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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웃을 수 없는 슬픈 사랑의 이야기, 뉴욕의 연인들(They All Laughed, 1981)

 

  영화의 제목이 좀 특이하다. 우리말 제목은 '뉴욕의 연인들'이라고 꽤 멋지게 지었다. 원제는 'They All Laughed', 영화 속 인물들이 모두 다 사랑에 빠지고 각자의 사랑을 쟁취한다. 그런데 이 영화 속 실제 배우들의 이야기와 영화의 운명은 결코 행복한 웃음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피터 보그다노비치(Peter Bogdanovich) 감독의 1981년작 '뉴욕의 연인들(They All Laughed)'은 영화가 만들어진 지 1년이 지나서야 겨우 개봉되었다. 영화의 완성도는 기대에 못미치는 것이었고, 난무하는 혹평 속에서 흥행은 실패했다. 'The Last Picture Show(1971)', 'Paper Moon(1973)'으로 1970년대 미국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떠올랐던 그의 경력은 곤두박질친다. 그는 이 영화 이후 4년 후인 1985년에야 복귀할 수 있었지만, 다시는 이전의 명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져갔다.

  오딧세이 탐정 사무소의 탐정 존(벤 가자라 분)과 찰스(존 리터 분)는 각자 고객의 의뢰에 따라 미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 존은 뉴욕을 방문한 부유한 사업가의 아내 안젤라(오드리 햅번 분)를, 찰스는 남편의 의심을 받고 있는 유부녀 돌로레스(도로시 스트래튼)의 뒤를 밟는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은 자신들이 미행하는 여자들과 사랑에 빠진다. 컨트리 가수인 존의 애인 크리스티는 존의 변심에 찰스에게 접근하지만, 찰스가 돌로레스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챈다. 크리스티는 결국 돌로레스의 애인 후안과 맺어진다. 안젤라와 존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만, 남편과 함께 안젤라는 유럽으로 돌아간다. 찰스는 돌로레스와 연인이 되어서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게 전부다. 2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1시간은 존과 찰스의 미행 장면으로 채워져 있다. 분명히 로맨틱 코미디라면 즐겁고 행복한 사랑의 기운이 느껴져야 하는데, 이 영화는 지루함과 비현실성으로 관객을 지치게 만든다. 그나마 이 영화에서 건질만한 것은 1980년의 뉴욕의 사람들과 풍경이다.

  찰스가 동료 아서와 함께 롤러장에서 돌로레스를 미행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뉴욕의 롤러장과 그곳을 채운 사람들의 모습은 신기하기 짝이 없다. 그 시대의 헤어스타일과 패션, 음악을 비롯해 영화에 찍힌 뉴욕 시민들의 모습은 마치 타임 캡슐을 열어본 듯한 느낌을 준다. 컨트리 가수로 나오는 크리스티의 공연 장면과 클럽 사람들의 이모저모를 보는 것도 즐겁다. 이 영화의 지루하고 맥빠지는 이야기 전개를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그 뉴욕의 넘치는 생동감이다. 그걸 빼놓고 본다면, 이 영화는 보그다노비치의 무기력함과 바닥난 영화적 재능을 입증할 뿐이다. 찰스 역으로 나오는 존 리터의 코미디 연기는 하나도 웃기지 않다.

  50대에 접어든 오드리 햅번의 나이든 외모를 보는 것도 서글픈 일이다. 햅번에게 이 영화는 공식적으로 마지막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당시 햅번을 힘들게 했던 부분은 상대역인 벤 가자라와의 좌절된 연애였다. 1979년에 영화 'Bloodline'에 출연하면서 알게된 두 사람은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햅번은 남편의 외도로 실질적으로는 별거 상태에 있었고, 가자라도 이혼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가자라는 햅번과의 관계를 정리했다. 그런 감정의 여파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두 배우는 '뉴욕의 연인들'을 찍었다. 보그다노비치는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걸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 그가 친분이 있는 배우(벤 가자라)의 사적인 삶을 영화로 드러내는 방식은 직업 윤리에 비추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써먹는 것에도 별다른 주저함이 없었다.

  영화 속에서 보그다노비치의 명백한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찰스는 돌로레스와 사랑에 빠진다. 돌로레스 역을 연기한 배우는 도로시 스트래튼으로 이제 스무 살이 된, 플레이보이 모델 출신의 금발 미인이었다. 영화를 찍으면서 보그다노비치는 도로시 스트래튼과 연인 사이가 되었다. 문제는 스트래튼이 결혼한 유부녀였다는 것. 스트래튼의 남편 폴 스나이더는 말 그대로 양아치 포주 출신으로 아내의 미모로 한몫 잡으려고 하는 인물이었다. 영화 속에서 아내의 불륜을 의심해서 뒤를 밟게하는 돌로레스의 남편처럼 스나이더도 사립탐정을 고용했고, 그는 곧 아내가 감독과 새출발을 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내의 결별 통보를 용납할 수 없었던 포주 남편은 아내를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영화를 배급하려던 영화사들이 결정을 철회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보그다노비치는 스트래튼의 유작이 된 영화를 어떻게든 세상에 내놓고 싶었다. 결국 사재 5백만 달러를 털어넣은 무리한 배급 결정은 파산과 몰락으로 이어졌다(그는 자신의 이전 흥행작들로 번 돈을 다 쏟아부었다). 오프닝 크레딧에 도로시 스트래튼의 추모글이 가장 먼저 뜨는 데에는 그런 배경이 있었다.

  막 떠오르는 신인 여배우의 참혹한 죽음에 더해, 이 영화의 완성도는 비평적인 면에서도 너무나 떨어진다. 현실성 없는, 그저 그런 '뉴욕 사랑 찬가'쯤 될까? 어떻게 하다가 보그다노비치는 자신의 영화적 재능의 밑바닥을 보여주며,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의 파국에 빠지게 된 것일까? 그는 스트래튼의 여동생과 1988년 재혼해서 13년간 결혼 생활을 이어갔다. 그렇게 스트래튼의 죽음은 그의 영화 경력 뿐 아니라 인생에도 길고 무거운 그림자를 드리웠던 셈이다. 영화 '뉴욕의 연인들'을 보는 것은 그런 면에서 영화적인 것과 실제의 경계에 대한 사색의 공간을 만든다. 존과의 짧은 밀회 후 이별하게 되는 안젤라의 모습은 오드리 햅번의 씁쓸한 사랑의 결말이었다. 반면에 미모의 돌로레스에게 반한 찰스는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지만, 현실의 돌로레스(스트래튼)는 찰스(보그다노비치)와 함께 할 수 없었다. 그 누구도 웃을 수 없었던 사연을 지닌 이 영화는 2006년에서야 DVD로 발매되었다. 실제 배우들의 슬픈 사랑과 인생의 이야기를 뉴욕의 아름답고 활기 넘치는 풍광은 더욱 선연하게 만든다.  


*사진 출처: slant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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