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고베이, 죽음을 각오해라!"
사무라이는 한 무리의 자객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고향 사바이를 떠나 에도에 머물던 그는 3년 만에 사바이 땅을 밟은 참이었다.
그는 에도에서도 자신을 죽이려는 자객들을 물리쳤다. 고향에 돌아가는 것은 호랑이굴로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 도대체 그는 무슨
이유로 그 땅을 떠났으며 왜 다시 돌아올 결심을 한 걸까? 고샤 히데오 감독의 '어용금(御用金, 1969)'은 1830년대를
배경으로 양심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가길 택한 어느 사무라이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어부의 딸 오리하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돈을 벌러 도시로 떠났던 오리하는 폐허로 변한 마을을 발견한다. 그 어떤 인적도 없이
오직 까마귀 떼만이 을씨년스럽게 울어댄다. 가족도, 결혼을 하기로 한 정혼자도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3년의 시간이
지났다. 오리하는 자신을 누나라고 부르는 청년과 주사위 도박으로 도박꾼들의 돈을 뜯어내며 살아간다. 속임수가 들통나서 쫓기는
오리하를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의 마고베이가 구해준다. 그 두 사람은 3년 전에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인생이 바뀌었다.
사건의 시작은 막부의 무지막지한 조공 요구였다. 번의 가신 타테와키는 막부의 금 수송선을 탈취한다. 그 일에 동원된 어부들과
마을 주민들은 입막음을 위해 몰살당했다. 마고베이는 타테와키에게 부당한 일이라며 항의하지만, 타테와키는 번의 생존이 달린 일이라며
정당화한다. 낭인이 되어서 떠도는 것을 택한 마고베이. 그는 또 다시 번에서 벌일 어용금 탈취극을 막으려고 고향에 돌아온다.
더이상의 무고한 죽음을 그는 용납할 수 없다.
사무라이는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주군의 안녕을 위해 무슨
일이든 다 해낸다. 마고베이는 어용금을 탈취하는 것까지는 이해하지만, 아무 죄없는 어민들을 잔혹하게 죽인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타테와키는 마고베이와는 반대의 입장에 서 있다. 그에게 무사도란 주군과 번의 안위를 위해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양민을 학살하는 것도 마땅히 해야할 의무였다. 마고베이와 타테와키, 그 둘의 대결은 결코 피할 수 없다.
"지난 3년의 시간은 나에게 죽은 삶이었어."
마고베이는 또 다시 일어나게 될 학살극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돌아온다. 고샤 히데오는 마고베이를 통해 사무라이와 무사도의
본질에 대해 묻는다. '무사도'란 결국 주군의 개가 되어 죽기까지 충성을 바치게 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상이 아닌가? 도덕적 각성을
한 사무라이는 비로소 인간의 길로 들어선다. 그에게 주군이니, 번이니 하는 것은 더이상 아무 의미가 없다. 무고한 양민의 피를
보는 일은 정의롭지 못하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막부의 세력이 저물어갈 무렵이다. 가상의 사바이 번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 시대극에서 번에 무리한 조공을 강제하는 막부도, 그에 대항하기 위해 어용금을 탈취하는 번도 양민들에게는 가혹한
수탈자들일 뿐이다. 마고베이는 수탈자의 부하 노릇인 '사무라이'를 그만 둔다. 영화의 마지막, 그는 사무라이에게 목숨과도 같은
칼을 버리고 길을 떠난다. 무사가 아닌 인간으로서 그의 삶은 순탄했을까? 일본의 근대사는 그 질문에 비관적인 답을 제시한다.
1850년대부터 시작된 막부의 몰락과 왕정 복고, 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지는 역사에서 사무라이들은 칼을 버려야 했다. 빼앗겼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천황 체제로 재편된 새로운 나라에서 더이상 사무라이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에게 축적된 무(武)의
힘은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사무라이들은 자연스럽게 총을 든 군인이 되었다. 그리고 일본은 군국주의의 길로 나아갔고, 그
결말은 자명한 패망이었다.
고샤 히데오 감독은 정격의 무사 활극을 보여준다. 바닷가를 배경으로 눈 쌓인 숲 속에서
벌어지는 대결은 빼어난 영상미를 자랑한다. 영화 속에서 마고베이가 잠시 머무르는 여인숙이 눈길을 끄는데, 그 주변은 온통
진창길이다. 그 설정은 프랑코 네로 주연의 영화 '장고(Django, 1966)'에서 결투가 벌어지는 진흙밭 마을을 떠올리게
만든다. 장고가 자신을 옥죄는 과거의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해 복수를 결심했듯, 마고베이 또한 어두운 과거를 지우기 위해 칼을
빼든다. 개인적인 복수를 완성하는 장고와는 달리, 양심에 따른 도덕적 결단을 실행한 마고베이는 결국 칼을 버린다. 그러나 그가
살았던 시대는 사무라이의 정체성을 버리고 평범하고 주체적인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무라이들의 주군은
다이묘에서 천황, 그리고 국가가 되었다. 일본의 군국주의는 그렇게 오랜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어용금'은 그 기원이 되는 시점의
한 사무라이의 선택을 그린다. 그는 지배 계급에 굴종하는 대신, 내면의 도덕적 각성을 이룬 인간이 된다. 진정한 의미의
'시민'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일본이 그 시민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진 출처: 2017.kiff.kyoto.jp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