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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구급차 뒷편에서 바라본 도시의 심연, Midnight Family(2019)

  "바다는 내 인생의 하버드(Harvard)였다."

  해양 소설의 개척자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은 그런 말을 했다. 어려서부터 뱃사람의 길에 들어선 멜빌에게 바다는 사람과 삶을 배울 수 있는 학교였다. 아마도 Ochoa 가족의 막내 Joshue에게 구급차도 멜빌의 '바다' 같은 곳인지도 모른다. 멕시코 시티(Mexico City)에서 사설 구급차를 운영하는 오초아 가족. 아버지 Fernando, 17살 큰아들 Juan, 거기에 9살 막내 Joshue는 구급차에서 밤을 보낸다. 죠슈에는 학교 보다 구급차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구급차의 뒷편에는 조슈에의 인형과 공이 보인다. 죠슈에는 마치 구급대의 일원인 것처럼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하지만 그 좁은 공간에서 앞으로 벌어질 일은 어린 아이의 평범한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

  인구가 9백만에 이르는 멕시코 시티에 정부가 운용하는 구급차는 45대 뿐이다. 사설 구급차는 그 구멍난 의료 서비스의 공백을 메꾼다. Luke Lorentzen의 다큐 'Midnight Family(2019)'는 오초아 가족의 구급차를 따라 멕시코 시티의 밤 속으로 들어간다. 형 후안은 핏자국이 선명한 환자 이송용 들것을 닦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구급차의 운전은 후안이 담당한다. 경찰의 무전에서 사고 지점에 대한 정보가 나오자마자 후안은 가속 페달을 미친듯이 밟는다. 그 무전을 들은 것은 오초아 가족만이 아니다. 도로에는 이미 다른 사설 구급차들이 몰려들고 있다. 거친 자동차 경주를 방불케 하는 추격전이 펼쳐진다. 제일 먼저 현장에 도착한 팀이 환자를 이송할 권리를 얻는다. 사설 구급차의 요원들은 환자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환자의 가족에게 이송료를 받는다.   

  다큐의 초반부, 구급차 안에서 오초아 가족이 나누는 대화는 느슨하면서도 끈끈한 그들 가족의 유대를 보여준다. 구급차는 오초아 가족에게는 생계의 방편이고, 다친 환자들에게는 생명의 동아줄이다. 후안은 다리에 총상을 당한 남자를 열심히 치료하고 병원에 데려다 준다. 하지만 남자는 무일푼이라며 이송료를 내지 않는다. 남자 친구에서 얻어맞은 18살 여성은 피투성이가 되어 울부짖는다. 공포에 질린 여성을 진정시키는 것도 사설 구급대원의 몫이다. 오초아 가족의 구급차 안에서는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한 어린 아이도 치료한다.

  사설 구급대원은 얼핏 보기에 한 가족의 생계와 공익의 목적이 부합하는 나름 괜찮은 직업같다. 하지만 오초아 가족의 구급차가 도시의 밤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그 이면에 자리한 참담한 실상이 드러난다. 오초아 가족은 늘 돈에 쪼들린다. 편의점에서 부실한 끼니를 때우는 가족의 식사 장면은 애잔해 보이기까지 한다. 부패한 경찰은 틈만 나면 사설 구급차를 검문 검색하며 돈을 뜯어낸다.

  오초아의 구급차는 사건 현장에서 가까운 병원 보다 자신들이 계약을 맺은 사립 병원에 환자를 이송하려고 한다. 이것은 결국 예고된 비극을 목도하게 만든다. 그들은 건물에서 추락한 젊은 여자를 병원에 데려가지만 여성은 숨을 거둔다. 여자의 모친은 왜 그들이 딸을 가까운 국립 병원 대신에 먼 곳의 사립 병원으로 데려갔냐며 묻는다. 오초아 가족은 그 질문에 답할 수 없다. 오초아 가족은 그 여성의 모친에게 이송료를 달라고 말할 뿐이다.

  Luke Lorentzen가 보여주는 이 Cinéma vérité 형식의 다큐는 놀라운 역동성으로 가득차 있다. 도시의 밤거리는 부패와 폭력, 죽음과 궁핍함이 네온 불빛 속에 일렁인다. 경광등이 조명처럼 흐르는 긴박한 구급차 내부의 풍경 속에는 오초아 가족의 일상이 포개어져 있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별도의 사운드나 음악이 필요하지 않다. 도시의 밤을 채우는 다양한 소리, 구급차 라디오의 음악 소리, 사건 현장의 온갖 소음은 그 자체로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룬다. 촬영 방식, 사운드, 내러티브,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완벽에 가까운 조화를 보여준다.

  Luke Lorentzen은 오초아 가족의 '사설 구급차'를 타고 거대 도시 멕시코 시티의 심연을 탐색한다. 그리고 그의 다큐멘터리적인 모험은 성공했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은 그가 다큐 제작자로서 오초아 가족과 맺은 견고한 신뢰에 있다. 무려 3년 동안 Luke Lorentzen은 오초아 가족의 구급차 뒷편에서 시간을 보냈다(기사 출처: www.npr.org). 이 다큐에 드러난 불법과 합법의 미묘한 회색지대는 오초아 가족의 관대한 허락이 없이는 담아낼 수 없다. 'Midnight Family'는 관찰 대상에 대한 신뢰와 이해, 거기에 더해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탐구 의식도 보여준다. 구급차에서 밤을 보내는 오초아 가족을 찍기 위해 감독은 스스로 그 가족의 일원, 도시의 일부분이 되었다. 'Midnight Family'는 좋은 다큐멘터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모범 답안으로 손색이 없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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