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미국의 베트남 철군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에 'Babylift'란 명칭의 작전이 수행된다. 그 작전을 통해
미국으로 온 베트남 고아들은 입양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하이디(Heidi Bub)도 그렇게 미국으로 온 베트남
아이였다. 미국 남부, 신실한 종교심을 가진 싱글 여성의 아이로 입양된 하이디에게 성장의 과정은 그다지 순탄치 않았다. 억압적이고
냉담한 양모는 하이디에게 베트남과의 연관성을 부정하도록 가르쳤고, 하이디는 부모의 사랑이란 것을 느끼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양모와의 갈등은 급기야 하이디가 대학생이 되면서 완전한 결별로 이어진다. 결혼을 하고 두 딸의 엄마가 된 하이디는 베트남의
친모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침, 하이디의 친모도 딸을 찾으려고 노력하던 중에 베트남계 미국 언론인 트란의 도움으로
모녀의 상봉이 이루어진다. 게일 돌진과 빈센테 프랑코의 2002년작 다큐멘터리 '다낭에서 온 딸(Daughter from
Danang)'은 불행하게 헤어진 모녀의 상봉 속에 가려진 베트남 전쟁의 깊은 상처를 조명한다.
첫 인터뷰 장면에서 관객들은 하이디의 외모가 남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베트남 인과 백인 혼혈인 하이디의 외모는 이 여성에게
드리운 미국 현대사의 그림자를 짐작케 한다. 유색 인종에 대한 뿌리깊은 차별이 있는 남부에서 성장한 하이디의 정체성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실제로 KKK단이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보며 자란 하이디에게 남부는 독선적인 양모와 함께 견뎌야할 삶의
토대였다. 양모와의 단절 이후, 하이디는 무조건적이고 따뜻한 애정에 대한 갈망을 상상 속의 친모에게 투사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루어진 다낭에서의 상봉, 하이디는 친모 마이와 의붓 아버지, 이부(異父) 형제들을 만난다. 이 만남을 통해 비로소 관객들은 이
가족의 복잡하고 지난한 역사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감독 게일 돌진과 빈센테 프랑코는 이 베트남 모녀의 상봉기를 흥미있는 플롯으로 재구성해서 보여준다. 우선 다큐는
'Babylift' 작전과 베트남전 관련 자료 화면으로 이야기를 연다. 뒤이어 하이디의 성장 과정에 대한 이야기, 만남을 기대하는
친모 마이의 인터뷰, 베트남으로의 여정, 상봉에 이르는 과정을 속도감있게 전개시킨다. 그 과정에서 관객들의 궁금증은 증폭된다.
하이디의 생모는 어떻게 하이디를 낳게 되었고, 미국으로 보내게 되었을까? 현재 같이 살고 있는 가족들은 어떤 이들이며, 과연
하이디는 그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다큐의 후반부는 그런 의문에 대한 답들이 실타래 풀듯이 제시된다. '다낭에서 온 딸'은 잘
구성된 다큐멘터리 스토리텔링의 예시로 쓰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상봉의 기쁨은 이내 서로 다른 문화와의 부딪힘에서 오는 '문화 충격(Culture shock)'으로 이어진다. 덥고 습한
베트남의 날씨는 하이디를 힘들게 하며, 온갖 낯선 식재료들이 팔리는 재래시장의 풍경은 기이하게만 느껴진다. 친모의 과도한 스킨십도
냉정한 양모 밑에서 자란 하이디에게는 불편하게만 느껴진다. 하이디는 친모가 얼굴을 부비며 입을 맞추자, 곧바로 얼굴에 묻은 침을
닦아내기도 한다. 의붓 아버지의 존재도 하이디에게 무척 낯설다. 그는 자신의 아이들을 내팽개치고 11년 동안 베트콩으로 전쟁에
참전한 사람이다. 하이디의 생모는 먹고 살기 위해 미군 부대에서 일하다가 어느 미군을 알게 되고, 하이디가 태어났다. 미군의 아이를
낳았다는 손가락질, 자신의 아이들이 겪는 차별과 설움, 하이디의 미래에 대한 걱정, 그 모든 것이 맞물려 하이디의 미국행이
결정되었다. 어떻게 아이를 버릴 수 있는지 친모를 원망하던 하이디의 생각은 베트남에 와서 곧 바뀐다. 이부 자매의 가난한
살림살이와 개발도상국의 열악한 현실을 보며 자신이 미국에서 누린 모든 것들을 그리워하며 고맙게 생각하게 된다.
하이디는 원래 머무르기로 한 체류 기간을 단축한다. 6살까지 살았던 베트남에서의 추억은 퇴색되었고 실망으로 채워졌다. 거기에
떠나기 전 마지막 만남은 하이디에게 크나큰 충격과 분노를 안겨준다. 이부 큰오빠는 하이디에게 어머니를 미국으로 모셔서 같이 살아야
할 것과, 그것이 어려우면 매달 어머니 봉양을 위한 생활비를 보내라고 말한다. 이미 체류 기간 동안 가족을 위해 많은 지출을 한
하이디는 생면부지의 낯선 베트남인들이 자신을 현금출납기로 취급한다고 여긴다. 하이디는 단호하게 그 요청을 거절한다. 친모와 그
가족들은 자식으로서 가져야할 의무를 하이디가 거부한다고 생각하며 이해하지 못한다. 이 문화적, 정서적 충돌을 보여주는 장면에 대해
아시아권 관객들과 서양 관객들의 리뷰 반응이 갈리는 것이 꽤나 흥미롭다. 이 다큐에 대한 리뷰를 읽다보면, 베트남의 전통과
역사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하이디의 무지와 오해를 질타하는 평이 나온다. 서양의 관객들에게 베트남 가족의 요구는 뻔뻔하고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어떻게 22년 동안 헤어져 아무런 교류도 없는 자식에게 봉양의 의무를 설파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이다.
"글쎄요, 문은 닫았는데 아직 잠그지 않았다고나 할까요?"
다큐는 그로부터 2년 후, 하이디의 일상을 보여준다. 하이디는 베트남에서 날아온 편지들이 돈과 관련된 요구라며 냉소적으로
말한다. 거기에 그 어떤 답도 하지 않은 하이디는 베트남의 가족들에 대한 입장을 묻는 감독의 질문에 그렇게 답한다. 결국 베트남 계
남부 미국인 여성 하이디의 과거로의 여행은 그렇게 끝났다. '다낭에서 온 딸'은 그 여행이 보여주는 미국 현대사의 민낯과 서로
다른 문화의 부딪힘에서 오는 파열음을 우직하게 담아낸다. 그러나 그것을 담는 다큐의 관점은 일부는 기울어져 있고, 편파적이다.
카메라는 베트남의 모습을 낯설고, 기이하며, 이해할 수 없는 여러 혼합물로 포착한다. 이 다큐의 제목이 '다낭에서 온 딸'이라는
점은 인상적이다. 어떤 면에서 그 제목은 미국이 수용하고 자신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이식한 베트남 출신 입양아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미국식 조망이라는 한계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사진 출처: itv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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