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화 '네이키드 런치(1991)'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자네가 아내를 죽였다고 들었는데."
"죽이다뇨? 그건 죽인 게(murder) 아니라 사고(accident)였단 말입니다."
남자는 정색을 하며 대답한다. 정말로 남자는 피치 못할 사고로 아내를 잃은 것일까?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1991년작
'네이키드 런치(Naked Lunch)'는 미국의 비트 문학(Beat literature)의 대표 작가 윌리엄 S.
버로우즈(William S. Burroughs)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크로넨버그는 소설의 주요 내용과 함께 버로우즈의
인생사를 결합시켜서 자신만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써냈다. 영화 초반부에 주인공 윌리엄 리(피터 웰러 분)는 약물에 취한 상태에서
총으로 아내를 죽이게 된다. 이른바 '윌리엄 텔' 묘기를 하려다 그렇게 된 것이다. 아들의 머리에 사과를 올려놓고 활을 쏘아야만
했던 프리드리히 실러의 희곡 속 주인공 빌헬름 텔. 실제로 윌리엄 버로우즈는 1951년, 영화의 그 장면처럼 아내를 총기 사고로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소설 '네이키드 런치'는 버로우즈에게 작가로서의 확고한 토대를 마련해준 작품이다. 약물
중독자인 주인공의 기괴한 모험담을 그린 이 책은 외설적인 표현과 난해한 이야기 구성 때문에 출간 이후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조부의 발명품 특허로 불어난 집안의 재산은 버로우즈에게 크나큰 자유를 선물했다. 하버드 대학까지 나온 남자는 결국
온갖 약물에 찌든 '약쟁이'가 된다. 그의 아내도 약물의 영향 아래에 함께 놓였다. 아내의 죽음은 버로우즈를 인생의 막다른
골목으로 내몬다. 살인죄로 기소되었지만, 부유한 집안의 도움 덕분에 감옥행은 피한다. 그런 그가 주목한 곳은 모로코의
'탕헤르(Tangier)'였다. 1949년에 나온 폴 보울스(Paul Vowles)의 소설 'The Sheltering Sky'가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는데, 보울스가 머물던 곳이 탕헤르였다. 당시 탕헤르는 프랑스, 스페인, 영국이 공동 관리하는 국제 관리
지역으로 다양한 코스모폴리탄들의 집결지였다. 동성애자, 마약 중독자, 예술가들이 탕헤르에서 자유를 찾았다. 영화 속에서 방역
회사 직원 윌리엄이 아내를 죽인 후 도피하게 되는 '인터존(Interzone)'은 버로우즈가 5년 동안 지냈던 바로 그 탕헤르를
가리킨다.
소설의 제목과 이야기의 큰 얼개를 빌리기는 했지만, 영화를 채우는 세부적 이야기와 묘사는 크로넨버그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다. 주인공이 약물에 절어있다는 설정에는 변함이 없다. 윌리엄은 외계인과 같은 기괴한 형상의
Mugwumps들과 마주하는가 하면, 커다란 딱정벌레로 변한 타자기로 끊임없이 글을 써낸다. 마치 약쟁이의 뇌에서 일어나는 온갖
환상들을 늘어놓은 것처럼 보이는 그런 장면들은 원작자 버로우즈가 아닌 크로넨버그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크로넨버그 영화들에서
반복되는 테마들, 기괴한 생명체와 기계가 결합하고 실제와 환상이 뒤죽박죽 얽힌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윌리엄 버로우즈의 '네이키드
런치'와는 다른 이야기로 영화적 궤적를 만들어 나간다. 인터존에서 윌리엄은 머그웜프의 지시대로 상부에 보고할 첩보 내용을
타자기로 써내는데, 이 타자기는 윌리엄에게 공포와 강박의 대상이 된다. 약물을 뿜어내며 기이하게 변모해가는 타자기는 스스로 글을
써내기도 한다. 타자기는 윌리엄의 또 다른 자아이며, 약물에 절어서 글을 써내는 작가 자신의 모습 그 자체이다.
윌리엄이 인터존에서 겪는 모험담은 사실 버로우즈의 탕헤르 생활 요약편이나 다름없다. 버로우즈는 탕헤르에서 약물과 동성애, 모든
일탈을 맘껏 즐겼다. 영화 속 윌리엄을 유혹하는 젊은 남자 키키는 실제로 작가가 탕헤르에서 동거했던 소년의 이름이었다. 탕헤르는
버로우즈에게 인생의 해방구와 같은 곳이었지만, 또 다른 의미로 작가의 정체성을 얻은 곳이기도 했다. 윌리엄은 커다란 딱정벌레에게
먹혀 피투성이가 된 타자기를 버리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것으로 끌어안는다. 그것은 아내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를 가진 그가
글쓰기로 도피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의미한다. 결국 이 영화는 아내 살인범 버로우즈가 비트 문학 작가로 탄생하기까지의 내적
투쟁에 대한 이야기이다.
윌리엄 버로우즈는 아내의 죽음이 자신을 작가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하워드 브루크너가
5년에 걸쳐 버로우즈를 찍은 다큐 'Burroughs: The Movie(1983)'에서 작가가 그 비극적 사건에 대해 담담하게
말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거기에서도 그는 영화 '네이키드 런치'에서 윌리엄이 말했듯, 아내의 죽음은
'사고(accident)'였다고 강조한다. 영화의 마지막, 인터존에서 탈출해서 다른 자유 지대 아넥시아로 가려는 윌리엄은
검문소에서 질문을 받는다. 직업을 묻는 질문에 '작가'라고 하자, 검문을 하던 군인은 그것을 증명해 보라고 한다. 윌리엄의 차에는
인터존에서 만난, 죽은 아내와 꼭 닮은 외모의 조안이 타고 있다. 그는 또 다시 한 번 윌리엄 텔 묘기를 선보이고, 조안은
아내와 같은 모습으로 죽는다. 그제서야 군인은 '통과', 라고 외친다. 약에 취해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던 윌리엄의 과오는
작가적 정체성을 획득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치환된다. 해충 구제 회사 직원(exterminator: 박멸하는 사람) 윌리엄의
죄의식은 그렇게 소멸된다. 그리고 그는 이제 진정한 작가로 태어난다.
버로우즈는 책의 제목 'Naked Lunch'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The title means exactly what the words say: naked lunch, a frozen
moment when everyone sees what is on the end of every fork(제목은 단어 그 자체를
의미할 뿐입니다. 벌거벗은 점심,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포크 끝을 바라보는 얼어붙은 순간)."
평생을 헤로인
중독자로 살았던 이 작가의 약에 절은 문학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과연 얼마나 될까? 소설 'Naked
Lunch'의 영화화 판권을 샀던 콘라드 룩스(Conrad Rooks)는 정작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다. 그는 크로넨버그가 만든 이
영화를 보고, 진짜 약쟁이가 아닌 사람이 '네이키드 런치'를 만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평했다. 룩스의 말대로 영화
'네이키드 런치'는 약쟁이 작가의 뇌내 망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작가 버로우즈의 삶에 대한 크로넨버그식 영화적 성찰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약쟁이 작가의 기괴한 문학 세계의 소개글로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사진 출처: horrornews.net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