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What Price Hollywood?(1932)'와 'Millie(1931)'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레이디 가가 주연의 영화 '스타 탄생(A Star Is Born, 2018)'은 꽤 오랜 기원을 가지고 있다. 1976년에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주연을 맡은 영화가 있고, 1954년 영화에서는 조지 큐커 감독이 주디 갈란드와 함께 작업했다. 그 이전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윌리엄 A. 웰먼 감독의 1937년작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 영감을 준, 어떤 면에서 이야기의 원형인
작품은 조지 큐커 감독의 'What Price Hollywood?(1932)'이다. 이 영화는 'Hays Code'라고 불리는
미국의 검열 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이전의 '프리 코드 시절(Pre-Code Era, 1930-1934)에 만들어졌다.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시스템과 스타 산업의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는 이 독특하고 매력적인 작품은 이후에 만들어진 '스타
탄생'의 원석과도 같다.
배우 지망생 메리는 식당의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유명 감독 맥스를 알게 된다. 그는 스타 제조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할리우드의 유력 인사로 메리가 영화계로 들어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다. 재능있는 감독이지만 늘 술어 절어 사는 그는 메리의
빛나는 배우 경력을 함께 한다. 메리는 잘생긴 바람둥이 폴로 선수 로니와 결혼한다. 바쁘게 정신없이 돌아가는 아내의 배우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는 얼마 안가 이혼을 택한다. 한편 술 문제로 경력에 손상을 입은 맥스는 어려움에 처한다. 메리는 맥스를
따뜻하게 보듬지만, 맥스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으로 세상을 뜬다. 그 일로 메리는 스캔들 속에 은퇴를 택한다. 프랑스의 시골에서
은거하던 메리에게 남편 로니가 찾아오면서 영화는 끝난다.
조지 큐커 감독은 'What Price Hollywood?'로 시작한 할리우드 이야기의 완결판을 1954년의 영화로
마무리지었다. 이 영화는 '스타 탄생'과 다른 몇몇 지점을 보여준다. 어려운 처지의 배우 지망생이 등장하는 것은 기본 설정이지만,
스타가 된 이후에 결혼의 상대자는 '감독'이 아니라 인기있는 유명 '운동 선수'다. 분명히 메리는 자신을 스타의 길로 이끈 감독
맥스에게 고마움과 함께 마음의 빚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성적인 호감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은인에 대한
마음이 더 크다. 메리와는 달리 맥스의 감정은 모호하고 불분명하다. 그는 제작사의 사장과 함께 메리의 중요한 개인사인 결혼과
임신을 논의하고 그 결정에 함께 하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맥스의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객들이 알아차리는 일은 쉽지 않다. 다만 그가 술에 취해 한밤중에 메리의 집을 찾아가 부부가 자고 있는 침실에까지 들어가서
주정을 하는 장면은 하나의 단서가 된다. 그는 자신이 발탁해서 키운 배우 메리와 유부녀 메리와의 간극을 극복하지 못한다.
비록 메리와 맥스 사이의 연애 감정에 대한 그 어떤 암시도 존재하지 않지만, 메리의 태도도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결혼한 메리의 집 거실에는 맥스의 사진이 놓여있다. 스타 배우 메리가 있게 만든 장본인, 메리의 정신적 지주로서 맥스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므로 술로 인해 맥스의 경력이 추락한 것을 메리는 가슴아파한다. 술에 취해 유치장에 갇힌 맥스를 빼내오는
것도 메리이다. 맥스는 '스타 탄생'에서 술 문제를 일으키는 감독 남편의 자리로 치환된다. '프리 코드' 시대에는 남편이 아닌
남자를 인간적인 연민으로 보살피는 여주인공의 행동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검열 규정이 적용되면서 외간 남자의 존재는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영화를 위해서 삭제되어야만 했다.
반드시 옹호되어야할 결혼 제도의 가치, 결혼한 여성이 어머니와 아내로서 지켜야할 덕목이 1934년 이후의 검열 규정에서
적용된다. 1931년에 만들어진 프리 코드 영화인 존 프랜시스 딜론(John Francis Dillon) 감독의
'밀리(Millie)'는 결혼 제도에서 이탈한 여성의 굴곡진 인생사를 그려낸다. 부유한 사업가 잭과 결혼한 순박한 아가씨 밀리는 곧
남편이 바람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린 딸의 양육은 부잣집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밀리는 과감히 이혼을 택한다. 이 강단있는
여성은 자존심 때문에 위자료도 받지 않고, 혼자서 삶을 개척해 나간다. 호텔 상점의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밀리는 돈많은 중년 남자
지미와 젊고 매력적인 토미의 구애를 받는다. 하지만 그 둘 가운데 누구도 택하지 않고 밀리는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간다. 세월이
흘러 밀리는 열여섯 살이 된 자신의 딸에게 지미가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밀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미는 밀리의
딸에게 접근하고, 격분한 밀리는 지미를 향해 총을 쏜다.
이 영화의 여주인공 밀리는 이혼 후에 싱글로서 방종하고 타락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남자들과 어울리며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산다. 밀리의 그런 삶은 경제적인 자립에 의해 가능했다. 자신의 직업적 경력(밀리는 나중에 호텔 매니저로
승진한다)에서도 밀리는 인정받는다. 그러나 밀리의 다른 두 친구들은 이른바 'gold digger'로 돈 많은 남자들을 낚기 위해
파티걸로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밀리'에서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여성 캐릭터들의 존재는 죄악시되지 않는다. 물론 연인에 대한
좌절된 애정을 연인의 딸(그것도 미성년자)에게 투사하는 남자가 등장하는 막장 설정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일은 프리 코드
시대에도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남자의 불순한 시도는 죽음으로 댓가를 치룬다. 16년 동안 돌보지 않은 딸을 위해 손에 피를 묻힌
엄마 밀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밀리는 살인죄로 기소당하지만, 딸의 증언으로 배심원들의 무죄 평결을 받고 풀려난다. 자신의 삶을
위해 남편과 딸을 떠나 독립적으로 살았던 이 여자는 그 어떤 비난이나 처벌을 받지 않는다. 아마도 영화 '밀리'의 검열 시대
버전은 킹 비더 감독의 '스텔라 달라스(Stella Dallas, 1937)'가 될 것이다. 딸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삶의
방식을 포기하고 희생을 감수하는 하층 계급 엄마의 모성은 충분히 칭송받을만한 것으로 포장된다.
'Hays Code(정식 명칭 Motion Picture Production Code)'는 1930년에 도입이 결정되었으나,
그것이 실제적으로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1934년부터였다. 검열을 수행할 사무국인 PCA(Production Code
Administration)가 설립되기 이전의 4년 동안 할리우드는 마지막 표현의 자유를 누렸다. 이미 1915년에 미국의
대법원은 언론의 자유가 '영화'의 영역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강한 종교적 신념에서 나온 윤리적 가이드라인에 대한
요구는 초창기 영화 산업을 압박해 나가기 시작했다. 미국이 1919년부터 1933년까지 금주법이 시행된 나라였다는 점을 떠올려
보라. 대중을 상대로 흥행 수익을 내야하는 영화사와 제작자들은 전방위적으로 들어오는 대중 계몽을 위한 '바람직한 영화' 제작
요구에 부응할 수 밖에 없었다. 거의 비자발적으로 시행된 'Hays Code'는 그 타협의 산물이었다. 전직 우정사업본부장이었던
헤이스가 검열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실무적인 차원의 진짜 주역은 조셉 브린(Joseph Breen)이었다.
이후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미국 영화는 브린의 윤리적 세계가 구현되는 거대한 장이나 다름없었다.
'What Price Hollywood?'와 'Millie'는 프리 코드 시대 영화의 결혼 제도와 여성의 삶에 대한 느슨하고
허용적인 묘사를 보여준다. 폭력과 외설적인 면에서도 일정 부분 과감했던 그 시기의 유산은 단지 4년동안 제작된 영화들에
응축되었다. 미국 영화가 그 시절의 표현의 자유를 되찾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흘러야만 했다. 물론 프리 코드 시대에도 '인종'에
대한 관행적 묘사는 흑인 관객들에게 인내심을 요구했다. 두 영화에서 하녀들은 모두 흑인 배우가 연기한다. 머리에는 하얀 머릿수건을
쓰고, 검은색 드레스에 흰색 앞치마를 두른 흑인 하녀는 백인 여주인의 시중을 든다. 할리우드 영화가 인종 문제에 대한 개선된
사회적 인식을 반영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명백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프리 코드 시대의 영화들은 초창기 미국
영화가 가진 다양성을 탐구하는 좋은 소재가 되어준다. 대공황 시기의 피폐했던 경제 상황 속에서 그런 다채로운 영화들이 당시의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었을 것이다. 검열의 시대가 그 즐거움을 앗아간 것은 미국의 관객들에게도, 영화사적으로도 커다란 손실이었다.
오늘날의 관객들에게 프리 코드 영화들은 닫혀지기 직전의 자유의 문 앞에 선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외침같다는 인상을
준다.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영화 'What Price Hollywood?'의 로웰 셔먼과 콘스탄스 베넷
**사진 출처 : tcm.com 영화 'Millie'의 헬렌 트웰브트리스와 로버트 에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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