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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023의 게시물 표시

경외와 관조, Haulout(Выход, 2022)

    남자는 거친 파도가 휘몰아치는 해변을 홀로 걷는다. 해변에는 그 어떤 사람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사냥꾼의 옷차림을 한 이 남자는 대체 그곳에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남매인 Maxim Arbugaev와 Evgenia Arbugaeva는 다큐멘터리터리 제작자이다. 그들은 러시아 연방의 최북단 자치구 Chukotka에서 그곳에 거주하는 소수 민족을 촬영하던 중이었다. 그곳에서 남매는 해양 생물학자 Maxim Chakilev를 알게 되었다. 25분의 이 단편 다큐 'Haulout(Выход, 2022)'는 바로 그 해양 생물학자의 Chukotka 체류기를 담아내었다.   차킬레프가 관찰하는 동물은 바다코끼리(Walrus)이다. 그는 바다코끼리가 Chukotka 지역 해안가로 몰려드는 가을 동안 연구 활동을 수행한다. 말이 연구이지 실상은 고행에 가깝다. 바닷가의 허물어질듯한 오두막이 그의 거처이다. 차킬레프는 쌍안경으로 바다코끼리를 늘 관찰하며 그 내용을 녹음기로 녹음한다. 밤에는 낮 동안 수행한 연구 활동을 기록으로 정리한다. 식사는 통조림과 마른 빵 한 조각으로 해결한다. 아마도 담배가 그의 유일한 위안일 것이다. 그가 가지고 있던 담배도 다 떨어졌다. 그는 깡통에 모아둔 꽁초를 분해해서 겨우 피울 담배를 하나 만들어 낸다.   북극과 가까운 혹한의 Chukotka를 찾는 이들은 학자들과 동물들이다. 해변가는 바다코끼리로 꽉꽉 들어찬다. 그의 오두막은 말 그대로 바다코끼리에 의해 포위당했다. 그는 오두막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 무려 1미터 길이에 달하는 엄니를 지닌 바다코끼리는 무시무시해 보이기까지 한다. 바다코끼리들은 차킬레프의 오두막의 문을 부수고 안까지 들어온다. 그는 그 동물들을 기다란 빗자루로 부드럽게 밀어낸다. 바다코끼리는 이 남자를 무서워하지도, 위협하지도 않는다. 나갈 수 없게 된 차킬레프는 오두막 위의 지붕으로 올라가서 바다코끼리를 관찰한다. ...

사설 구급차 뒷편에서 바라본 도시의 심연, Midnight Family(2019)

  "바다는 내 인생의 하버드(Harvard)였다."   해양 소설의 개척자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은 그런 말을 했다. 어려서부터 뱃사람의 길에 들어선 멜빌에게 바다는 사람과 삶을 배울 수 있는 학교였다. 아마도 Ochoa 가족의 막내 Joshue에게 구급차도 멜빌의 '바다' 같은 곳인지도 모른다. 멕시코 시티(Mexico City)에서 사설 구급차를 운영하는 오초아 가족. 아버지 Fernando, 17살 큰아들 Juan, 거기에 9살 막내 Joshue는 구급차에서 밤을 보낸다. 죠슈에는 학교 보다 구급차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구급차의 뒷편에는 조슈에의 인형과 공이 보인다. 죠슈에는 마치 구급대의 일원인 것처럼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하지만 그 좁은 공간에서 앞으로 벌어질 일은 어린 아이의 평범한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   인구가 9백만에 이르는 멕시코 시티에 정부가 운용하는 구급차는 45대 뿐이다. 사설 구급차는 그 구멍난 의료 서비스의 공백을 메꾼다. Luke Lorentzen의 다큐 'Midnight Family(2019)'는 오초아 가족의 구급차를 따라 멕시코 시티의 밤 속으로 들어간다. 형 후안은 핏자국이 선명한 환자 이송용 들것을 닦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구급차의 운전은 후안이 담당한다. 경찰의 무전에서 사고 지점에 대한 정보가 나오자마자 후안은 가속 페달을 미친듯이 밟는다. 그 무전을 들은 것은 오초아 가족만이 아니다. 도로에는 이미 다른 사설 구급차들이 몰려들고 있다. 거친 자동차 경주를 방불케 하는 추격전이 펼쳐진다. 제일 먼저 현장에 도착한 팀이 환자를 이송할 권리를 얻는다. 사설 구급차의 요원들은 환자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환자의 가족에게 이송료를 받는다.      다큐의 초반부, 구급차 안에서 오초아 가족이 나누는 대화는 느슨하면서도 끈끈한 그들 가족의 유대를 보여준다. 구급차는 오초아 가족에게는 생계의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