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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불안정성에 대한 얄팍한 우화, 노매드랜드(Nomadland, 2020)

 

  "엄마가 선생님이 노숙자라고 하던데, 정말 그래요?"
  "아니, 난 노숙자(homeless)가 아냐. 그냥 집이 없는 것(houseless) 뿐이야."

  한때 학교 보조 교사로 일했던 여자는 오랜만에 만난 학생에게 그렇게 대답한다. 중국계 미국인 감독 클로이 자오의 2020년작 '노매드랜드(Nomadland)'는 집을 떠나 길 위의 삶을 택한 중년 여성 펀(Fern)의 이야기를 담는다. 원작은 2017년에 출판된 제시카 브루더의 동명 논픽션으로, 클로이 자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각색을 했다.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연기한 '펀'이라는 캐릭터와 이야기는 자오의 창작물인 셈이다.

  펀이 오랫동안 살던 석고 광산 도시 엠파이어는 광산의 폐쇄와 함께 도시로서의 운명도 끝난다. 암에 걸린 남편의 죽음을 겪으며 펀은 밴 한 대에 자신의 삶을 담아 길을 떠난다. 영화는 온갖 일용직을 전전하며 노매드(nomad)의 삶을 고수하는 펀의 여정을 보여준다. 무려 1시간 50여분에 이르는 이 영화는 줄거리라고 할 것이 없다. 펀이 하는 다양한 일들, 아마존의 물류창고 일, 드러그 스토어 점원, 캠핑장 청소일, 햄버거 음식점 주방일 등이 마치 씨실처럼 직조된다. 날실은 길에서 만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펀이 가는 곳마다 펼쳐지는 광대한 미국 자연의 풍경도 정말 멋진 배경이다. 그리고 또 뭐가 있나? 맞다. 이 영화는 음악이 꽤 좋다. 나중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보니 현대 음악 작곡가로 잘 나가는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이름이 뜬다. 그가 들려주는 음악은 명상적인 울림을 준다. 정말 그 뿐이다.

  '노매드랜드'는 작년 한 해 동안 아카데미를 비롯해 여러 영화제를 휩쓴 영화이다. 나는 도대체 이 영화의 어디가 그렇게 대단한 것인지 찾아낼 수 없었다. 경제적 기반의 붕괴와 남편의 죽음. 여자는 그렇게 길을 떠났고, 길 위의 삶에도 잘 적응했다. 영화는 펀이 만나는 노매드들의 이야기를 통해 끊임없이 현시대 미국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우회적 비판을 늘어놓는다.

  "나는 이 삶이 마음에 들어요. 자유롭고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죠."

  그러나 영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과연 실제 길 위의 삶이 그토록 충만하고 낭만적이며 평화로운 경험으로만 채워질까? 영화는 펀이 계속 일자리를 찾아다니며 생계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는 것을 보여주지만, 거주가 불안정한 여성이 겪는 위험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한다. 여성 노숙자들이 드문 이유는 성적 위협과 착취가 매우 현실적인 위험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평화로운 노매드 공동체의 모습은 실제의 현실을 탈색시킨 것이다. 길 위의 삶은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이어나갈 수 없다. 치안을 비롯해 의료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느냐의 문제, 그리고 예기치 못한 사고도 변수로 작용한다. 이 영화의 처절한 지루함에 몸이 뒤틀릴 무렵, 펀에게 사건이 하나 발생한다. 펀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 밴이 고장난다. 영화 시작 후 1시간이 지났을 무렵이다. 나는 그제서야 약간의 긴장감을 느꼈다.

  펀은 차 수리비를 구하기 위해 애를 쓴다. 결국 펀의 선택은 여동생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여동생은 돈도 빌려주고, 같이 살자고 제안도 한다. 아들 내외와 함께 살게된 마음 맞는 노매드 데이브도 펀에게 진짜 '집'에서 살자고 말한다. 그러나 펀은 그 모든 것을 거부한다. 이 여자는 결코 절박한 처지의 노숙자가 아니다. 클로이 자오는 길 위의 삶을 이상적으로 포장한다. '집'으로 상징되는 물질에 매몰된 삶을 '죽은 것'이란 메시지를 보여줌으로써, 펀의 선택은 진정한 자유와 생의 의지에 대한 표현이 된다. 그것은 여동생의 집에서 지인들과 나눈 주택 구매에 대한 대화에서 잘 드러난다. 펀은 집을 사기 위한 필사적 노력이란 자신의 미래를 건축물에 매몰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노매드랜드'는 기꺼이 삶의 불안정성을 끌어안고 진정한 내적 자유와 평화를 위한 대안적 삶의 방식을 찾길 요구한다. 그것이 노매드의 삶이라고 추켜세우는 이 영화의 이야기는 거친 현실과는 다르게 매끄럽게 가공되어 있으며 그저 얄팍한 성찰을 보여줄 뿐이다. 나는 작년 한 해에 이 영화가 그토록 세간의 화제가 된 이유는 전례없는 전염병의 시대에 줄어든 영화 제작 편수, 그리고 이 영화의 풍광이 보여주는 감상적 위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클로이 자오의 이 영화는 지루하고, 생기도 없으며, 경박스럽다. 한가지 더, 아마존 물류 센터의 급여가 '꽤 괜찮다'고 말하는 펀의 대사는 정말이지 끔찍하다. 아마존이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혹독한 조건의 노동 환경을 제공하는 기업인지 클로이 자오는 정말 몰랐을까? 떠오르는 젊은 거장이라고 칭송받는 이 여성 감독은 정치 감각과 현실 타협 능력만큼은 대단한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 출처: empireonl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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