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슈하드 동물원의 호랑이 '마야'는 출산 직후 3마리의 새끼 가운데 2마리를 죽였다. 부상을 입은 한 마리는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마야를 새끼 때부터 사육해왔던 조련사 모센은 왜 마야가 새끼들을 죽였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한다.
"아마도 이 세상이 새끼들이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죠."
마야를 촬영하던 감독의 말이었다. 잠시드 모자데디와 앤슨 하트포드의 다큐 '마야(Maya, 2020)'는 동물원 호랑이 마야를
통해 인간과 야생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란 북부 지방에 서식하던 카스피 호랑이들은 서식지 파괴와 사냥으로 멸종되었다.
동물원은 멸종된 카스피 호랑이들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사육사 모센은 자신의 말을 잘 따르는 호랑이 마야와의 특별한 관계로
이란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맹수임에도 사람에 의해 길들여진 마야를 보기 위해 이란 전역에서 관람객들이 몰려들었고, 마야는
그야말로 마슈하드 동물원의 스타였다.
모센만을 따르던 마야는 영화 촬영을 위해 카스피 연안 지역으로 이동한다.
그곳에는 소련이 점령 당시 지어놓은 야생 사육장이 있었다. 2차 대전 당시 이란 왕실은 독일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영국과 소련 연합군은 그것에 불만을 품고 이란을 침공한다. 영국은 이란 남부를, 소련은 이란 북부에 주둔한다. 다큐에서 마야가
머물게 된 사육장은 바로 그 소련군이 지어놓은 곳이었다. 다큐는 카스피해 호랑이 멸종의 비극적 역사를 들려준다. 감독이 인터뷰한
그곳의 노인은 소련군들이 호랑이를 많이 잡아갔고, 주민들도 호랑이를 많이 사냥했다고 말한다.
마야가 처음으로
동물원을 떠나 진짜 자연과 마주하게 되면서 모센과 마야의 관계는 달라지기 시작한다. 비좁은 동물원의 우리에 있다가 드넓은 대지에
지어진 사육장에서 마야는 야생의 본성에 눈을 뜬다. 인근 마을의 말과 소떼를 쫓아가기도 하고, 숲속을 헤매기도 한다. 마침내 영화
촬영이 끝나고 동물원으로 돌아왔을 때의 마야는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그즈음, 동물원에는 불미스런 사건이 터진다. 개인 소유의
동물원이었던 그곳에서 호랑이 사체와 가죽을 불법적으로 판매했다는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고발당한 동물원 소유주는 재판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모센을 해고한다. 모센은 원래의 자신의 직업으로 돌아간다. 그는 실력이 좋은 '박제사'였다.
2대째 동물원을 운영해온 소유주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모센 또한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하다. 관객들은 그들이 포장해서 보여준
동물에 대한 애정 뒤에는 더러운 돈과 추악한 비리가 있었음을 직감한다. '나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를 외치는 동물원
소유주와 모센의 모습은 탐욕으로 일그러져 있다. 마야의 출산은 그런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두 마리의 새끼를 죽인 마야의 심정에
대한 감독의 추측을 이 다큐를 본 이들이라면 모두 동의하게 될 것이다. 마야는 평생 우리에 갇혀 사람들의 놀잇감으로 살아야하는
삶은 자신만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카스피해에서 영화 촬영이 끝날 무렵, 마야가 회복한 야생성은 급기야
촬영을 하던 감독에게 덤벼들어 목에 상처를 내는 데에까지 이른다. 모센은 팔뚝의 이곳저곳에 난 상처와 흉터를 보여준다.
야생동물로서 마야의 공격성은 평소에도 그렇게 내재되어 있었다. 그것을 부인한 채 사람을 잘 따르고 친근하게 구는 호랑이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길을 들인 이유는 오직 '돈벌이' 때문이었다. 박제사 모센이 마야에게 보여준 애정의 실체는 무엇일까? 동물원을 떠난
그는 백화점에 코너를 임대해서 자신의 박제 박물관을 성대하게 개장한다.
베르너 헤어초크가 '그리즐리
맨(Grizzly Man, 2005)에서 이미 보여준 바와 같이, 야생을 자신의 방식대로 길들일 수 있다는 인간의 믿음은 비극을
초래한다. 인간이 야생 동물들의 삶을 존중하지 않고 거리를 두지 않았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파국을 우리는 지금 겪고 있다.
COVID-19 바이러스는 야생동물과 인간, 가축 산업의 무너진 경계선에서 발생했다. 감독은 살아남은 한 마리 새끼에게 마야의
젖을 물리기 위해 애를 쓰던 모센에게 묻는다. 마야에게 당신은 어떤 의미냐고. 모센은 아마도 공동 양육을 하는 남편과 같은 존재가
아니겠냐고 대답한다. 모센의 그 대답은 서늘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인간에게 길들여져서, 자신의 새끼 또한 인간에게 맡길 수 밖에
없는 마야의 모습은 도돌이표 같은 의문을 낳는다. 인간은 자연에서 살아갈 수 없는 동물들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마야'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생물 다양성(Biodiversity)의 최후의 수호자로서
인류에게 부여된 책무를 잊지 않는 것, 그것이 동물과의 더 나은 공존의 미래를 찾아가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할 마음가짐일 것이다.
*사진 출처: mayafilm.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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