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 '바실리스크(I basilischi)'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961년, 리나 베르트뮬러(Lina Wertmüller)는
이탈리아 남부를 여행하는 길에 아버지의 고향 Palazzo San Gervasio에 들른다. 남부의 고즈넉한 풍광과 그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베르트뮬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것은 곧 시나리오 작업으로 이어졌다. 일주일 만에 쓰여진 시나리오는
곧 영화가 되었다. '바실리스크(I basilischi, The Lizards, 1963)'는 이탈리아 남부의 낙후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세 젊은이의 이야기를 담는다. 러닝 타임 84분의 그리 길지 않은 이 영화는 시골 청년들의 시시껄렁한 잡담과
일상을 모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후일 이 감독의 영화 작업을 이해할 수 있는 여러 단서들을 내포한다. '귀부인과
승무원(1974)'에서 보여주었던 성과 계급에 대한 전복적 정치학은 베르트뮬러가 자신의 영화에서 끊임없이 성찰했던 주제이다.
베르트뮬러의 데뷔작 '바실리스크'에는 이탈리아 남부 주민의 정서, 토지 개혁을 둘러싼 계급간의 갈등, 삶의 근원으로서의 성에 대한
감독의 관점이 들어가 있다.
영화는 한낮의 낮잠(siesta)에 빠진
시골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모두들 자느라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이 마을의 나른하고 한가로운
풍경은 그들이 낮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별다를 게 없다. 프란체스코는 마음에 둔 아가씨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구애하지만, 그의
노력은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세 젊은이 가운데 가장 나이들어 보이는 세르지오는 지나가는 여자의 몸매를 훑어보거나 밤의 홍등가를
찾는 것으로 자신의 욕구를 해결한다. 베르트뮬러가 묘사하는 시골 청년들의 성에 대한 이런 관심은 건전한 것이라기 보다는 억눌린
현실에서의 유일한 출구처럼 보인다. 그들은 모두 지겹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자신들의 고향 마을을 떠나고 싶어하지만, 그저
그곳에 매여있을 뿐이다. 부자 친척이 있는 안토니오는 아주 운이 좋게 로마로 떠났다. 영화 속에서 '로마'는 꿈의 도시로
묘사되는데, 그곳은 기회의 땅이며 모든 소원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 로마와 대비되는 그들의 고향 시골 촌구석에서 토지 개혁 문제는 사람들의 주요한 관심사가 된다. 베르트뮬러는 서로 다른 계급의
주민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반목하고 갈등하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이탈리아의 현대 정치사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주민들의
대화는 매우 낯설고 이해하기 어렵다. 1940년대부터 추진된 이탈리아의 농지 개혁은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진 지주와 소작농들의 대립 때문에
끊임없이 난관에 부딪히며 좌초되었다. 두 번의 주요한 개혁이 1950년대 초와 후반부에 이루어졌는데, 영화는 1950년대 후반에
이루어진 개혁에 대한 논의를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대규모 경작지를 소유한 지주들에게 국가가 일괄적으로 땅을 매입해서
소작농들에게 불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개혁 법안은 땅 대신에 보상금을 받아야 하는 지주에게도, 자신이 받게 될 땅을 협동
조합과 일부분 공유해야만 보조금과 대출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소작농들에게도 반발을 샀다.
영화에서
'협동 조합'에 가입할 것이냐를 두고 주민들의 의견이 나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공증인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땅도 있는
안토니오의 아버지는 정부가 세금을 무겁게 물리고 농지 보조금을 너무 적게 준다며 불평한다. 전통적 대지주였던 백작 부인은 정부가
소작료를 강탈해 가고 있다며, 1940년대에 죄수들을 농사꾼으로 거저 써먹었던 과거를 그리워하며 회상한다. 베르트뮬러는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도 엄연히 계급적 층위와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배 계급의 착취 문제는 프란체스코가 한적한 시골 들판에서
지주에게 강간당하고 울면서 도망치는 소작농의 딸을 발견하고도 도와줄 방법이 없다며 한탄하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떠나고 싶다는 열망만 있을 뿐,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무기력하고 나태하다. 프란체스코는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약제사의 딸과 약혼하라는 부모의 뜻을 거역하지 못한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대학생 안토니오는 용돈 타내느라 아버지의 모욕적 언사를
참아내야 한다. 그런데 그는 그 모든 지겨운 것에서 떠나 로마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감독 자신의 내레이션으로 들리는 '우리를
둘러싼 역사와 주변 환경이 우리 자신을 만든다'는 말은 하나의 단서가 된다. 내레이션은 안토니오가 곧 다시 로마로 떠날 거라는
말은 이루어지기 어려우며, 마을을 떠나는 버스를 타지 않고 계속 놓치게 될 거라고 말한다. 안토니오는 자신이 살아온 시골 마을의
역사, 정서, 환경의 모든 것에 지배당하는 인간일 뿐이다. 이것은 베르트뮬러가 상정하는 결정론적 세계관에서 나오는 성찰이다.
영화에서 그것을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은 마을 노파의 자살 장면이다. 며느리에게 모욕과 무시를 당한 시어머니는 뜨개질을 하다
말고, 베란다 난간에 매달린다. 건너편의 이웃 여자는 충격과 공포로 소리를 지르지만, 노파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리 대단하지 않은 것 같은 일상의 갈등에서 죽음을 택한 노파의 결심은 꽤 놀랍게 보인다. 그러나 명예를 중시하는 남부
시골의 전통적 정서에서 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베르트뮬러는 산업화되고 선진화된 북부와 농업 기반의 낙후된 남부와의 근원적
차이를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영화는 실제로 이탈리아 바실리카타(Basilicata)주의 여러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지역 주민들의
협조 속에 촬영이 이루어졌는데, 나중에 영화를 본 주민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전근대적인 후진 곳으로 묘사했다며 감독을 맹비난했다.
영화의 제목 '바실리스크'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명백하지 않다. 고대와 중세로부터 유럽의 신화와 전설에 등장하는 뱀 머리
모양의 괴수인 'Basilisk'에 베르트뮬러가 관심을 가졌던 것 같지는 않다. 지명에서 유래되었다는 추측도 해볼 수 있으나,
그것도 정확하지 않다. 바실리카타 지명의 어원은 로마시대 황제였던 바실레우스(Basileus)의 그리스식 표기인
'basilikos'에서 유래하는데, 그것은 전설 속 괴수의 명칭과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다. 아마도 별다른 뜻이 없는, 단순히
'바실리카타 주민'을 뜻하는 표기일 수 있다. 영어식으로 번역된 'The Lizards'가 가장 적절한 대안인지도 모른다. 영화의
세 청년들의 모습은 마치 따뜻한 햇살 아래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며 어슬렁거리는 도마뱀들처럼 보인다. 그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을 만든 이는 엔리오 모리코네이다. 그의 초창기 영화 음악을 대표하는 스파게티 웨스턴의 단선율 음악이 이 영화에서도 흐른다.
베트르뮬러의 '바실리스크'는 1960년대 이탈리아 사회에 대한 감독의 성찰과 함께 이후 이어질 영화적 작업에 대한 선언이 들어
있다.
*사진 출처: verocinem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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