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Rachel and the Stranger(1948), 노만 포스터 감독
2. Where Danger Lives(1950), 존 패로 감독
3. His Kind of Woman(1951), 존 패로 감독
4. Angel Face(1953), 오토 프레밍거 감독
5. The Lusty Men(1953), 니콜라스 레이 감독
1. 하워드 휴즈가 로버트 미첨에게 안긴 곤혹스러움, 'His Kind of Woman(1951)'과 'Where Danger Lives(1950)'
1948년, 미국 연방 대법원은 이른바 '파라마운트 판결'이라고 하는 역사적 재판의 결정을 내린다. 헐리우드 제작사들의 제작,
배급과 관련해 수직계열화를 독과점으로 규정하고 이를 분리하도록 명령한 것이다. 자사 제작 영화를 자체 소유 극장을 통해 배급하면서
얻은 막대한 이득은 더이상 기대할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기존 영화사들은 매각되거나 지분이 쪼개지는 경우도 생겼다. RKO는
유명한 재벌 하워드 휴즈의 손에 넘어갔다. 다양한 필름 느와르를 비롯해 B Movie의 보고와도 같았던 이 영화사가 휴즈와 같은
기인에게 넘어간 것은 결코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정서적인 문제가 있었던 휴즈는 1946년의 비행기 사고 후유증으로 더욱 괴팍스러워졌다. RKO를 소유하게 되면서, 제작되는
영화들에 대한 그의 간섭과 집착은 거의 병적인 수준이었다. 배우 선정에서부터 완성된 영화에 대한 수정 요구까지 모든 면에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 들었다. 'His Kind of Woman(1951)'같은 영화는 그 폐해를 그대로 보여준다. 존 패로
감독(배우 미아 패로는 그의 딸이다)이 찍은 이 영화에는 로버트 미첨과 제인 러셀(휴즈의 연인으로 유명한), 빈센트 프라이스가
나온다. 그런데 휴즈는 빈센트 프라이스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를 부각시키기 위해 영화 전체를 뜯어고쳐 다시
찍을 것을 감독에게 요구했다. 패로가 완강히 거부하자 대타로 불려나온 사람은 리처드 플라이셔였다. 플라이셔 감독은 고용주의 뜻에
따라 억지로, 마지못해 영화를 재촬영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흥행 대참패로 이어졌다.
추측컨대 패로 감독이 찍은 원본이 훨씬 더 영화의 완성도가 높았을 것이다. 나중에 B급 공포 영화의 아이콘이 된 빈센트
프라이스는 정말로 B급의 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2시간인데, 후반부 40분 정도가 빈센트 프라이스를 위해서
할당되었다. 주연 배우인 로버트 미첨이 이 영화에서 당한 수난은 참으로 보기 민망할 지경이다. 전문 도박사 댄은 5만 달러의 돈을
받고 멕시코 휴양지에서의 일감을 떠맡는다. 댄은 휴양지 호텔에서 수수께끼같은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닌다. 무려 40분이 지나는 동안 주인공 댄을 비롯해 관객도 도무지 이야기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알 수가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추방된 마피아 두목은 체격이 비슷한 댄을 이용해(성형 수술을 시켜서) 미국 밀입국 시도를 하려고 한다. 댄은
마피아에게 잡혀서 강제로 페이스 오프 당할 위기에 처하는데, 그걸 빈센트 프라이스가 눈부신 활약으로 구해낸다.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연기로 영웅 흉내를 내는 빈센트 프라이스의 모습에 휴즈는 정말로 만족했을까? 추가로 투입된 제작비는 이 영화가 낸
엄청난 적자와 맞먹는 금액이었다. 댄을 연기한 로버트 미첨은 개연성 없는 이 영화에서 얻어맞고 나뒹굴며 고군분투한다. 아마도
나중에 자신의 계좌에 들어온 출연료가 유일한 위로가 되었을 듯하다.
미첨은 이미 그와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1950년에 찍은 'Where Danger Lives'가 그러했다. 주로 주먹
세계와 가까운, 하층민의 역할을 맡았던 미첨은 이 영화에서 '의사'로 나온다(솔직히 말하자면 안어울린다). 제프는 자살 시도로
입원한 환자 마고를 돌보다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는 마고가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한 유부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제프가
마고의 남편과 다투는 과정에서 마고의 남편이 죽는다. 마고는 머리를 다쳐 판단력이 흐려진 제프를 부추겨 멕시코로 도피한다. 과연
이들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휴즈의 파티에서 눈에 들어 그의 연인이 된 페이스 도머그(Faith Domergue)가 미첨의 상대역에 낙점되었다. 별다른
재능도 없는 이 여배우가 생기있게 보이는 순간은 비명을 지를 때이다. 정말로 소름끼치게 비명을 지르는데, 놀랍게도 그 재능을 바탕으로
여배우는 자신의 후기 경력을 채우게 되었다. 도머그는 나중에 B급 공포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각광을 받았다. 연기를 못하는 상대
여배우에게 맞춰주려고 최선을 다하는 미첨의 모습은 애잔해 보일 정도이다. 어쨌든 그럼에도 미첨은 잘못된 사랑으로 인생의 나락에
떨어지는 비운의 남자를 실감나게 연기해낸다.
2. 필름 느와르에서 찾은 광채, Angel Face(1953)
RKO 계약 배우로서 로버트 미첨이 각광받았던 장르는 필름 느와르였다. 자크 투르니에 감독의 '과거로부터(Out of the
Past, 1947)'는 매우 잘 알려진 RKO 시절 작품이다. 진 시몬스와 1953년에 찍은 'Angel Face' 또한
수작으로 꼽힌다. 나에게 진 시몬스는 아름답지만 그다지 인상적인 배우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진 시몬스는 자신의 배우적
재능을 입증해 보인다. 오토 프레밍거 감독의 연출 역량이 돋보이는 이 영화에서 로버트 미첨은 진 시몬스와 좋은 호흡을 보여준다.
구급 요원 프랭크(로버트 미첨 분)는 부유한 사업가의 저택에서 일어난 가스 중독 사고 현장에 출동한다. 사업가의 딸 다이앤(진
시몬스 분)은 계모의 중독 사고에 매우 흥분된 반응을 보인다. 그것을 진정시키기 위해 프랭크는 다이앤의 뺨을 때리는데, 뺨을 맞은
다이앤은 프랭크를 똑같이 때린다. 서로 뺨 한 대를 주고 받으며 시작된 사랑의 감정(!)은 예기치 않은 행로로 흘러간다.
다이앤은 프랭크에게 보수가 적은 구급차 요원 일 대신에 집안의 운전기사 일을 제안한다. 다이앤의 저택에서 일하면서 프랭크는 점차 이
천사같은 얼굴의 아가씨에게 어두운 면모를 발견한다. 다이앤의 계모에 대한 적개심은 급기야 사고사로 위장한 살인으로 이어진다.
사건의 공모자로 의심받는 프랭크, 그는 이 난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오토 프레밍거 감독은 청순한 매력의 얼굴을 가진 진 시몬스에게서 사이코패스적인 냉혹함을 끌어낸다. 사랑과 범죄는 기이하게 얽히며
비극을 향해 치닫는다. 아찔한 수직 절벽에서 찍은 자동차 사고 장면은 관객을 극한의 긴장과 불안 속에 몰아넣는다. 로버트 미첨은
이 영화에서 결코 유약하거나 여성 캐릭터에게 무기력하게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프랭크는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의지에 따라 그것을 바꾸려고 시도한다. 굴복하지 않는 남자, 미첨이 가진 강인한 면모는 부드럽게 절제되어 있다. 이것은
'Where Danger Lives'에서 그가 연기한 의사 제프의 모습에서도 발견된다. 뇌진탕의 후유증으로 사고 판단이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남자는 자신을 조종하려는 여자의 의지에 압도되지 않는다.
2부에서 계속...
*사진 출처: tcm.com 'His Kind of Woman(1951)'의 로버트 미첨과 제인 러셀
**사진 출처: tcm.com 'Where Danger Lives(1950)'의 로버트 미첨과 페이스 도머그
***사진 출처: criterionchann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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