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밀루의 어떤 여름'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끔 해외의 영화 블로거들 글을 보게 될 때가 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특이한 블로거가 있었는데, 고양이가 나오는 영화만을
리뷰하는 이였다. 애묘가임이 분명한 그는 리뷰 글에 올리는 사진도 오직 영화 속 고양이만을 캡쳐해서 올린다. '밀루의 어떤
여름'에도 고양이가 나온다. 주인공 밀루(미셸 피콜리 분)의 노모 뷰작 부인이 아끼던 검정 고양이는 의외로 영화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 고양이야말로 주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유일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여주인의 장례식을 앞두고 모인 가족들은 그다지
슬퍼보이지 않는다. 집안의 변호사가 도착해서 유언장을 낭독하기도 전에 노모가 남긴 재산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두고 신경전을
벌인다. 파리에서 일어난 1968년 5월의 시위는 남부의 한적한 시골 저택에도 영향을 미친다. 장례업자들의 파업으로 여주인의
시신은 기약없이 집안에 머무르게 된다. 격화되는 시위 소식과 그로 인한 두려움으로 이 부르주아 가족은 혼란에 빠지고, 마침내
숨겨진 갈등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루이 말 감독의 1990년작 '밀루의 어떤 여름(Milou en mai,
May Fools)'은 프랑스 68 혁명을 배경으로 장례식을 앞둔 부르주아 가족의 기이한 풍경을 그린다. 대저택과 넓은 땅을
소유한 밀루의 노모는 이 집안의 실질적인 여가장이다. 밀루는 그런 노모의 그늘에서 유유자적하며 지내다가, 갑작스런 어머니의
죽음으로 살던 집에서 나가야할 판이다. 동생 조르주, 교통 사고로 죽은 여동생의 딸 클레르와 함께 저택과 땅을 매각해 나누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언장을 뜯고 보니 나눌 사람이 하나 더 늘었다. 오랫동안 어머니의 하녀로 일했던 아델도 엄연한 상속자의
지위를 차지한다. 할머니의 보석을 몰래 꿍치는 밀루의 딸 카미유, 혁명을 옹호하며 열변을 펼치는 대학생 아들, 레즈비언으로 애인을
데려온 조카 클레르, 그 와중에 제수씨와 불장난을 벌이는 밀루, 여기에 시위대 때문에 도로가 막혀서 잠시 머물게 된 트럭기사는
아무렇지 않게 외설적이고 상스러운 말을 시도때도 없이 내뱉는다.
화기애애한 가족들처럼 보이는 이들의 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균열에 균열을 거듭한다. 여기에는 저 멀리 파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혁명적 사태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밀루의 동생
조르주는 라디오를 끼고 살면서 뉴스에 나오는 시위의 향방을 예의주시한다. 파리에서 도착한 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 부르주아
가족의 걱정과 근심을 더하기에 충분하다. 당시에 대통령 드골은 파리에서 도피해야할 정도로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체제가
뒤엎어질 수도 있는 혁명의 상황은 이 가족의 윤리, 도덕, 사고의 체계를 흔들고 마비시킨다. 카미유는 어린 시절 친구인 집안
변호사와 눈이 맞고, 밀루의 아들은 사촌 클레르의 동성 애인과 연인이 된다. 화가 난 클레르는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트럭
기사를 유혹한다. 그들에게 거실 한 켠에 조용히 자리한 채 자신의 장례식을 기다리고 있는 여주인의 존재 따위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 괴상망칙한 가족의 폭주는 시위대를 피해 한밤중에 도착한 이웃 부부의 방문으로
가속화된다. 카미유는 자신들과 같은 부르주아가 폭도들의 먹잇감이 될 거라면서 근처 산으로 피신하자고 주장한다. 마치 전쟁의 피난
행렬처럼 그들은 산을 오른다. 처음에는 유쾌한 피크닉 같았던 도주는 비가 오고 밤이 되면서 긴장과 공포로 물든다. 이 가족들은
서로를 비난하고 욕하면서 위선적인 상대방의 모습을 까발린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성의 해방을 논하면서 희희낙락거리던 그들은
그렇게 서로의 약점을 공격하며 밑바닥을 드러낸다.
루이 말은 자신이 보고 겪은 1968년 5월을 그렇게 이
영화에 투영시킨다. 여주인 뷰작 부인의 죽음은 드골로 상징되는 구 체제 프랑스의 죽음을 상징한다. 불어에서 국가 프랑스는 여성형
'la France'로 표기된다. 그가 보기에 68혁명은 정신나간 젊은이들과 기회에 편승한 좌파주의자들의 난동이었다. 루이 말은
시골 마을에 등장한 시위대의 모습을 희화적으로 묘사한다. 그는 그들이 내건 잡다하고 시시껄렁한 구호를 조롱하며, 목적도 방향성도
없는 그 혼란을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물론 시위대에 놀라서 어쩔 줄 모르는 기성 세대와 기득권 계층의 무능도 그에게는 경멸의
대상이다. 국가의 일시적 죽음, 그렇게 모든 것이 정지된 상태에서 그 누구도 진심으로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고 슬퍼하는 이들은
없었다. 죽은 뷰작 부인은 그렇게 집안 한 구석에 무관심 속에 누워 있다. 거실에 들어온 트럭 기사는 고인의 시신을 부주의하게
건드리다가 고양이에게 할큄을 당한다. 그랬다. 오직 고양이만이 자신의 주인을 지켰다.
영화의 마지막, 드골의 파리
귀환과 함께 이 정신나간 가족들도 다시금 이성을 되착고 장례식을 끝마친다. 모두가 떠난 집에 밀루는 홀로 남는다. 그는 매각을
위해 포장된 집기들로 어수선한 거실에서 어머니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을 바라본다. 연주를 마친 어머니는 아들과 함께 왈츠를 춘다.
루이 말은 5월 혁명 이전의 세계와 그렇게 작별한다. 광기와 난동의 5월은 그렇게 끝났다. 드골은 이후의 총선거에서 대승을
했고, 구 체제는 성공적으로 복원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었다. 뷰작 부인은 죽었고, 그 집은 곧 팔리기로 되어있다.
1968년 5월 이후의 프랑스는 결코 이전의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가치관, 정치적 신념이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밀루의 어떤 여름'은 그 새로운 프랑스가 시작되는 시점의 이야기를 기묘한 부르주아 가족극을 통해
들려준다.
*사진 출처: culture-vulture.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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