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원에 수감중인 악바르는 이제 18살 생일을 맞았다. 친구 알리는 깜짝 생일 파티를 열어주지만, 악바르는 그런 알리에게 오히려
주먹을 날린다. 16살에 여자친구를 죽인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알리에게 18살은 바로 그 형이 집행되는 나이를 뜻하기
때문이었다. 그제서야 악바르의 상황을 알게된 알리. 사형을 앞둔 살인자라도 피해자 가족의 탄원이 있으면 목숨은 건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알리는 방법을 찾는다. 가깝게 지내는 교도관에게 부탁을 해서 잠깐의 휴가를 얻어 나온 알리는 악바르의 누나 피루제와
함께 그 집을 찾아간다. 지난 3년 동안 피루제가 온갖 노력을 해도 소용없었던 그 일을 알리는 해낼 수 있을까?
이란의 감독 아쉬가르 파라디의 2004년작 '아름다운 도시(Shahr-e Ziba, The Beautiful City)'는
관객들을 낯선 이란의 현실로 안내한다. 종교가 모든 일상을 지배하는 이 나라에는 외부자의 시선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들이 무척
많다. 그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준 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The Separation of Nader from Simin,
2011)'를 한번 보자. 늙은 환자를 돌보기 위해 고용된 가정부는 여자인 자신이 남자 환자의 몸을 씻기는 것이 율법에 어긋나지
않는지 이맘에게 전화를 걸어서 묻는다.
이
영화 '아름다운 도시'에서는 그 종교의 영향력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살인자가 무슬림 남성인 경우 피해자 가족이 용서를 하면
사형을 면할 수 있다. 단, 피해자 가족에게 그들이 요구하는 금전적 댓가(Blood Money)를 치루어야 한다. 말하자면
남자에게는 목숨을 건질 방도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 무슬림 여성이 살인자일 때에는 그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여성은 어떤 경우에도 죽음을 면하지 못한다. 그런 기준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널리 통용되는 Qisas, 코란을 바탕으로 성립된
관습적 처벌법에 명시되어 있다. 영화 속 악바르가 사형을 앞두고도 피해자 가족과 합의만 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알리는 친구가 죽인 여자친구의 아버지 집을 찾아간다. 죽은 딸에 대한 정의로운 처벌을 원하는 아버지 아블로카셈에게 사면은 어림도
없는 소리다. 오히려 아블로카셈은 빨리 사형이 집행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악바르의 가족에게 목숨값을 지불하면 사형은 더
빨리 집행될 수 있다. 이 또한 Qisas에 명시된 것으로,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에 사형을 받을 남자의 가족에게 돈을 지불해야
한다. 남자가 살인 피해자라면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이 사형이 집행된다. 이슬람 율법에서 여자의 목숨은 남자에 비해 덜 중요하다.
아블로카셈은 집까지 팔아서 그 돈을 마련해 얼른 악바르의 죽음을 보려고 애를 쓰는 판국이다. 그의 뜻이 완고하다는 것을 알지만,
알리와 피루제는 어떻게든 마음을 돌리려 애를 쓴다. 그런 그들에게 조력자가 생긴다. 아블로카셈의 아내는 다리가 불편한 딸을
데리고 그와 재혼했는데, 그 딸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남편에게 합의를 종용한다. 합의금으로 엄청난 돈을 요구받은 피루제는
세탁부 일로 겨우 먹고 사는 처지이다. 악바르의 사면은 아직 멀어 보인다.
그런데 집을 드나들던 알리를 좋게 본 아블로카셈의 아내는 돈 대신에 알리와 자신의 딸을 결혼시킬 궁리를 하게 된다. 알리는
친구의 목숨을 살리려면 원하지도 않은 결혼을 해야할 판이다. 알리는 피루제와 좋아하는 사이가 되었고,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피루제를 어떻게든 돌보고 싶어한다. 알리의 고민은 깊어간다. 아쉬가르 파라디는 아주 단순하게 시작한 알리의 여정을
촘촘하고 복잡하게 짜가면서 관객들을 이야기 속으로 확 밀어버린다. 정말 대단한 솜씨다. 자, 당신이 영화 속의 알리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친구를 위해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해서 평생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누구에게나 자신의 인생이 가장
소중하므로 그런 선택은 할 수 없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친구는 더이상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 무려 '목숨'이 걸린 문제다.
그것을 모른 척 하고서 살아간다면, 알리는 남은 생애 동안 자신의 그 선택을 기억해야만 한다.
자신의 여자 친구를 아무도 차지하지 못하게 하려고 살인을 저지른 악바르. 그런 악바르에게 딸을 잃은 아버지의 정의에 대한 절규,
살인자일지라도 소중한 동생의 목숨을 살리려는 피루제, 친구의 목숨값으로 자신의 인생을 내놓아야 하는 처지의 알리, 장애인 딸의
인생을 위해서 온당치 못한 요구를 태연하게 하는 아블로카셈의 아내. 그들이 갇혀있는 복잡한 윤리적인 딜레마는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들의 마음을 쉴 새 없이 헤집어 놓는다. 영화 속 인물들 모두는 자신들의 행동에 각자 정당한 이유를 갖고 있다. 그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현실은 선과 악, 흑과 백처럼 명확하게 분리될 수 있는 영역에 자리하지 않는다.
아쉬가르 파라디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데처럼 관객들을 불러모은다. 그 이야기 속에는 잘 알지 못하는 이란이라는
나라의 현실과 거기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모습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영화는 그가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선택한 수단이다.
'아름다운 도시'에서 그는 윤리적 딜레마에 처한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의 마지막, 알리는 피루제의 집 대문을
세차게 두들기지만 문은 열리지 않는다. 관객들은 알리가 어떤 선택을 했을지 결코 알 수 없다. 이 열린 결말은 놀라운 재능을 지닌
이야기꾼 감독의 그 이후로 이어질 영화들에 대한 예고편처럼 보인다.
*사진 출처: iranianfilmempire.word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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