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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3부작 다큐 '인종주의', Racism: A History(2007)

 

1부  돈의 색깔(The Colour of Money)
2부  치명적 영향(Fatal Impact)
3부  야만의 유산(A Savage Legacy)

러닝타임 2시간 56분


1. 노예제, 인종주의의 시작

  2007년, BBC는 노예제를 다룬 3부작 다큐를 내놓았다. 노예 무역 금지법(Slave Trade Act). 200년 전에 영국 의회에서 통과된 이 법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영국은 1807년에 노예 무역을 폐지했다. 미국의 남북 전쟁(The Civil War)을 촉발한 노예제의 기원에는 제국주의와 함께 시작된 인종주의(racism)가 자리하고 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도구화하고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것. 과연 노예제(Slavery)는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BBC의 3부작 다큐는 서구 식민주의의 추악한 맨얼굴과 그 어두운 유산을 냉철하고도 처절하게 응시한다.

  1부 '돈의 색깔'에서는 노예제의 근원적 동력이 경제적 논리였음을 밝힌다. 영국은 노예 무역의 선두주자였다. 1640년대부터 영국은 카리브해 식민지 농장에서 일할 노동력을 필요로 했다. 일꾼들을 조달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식민지 시에라리온(Sierra Leone)에서 노예 사냥꾼들은 닥치는 대로 원주민을 잡아들였다. 잡힌 흑인들은 목에 낙인이 찍혔고, 노예선에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하게 짐짝처럼 실려서 영국의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보내졌다. 그것은 엄청난 이윤을 남기는 장사였다. 노예 무역으로 산출된 이득은 영국의 금융업을 살찌웠다.

  물론 영국이 본격적인 노예 무역에 나서기 이전에 남미의 스페인 식민지에서 원주민 학대와 착취가 선행되었다. 원주민 문제를 두고 1550년에 열린 바야돌리드 회의, 가톨릭 주교인 Bartolomé de Las Casas는 원주민의 인권을 옹호한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노예제를 두고 이후 서양에서 벌어질 첨예한 논쟁의 시작이기도 했다. 서양은 어떻게 노예제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했을까? 거기에 기독교가 큰 역할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구약성서 창세기 9장 25절에는 노아의 저주를 받은 함의 아들이 형제들의 '노예'가 될 것이라고 적혀 있다. 그것은 노예제의 영속성을 옹호하는 증거로 여겨졌다.

  계몽주의자들은 보다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노예제를 합리화하고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했다. 흑인들은 짐승에 가까운, 열등한(inferior) 존재이므로 그들에 대한 차별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19세기에 이르면 이러한 인종주의를 뒷받침하는 주요한 학문이 등장한다. 다윈의 사촌이었던 Francis Galton의 골상학(Phrenology)은 허버트 스펜서와 같은 사회적 진화론자(Social Darwinism)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그것은 우생학(eugenics)의 시대를 예견하는 불길한 징조였다. 이제 다큐의 2부 '치명적 영향'에서는 인종적 차이를 우열로 분류하는 우생학이 제국주의와 결합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여준다.


2. 인종주의의 전지구적 확장 

  영국은 1833년에 식민지에서의 노예제를 폐지한다. 식민지인들에게 그것은 해방이 아니라 고된 기독교 농부로의 전환에 지나지 않았다. 제국주의자들은 식민지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개종의 비전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곧 실패에 이른다. 태즈매니아 섬의 경우, 격렬히 저항했던 원주민들은 정착민들의 잔혹한 폭력과 질병에 노출되어 결국 절멸에 이르렀다. 질병으로 죽어가는 원주민들의 모습은 사회적 진화론자들에게 인종적 열등함에 대한 증거로 인식되었다. 다른 대륙에서도 대규모의 원주민 학살이 있었다. 나미비아의 사막에 위치한 독일의 집단 수용소 'Shark Island'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그 지역의 Herero 원주민들은 독일 정착민들과 극심한 마찰을 빚었다. 결국 독일은 원주민들을 체포해 집단 수용소로 이주시켰다. 1905년에서 1907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수감된 원주민들은 노동력 착취, 기아, 강간을 비롯한 잔인한 폭력 행위에 노출되었다. 나치의 우생학자로 널리 알려진 Eugen Fischer는 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원주민을 대상으로 한 생체 실험을 수행했다. 이것은 이후 일어날 나치의 6백만 유대인 학살을 예고하는 핏빛 서곡이었다. 이제 제국주의의 유산인 인종주의는 전지구적으로 확대된다. 3부 '야만의 유산'은 그 무시무시한 파급의 실체를 보여준다.

  1885년,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는 콩고를 개인 식민지로 삼고 무자비한 수탈을 감행해 나간다. 그는 탐욕스러운 제국주의자이며 살인마였다. 천연 고무의 채취를 위해 동원된 원주민들은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손발이 무참하게 잘렸다. 고무를 비롯해 상아와 카카오도 수탈의 대상이었다. 벨기에 초콜릿의 명성에는 그런 피비린내 나는 역사가 들어있다. 콩고에서 나온 수익은 왕 개인의 사치와 화려한 건축물을 짓는 데에 쓰였다. 그 시기에 죽어나간 콩고인들의 숫자는 적게는 100만 명, 많게는 15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에서는 링컨의 노예 해방으로 흑인들이 자유를 찾았지만, 백인과 동등한 권리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남북 전쟁 이후 남부는 독자적인 주 입법을 통해 흑인에 대한 제도적 차별을 주도해 나갔다. KKK단의 발흥과 함께 1882년에서 1927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린치로 죽은 흑인은 3500명에 이른다. 노예제를 연구하는 미국의 교수는 당시 남부에서 판매된 엽서들을 보여주며 린치의 의미를 설명한다. 엽서에 인쇄된 사진들에는 린치당한 흑인들이 찍혀있다. 25센트 정도 하는 그런 값싼 엽서들은 남부인들의 일상에서 린치가 희화화된 오락이었음을 입증한다.


3. 새로운 시대의 인종주의

  1950년대 흑인 민권 운동이 힘겹게 인종주의의 철폐를 위해 싸우는 동안,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국가가 인종차별을 제도화하고 있었다.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며 1976년에 흑인들은 소웨토 봉기를 일으켰다. 한편 영국은 식민지에서 이주해온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사회문제로 부각한다. 1981년의 인종 폭동, 1993년에는 스티븐 로렌스라는 흑인 청년이 5명의 백인들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경찰은 은폐했고, 2012년이 되어서야 두 명의 범인들을 재판에 세울 수 있었다. 그 사건은 제국주의가 남긴 길고 어두운 인종주의의 폐해를 드러낸다.

  다큐는 지리상의 발견과 함께 시작된 제국주의가 인종주의라는 괴물을 탄생시켰음을 주지시킨다. 무려 50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그 추악한 유산은 지구 곳곳으로 퍼져나가며 번성했다. 과연 인류는 인종주의가 남긴 잔재와 악습을 끊어낼 수 있을까? 미국의 대안주의 언론 'vox.com'이 최근 실은 기사는 새로운 형태의 인종주의를 언급한다.

  노스캐롤라이나주에는 미국 최대 규모의 돼지고기 육가공업체들이 밀집해 있다. 공장이 위치한 장소는 주에서 매우 낙후된, 하층민 주거지역이다. 그곳에서 내뿜는 분진과 오폐물은 오랫동안 심각한 환경오염을 야기해왔다. 그리고 이는 인근 주민들의 건강에 심각한 위해 요소로 작용한다. 문제는 주민들 대부분은 그곳에서 조상대대로 살아온 흑인들이며, 그들에게는 업체에 주거환경 개선을 요구할 그 어떤 법적인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대기업들은 강력한 의회 로비를 통해 법적 규제 수단을 약화시켰다

  기사는 이를 '환경 인종주의(environmental racism)'로 규정한다. 그곳에서 가공된 베이컨 제품들은 아시아 여러 국가(한국도 포함)로 수출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소비자가 미국산 베이컨을 구매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종주의의 질기고도 오랜 유산을 마주하는 셈이다. 이렇게 미세화되고 일상화된 인종주의가 우리 곁에 자리잡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그 시작점은 인종주의의 기원과 역사를 기억하고 잊지않는 일에서부터일 것이다.      

  


*사진 출처: shadowandact.com



**'환경 인종주의'를 다룬 vox.com의 2022년 4월 1일자 기사
https://www.vox.com/future-perfect/23003487/north-carolina-hog-pork-bacon-farms-environmental-racism-black-residents-pollution-meat-industry


***그림 출처: en.wikipedia.org  보스턴 미술관 소장
영국 화가 William Turner(1775-1851)의 '노예선(The Slave Ship, 1840)': 태풍에 전복된 처참한 노예선 사고를 그림


 
****이 3부작 다큐는 유튜브, documentarymania.com에서 검색 가능하다. 영어 자막은 캡션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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