일개 여고생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용과 주근깨 공주'에서 남성 캐릭터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스즈의 아버지는 매번 딸에게 말을 걸지만 무시당한다. 이런 무기력한 아버지와는 반대되는 지점에 폭력으로 자녀를 지배하려는 케이의 부친도 있다. 스즈가 짝사랑하는 시노부 또한 병풍처럼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호소다 마모루는 남성 캐릭터들을 의도적으로 약화시키고 주변부로 밀쳐낸다. 그와는 달리 스즈에게는 '구원자'로서의 사명감을 불어넣고 실행하게 만든다. 이 기이한 페미니즘 서사는 매우 엉성하고 비현실적이다.   

  다시 이 글의 서두에서 제기했던 질문으로 돌아간다. 왜 일본 관객들은 이 애니메이션 영화를 그토록 좋아했을까? 현지인이 아닌 국외자의 시선에는 어차피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몇 가지 요인을 추측해볼 수는 있다. Covid-19이라는 전세계적인 전염병의 유행, 오랜 경제 침체, 동일본 대지진 이후 불거진 여러 사회 문제들의 지속, 이런 상황 속에서 일본인들에게 '치유'와 '희망'은 절실한 가치가 되었다. '용과 주근깨 공주'는 그러한 시점에서 일본 관객들의 관객성과 맞아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이 매우 불완전한 서사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시대의 호흡으로서 영화가 대중의 기대와 취향에 어떻게 부응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내게는 흥미롭게 다가온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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