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화 'Hair(1979)'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밀로스 포먼 감독의 1979년작 뮤지컬 영화 '헤어(Hair)'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Hair'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뮤지컬이
처음 상연된 것은 1968년, 영화 제작 당시 이미 1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원작 뮤지컬은 영화로 바뀌면서 주인공과 이야기
설정이 상당 부분 바뀌었다. 노래들도 편곡을 달리했고, 영화 버전에 새로 작곡된 곡을 넣기도 했다. 나중에 영화를 본 뮤지컬
제작자들은 상당한 불만을 표시했다. 심지어 뮤지컬 '헤어'의 진정한 영화는 만들어진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확실히 영화의
인물 설정이나 이야기는 군데 군데 엉성한 부분이 보인다. 밀로스 포먼은 히피 문화에 중점을 두었던 뮤지컬과는 달리, 계급 문제와
반전 메시지에 좀 더 집중했다.
원작 뮤지컬에서는 다 같은 히피 그룹 일원이었던 클로드와 쉴라가 영화에서는
떨어져 나온다. 클로드는 징집 영장을 받은 오클라호마 시골 청년, 쉴라는 상류층 여대생으로, 히피 그룹을 이끄는 리더는 버거가
된다. 클로드는 군사 훈련을 받기 전에 뉴욕 탐방에 나선다. 공원에서 말을 탄 쉴라를 보고 반한 클로드. 마침 그곳을 지나던 히피
무리는 클로드에게 함께 지낼 것을 권유한다. 리더 버거는 쉴라와 클로드를 이어주려고 쉴라의 무도회 데뷔 파티에 클로드를
데려간다. 환영받지 못하는 히피들은 파티를 헤집어 놓고, 그들은 즉결 심판에 넘겨진다. 겨우 벌금을 내고 풀려난 클로드는 네바다의
훈련소로 향한다. 계절은 여름에서 겨울로 변한다. 쉴라는 클로드가 보낸 편지를 버거에게 보여주고, 그들은 클로드를 만나기 위해
함께 네바다로 떠나는데...
뮤지컬 영화 답게 대사가 좀 나온다 싶으면 노래가 이어진다. 영화의 첫 뮤지컬 넘버인
'Aquarius(물병자리)'부터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노래하는 흑인 여가수를 보여주는 트래킹 쇼트는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좀 촌스럽게도 보인다. 요즘 영화에서는 레일 깔아놓고 빙빙 돌아가면서 찍는 장면은 거의 못본 것 같은데, 아무튼 밀로스 포먼은
현란한 트래킹 쇼트와 잘 짜여진 안무로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든다. 초반부에 나오는 넘버들은 대부분 히피들의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드러낸다. 'Black Boys'와 'White Boys'의 외설스런 가사들, 버거가 쉴라의 집 파티장에서 부르는 'I Got
Life'와 유치장에서 머리를 자르라는 지시에 거부하면서 부르는 'Hair'는 '히피란 이런 사람들이다'하고 말해주는 것 같다. 한
명의 흑인과 세 명의 백인으로 이루어진 버거의 히피 무리에서 유일한 여성인 지니는 임신을 했는데, 애 아빠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LSD를 신성한 성체 받아모시듯 먹고 약에 취하는 너절한 히피들의 모습은 그 시대의 반문화 운동의 실체를 짐작케 한다. 마치
출구없는 일탈에 빠져든 히피들의 문화는 '베트남전'이라는 시대 상황과 만나면서 '반전(反戰) 운동'으로 발화한다.
버거는 쉴라의 파티에 모인 상류층 사람들에게 당신들을 지켜주기 위해 클로드가 전쟁터에 간다며 고마워하라고 소리친다. 포먼은
영화의 후반부를 클로드의 훈련소 장면으로 채운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어쩔 수 없이 전쟁에 나가야 하는 클로드는 지독한 군사
훈련을 받는다. 꽃을 들고 노래하며 아무리 평화를 외친다 해도, 막강한 힘을 가진 국가 권력은 젊은이들을 군인의 삶으로
강제한다. 훈련소 밖에서 클로드를 쉴라와 만나게 해주기 위해 클로드의 군복을 입고 있었던 버거는 갑작스런 명령에 따라 수송기에
실려 떠난다. 그리고 그 다음 장면에서 관객들은 묘지의 비석에서 버거의 이름을 보게 된다. 국가의 명령은 거부할 수 없는 것이며,
누군가 남아있다면 대신 전장으로 떠나야 했던 누군가는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영화 'Hair'가 히피 문화와 베트남전의
시대적 종착지에서 만들어진 영화로 갖는 의미는 바로 그 반전 메시지에 있을 것이다.
9.11테러로 촉발된 미국의
아프간 전쟁은 20년만에 끝이 나고 있는 중이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그랬듯이 아프간에서 뼈아픈 패배를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 본 뉴스에서 탈레반은 카불 점령을 공식화하고 자신들을 아프간의 지배자로 선언했다. 이제는 오래된 구닥다리 영화처럼
보이는 'Hair'의 마지막 묘지 장면이 그토록 통렬하게 다가오는 것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전쟁의 본질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곡 'Let The Sunshine In'에서 군중들이 외쳤던 평화의 햇살이 쏟아지는 날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사진 출처: medi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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