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 '스나이퍼(The Sniper, 1952)'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드워드 드미트릭(Edward Dmytryk) 감독은 영화를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배운 사람이었다. 영화사에 들어가
잔심부름부터 시작해서 감독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는 타고난 재능과 성실성으로 자신의 경력을 쌓아나갔다. 스튜디오가 요구하는 B급
영화들을 잘 만들어내어서 마침내 자신만의 영화를 찍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의 인생에 매카시즘이라는 시대의 광풍이 불어닥친다.
공산주의자로 찍힌 그는 동료에 대한 고발과 증언을 강요받았다. 영국으로 잠시 피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영화를 하려면
미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감옥에서 보낸 짧은 시간 이후, 드미트릭은 결국 동료들을 고발하고 다시 영화계에 돌아올 수 있었다.
'스나이퍼(The Sniper, 1952)는 그가 의회 증언 이후 처음으로 찍은 복귀작이다. '변절자'라는 오명이 드미트릭을
힘들게 했지만, 그는 이 영화로 자신의 역량을 입증해 보인다. 정신적 결함을 가진 연쇄살인범이 나오는 이 필름 느와르 영화에는
당시 드미트릭 감독이 처한 심리적 압박감도 느껴진다.
영화는 미국에서 한 해에 발생하는 성범죄 사건들의 통계를
언급하는 자막에서부터 시작한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여성들로, 그런 강력범죄를 해결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주지시킨다.
그리고 이어지는 첫 장면에서 총은 든 남자가 창가에서 누군가를 겨누고 있다. 이제 막 연인과 작별인사를 나누는 여자를 겨누던
남자는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며 총을 내려놓는다. 남자의 이름은 에디(아서 프란츠 분), 그는 왜 여자를 죽이려는 것일까? 남자는
들끓는 살인의 욕망을 견딜 수가 없다. 그것을 억누르기 위해 그는 자신의 손을 전기 스토브에 대고 스스로 화상을 입힌다. 그러나
유예된 살인은 얼마 안가 실행된다. 그의 총에 의해 연달아 나오는 희생자들로 도시는 패닉에 빠진다. 경찰들은 수사에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지만, 살인범을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 와중에 에디는 경찰에 편지를 남긴다.
"제발 날 멈추게 해주시오. 나를 찾아내야만 합니다. 난 이 일을 계속 하게 될 테니까요."
에디의 내면은 병들어 있으며 그의 현실감각은 손상되고 왜곡되었다. 그는 다정한 연인들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갖고 있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연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그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특히 젊은 여성에 대한 혐오와 적대적 감정은 에디가 이성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다. 세탁 회사에서 일하는 에디는 고객으로 알게 된 클럽의 피아니스트 진을 좋아하지만, 진은 에디를
세탁부로 대할 뿐이다. 좌절된 욕망은 살인에의 추동으로 이어진다. 그의 범죄에는 총이 수반된다. 영화는 정신이상자가 총기를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이 얼마나 가공할만한 위험성을 지니는지 잘 보여준다. 어떤 면에서 미국의 총기 소유 문제에 대해 비판한
선구적 영화이기도 하다. 유리 파편이 산재한 첫 번째 살인 장면, 유리창을 뚫고 피해자 여성의 머리에 총알이 박히는 두 번째 살인
장면이 관객에게 주는 정서적 충격은 꽤 크다. 아무 이유없이 여성에 대한 적개심만으로 무차별적인 살인을 저지르는 에디의 모습은
'젠더 증오 범죄(gender-based hate crime)'의 전형성을 나타낸다.
'스나이퍼'는 범인의 추적과
검거에 시간을 할애하는 여느 필름 느와르 영화와는 달리 '심리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정신의학자 켄트 박사는 형사 반장과의
대화에서 범인이 여성에 대한 분노를 갖게 된 것은 성장과정이나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생긴 문제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전기 스토브에
다친 에디의 손을 보고 하숙집 할머니는 남자들도 어릴 때 요리를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데, 에디는 어머니에게 아무 것도 배우지
않았다고 답한다. 에디의 대답은 어머니에 대한 해결되지 않은 분노의 감정이 여성에 대한 혐오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켄트 박사는 정신적 문제를 지닌 이들의 초기 병력 관리와 치료가 더 큰 범죄를 막을 수 있다며 시장과 시의 유력 인사들을
상대로 설득한다. 정신이상 범죄자에 대한 그의 정책적 제안은 이 영화가 범죄를 사회 병리적 문제로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밤의 어둠에 숨어 살인을 저지르던 에디는 이젠 백주 대낮에 여성에게 총을 겨눈다. 결국 자신의 방에서 경찰에 의해 잡히게 된
그의 얼굴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다. 이 냉혹한 연쇄살인범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은 관객에게 기이한 연민과 혼란의 감정을 안겨준다.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는 에디는 살인에 대한 욕망과 그것을 억제하고자 하는 이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이 남자는 아무와도
소통하지 않으며, 그는 타인과 관계를 맺는 능력을 상실했다. 어떤 면에서 드미트릭 감독은 고립무원의 처지에 있는 에디의 모습에서
당시 자신이 겪던 시련을 투사했는지도 모른다. 감독으로서 일거리가 더이상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자신에게
적대적인 주변 사람들에 대한 원망, 당시 그가 처한 상황은 영화 속 에디라는 캐릭터의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킨다. 영화의
마지막, 에디가 보여준 그 눈물은 후회라기 보다는 안도의 눈물일 것이다. 감옥에 갇히게 되면 더이상 살인의 욕망에 끌려다니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도시의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영화는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마지막 살인을 저지른
에디는 한낮의 그 번화한 대도시의 숨겨진 뒷골목과 인적 하나 없는 음산한 거리로 도주한다. 관객들은 이 영화에서 내적 감옥에
유폐된 '외로운 늑대(lone wolf)'로서의 연쇄살인범의 초상을 발견한다.
*사진 출처: torontofilmsociety.com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