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N사의 등장은 영상물의 유통과 소비에 있어서 여러모로 혁신을 일으켰다. 특히 다큐멘터리의 경우, 늘 배급
문제로 고민하는 제작자들에게 좋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빌리 코번 감독의 2021년작 '코카인 카우보이: 마이애미의
제왕들(Cocaine Cowboys: The Kings of Miami)'은 N사의 6부작 다큐로 편성되어서 방영되었다. 코번
감독은 2006년에 'Cocaine Cowboys'로 마이애미의 두 마약 거물들에 대한 고발 다큐를 내놓았는데, 올해 나온 6부작
다큐는 그 후속편으로 다큐의 완성판이라고 보면 된다. 다큐는 Sal Magluta와 Willy Falcon이 1970년대부터
마이애미에 구축한 마약 왕국의 흥망성쇠를 다룬다. 1부 윌리와 살, 2부 코카인 75톤, 3부 산더미 같은 증거, 4부 마이애미가
아니라면, 5부 팜므 파탈, 6부 무차초스여 안녕, 이렇게 6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편당 50여분 가량으로
만들어진 이 다큐의 흡인력은 정말이지 대단하다. 이 다큐를 보려는 이들은 가급적 주말 저녁에 보는 것이 낫다. 한번 보기 시작하면
다 보느라 밤을 샐지도 모른다. 다큐는 액션, 스릴러, 법정 드라마, 로맨스, 마치 온갖 종류의 장르 영화들을 절묘하게
합쳐놓은 것 같다. '코카인 카우보이'는 두 명의 마약왕의 일대기인 동시에 1970년대에서 80년대, 90년대까지 아우르며 미국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마약 거물들의 가족과 지인들, 그들의 조직원들, 사건을 취재한 칼럼니스트, 그들을
기소한 연방 검사와 FBI 요원들, 마약왕들을 옹호한 변호사들, 그 모든 이들의 생생한 증언과 함께 자료 화면으로 제시되는
사진과 녹음 테이프들은 관객들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쿠바 이민자들이 많이 정착한 마이애미에서 윌과 살은
고등학교 동창으로 만났다. 1970년대 초반의 일이었다. 신앙심이 깊었던 살은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는지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는 마약상 윌을 만나면서 인생이 뒤바뀐다. 둘은 죽이 잘 맞았다. 소소한 푼돈벌이였던 마약 사업은 콜롬비아의
악명높은 메데인 마약 카르텔로부터 공급을 받게 되면서 획기적 발판을 마련한다. 연방 정부의 해안 경비대를 피해 경비행기와 보트로
직접 공수한 엄청난 양의 마약으로 윌과 살은 거물 마약상의 삶에 진입한다. 윌과 살은 소형 보트 경주 경기를 휩쓴 선수로도
맹활약하며 유명인사가 된다. 그러는 동안 그들의 마약 왕국은 판매책, 공급책, 자금 세탁팀, 법률 자문팀으로 세분화되면서 기업의
형태로 변모한다. 마약으로 번 돈은 마이애미의 지역 경제로 흘러들어갔는데, 특히 그들의 투자로 마이애미의 부동산 경기는 대단한
호황을 누렸다. 마이애미에서 그들을 모르는 이들은 없었으며, 쿠바 이민자 사회에서 그들은 영웅이나 다름 없었다.
잘나가던 윌과 살의 사업은 레이건 정부의 엄격한 마약 단속 정책으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그들의 범죄가 수면에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1987년이 되어서였다. 1992년, 드디어 연방정부는 그들을 기소하고 재판에 회부한다. 연방 정부의
검사들은 자신만만했다. 압수한 엄청난 양의 마약들과 많은 증인들이 윌과 살의 범죄를 입증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증인들은 암살범들에 의해 줄줄이 죽어나가며, 윌과 살은 호화 법률팀을 꾸리며 재판에 대비한다. 1996년,
배심원단은 윌과 살이 무죄라고 판결을 내렸고 그들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다큐는 관객들에게 미국
사법제도의 일그러진 일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넘쳐나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마약왕들은 풀려났고, 그날은 마이애미 쿠바
공동체의 축제날이었다. 마이애미는 윌과 살의 더러운 돈으로 포장된 작은 왕국이었다. 주 정부와 사법 기관, 지역 커뮤니티, 종교
단체를 비롯해 그들의 돈이 흘러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아름다운 해변 도시 마이애미의 내부는 썩은 돈 냄새로 진동했다.
다큐의 후반부는 그들을 무죄로 만든 배심원단의 비밀과 정의의 사도로 나선 FBI 요원들의 맹활약, 그리고 살의 여자 친구에게서
압수한 마약 장부로 윌과 살을 재기소하는 과정이 펼쳐진다. 사법 당국이 윌과 살의 마약왕국을 무너뜨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20여년이었다. 다큐는 지역 사회를 장악한 범죄 조직의 위력과 연방제 국가인 미국에서 주정부 사법 관할권의 한계, 배심원 제도의
폐해, 뿌리 깊이 자리한 미국의 마약 문제를 조망한다. 강렬한 비트의 마이애미 사운드와 함께 역동적으로 편집된 화면은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연대기순으로 매 편마다 요약 정리해서 보여주는 이 다큐의 친절한 면모는
칭찬할 만하다. 속시원한 결말은 만족스럽지만, 그럼에도 마이애미의 'Muchachos(the boys)'라고 불렸던 윌과 살의
이야기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들의 범죄를 가능하게 했던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과 범죄로 고통받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소홀한 부분이
있다. '마약왕들의 서사시'는 너무나 재미있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런 범죄 서사시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은 뭔지
모를 씁쓸함을 남긴다.
*사진 출처: netfli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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