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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 끝난 후, 통금(After the Curfew,1954)

 *이 글은 영화 '통금(After the Curfew, 1954)의 결말 부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난 내가 외국인처럼 느껴져."

  영화의 첫 장면, 어두운 밤길을 걷는 한 남자의 시선이 벽보에 멈춘다.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의 통금을 알리는 글이다. 4년에 걸친 치열한 전쟁이 끝났다. 조국은 원하는 독립을 쟁취했고, 그는 누구보다도 용감하게 싸운 전사였다. 이제는 군인이 아니라 일반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스칸다르는 딱히 머물 곳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약혼녀 노르마의 집에서 신세를 진다. 하지만 그 집의 모든 것이 그에겐 불편하고 낯설게 느껴진다. 부유한 노르마의 집에서 이스칸다르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다. 노르마가 이스칸다르의 귀환 파티를 준비하는 동안, 돌아온 혁명 전사는 너무나도 달라진 현실과 마주한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자신의 재단(The Film Foundation)을 통해 세계 영화사에서 보존될 가치가 있는 영화들의 복원 작업을 후원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영화로 그 프로젝트의 선정작이 된 영화 '통금(Lewat Djam Malam, After the Curfew, 1954)'은 2012년에 공개되었다. 이 영화는 자국의 엄혹한 독재 시절을 지나며 무려 50년 동안 잠들어 있었다. 초창기 인도네시아 영화사의 중심 인물인 우스마르 이스마일(Usmar Ismail) 감독은 1949년 독립 직후 조국의 혼란한 상황을 영화로 기록했다. '통금'은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혁명의 좌절된 이상을 제대 군인의 시각을 통해 보여준다.

  노르마의 아버지는 사윗감이 영 마뜩잖지만 딸을 생각해서 친구인 주지사의 사무실에 취직시킨다. 그러나 그곳에서 하루 만에 해고당한 그는 부대원이었던 가파르를 만나러 간다. 이스칸다르는 전쟁 때 자신이 죽였던 사람들의 비명이 아직도 들린다며 고통을 호소한다. 성공한 건축업자가 된 가파르는 그저 과거를 잊고 새출발을 해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 전직 혁명 전사의 머릿속 세계는 아직도 전쟁터에 머물러 있다. 그는 군대 사람들을 찾아보기로 한다. 부대장이었던 구나완은 큰 회사를 차려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구나완은 이스칸다르를 경쟁자인 외국 회사 경영자를 협박하는 일에 써먹으려 한다. 실망한 그는 부대원 푸자를 만나 본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푸자는 포주가 되어 도박이나 하며 살아가고 있다.

  혁명은 끝났다(인도네시아에서는 독립 전쟁을 '국민 혁명'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혁명의 과실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돌아간 것이 아니었다. 건축업자로 성공한 가파르, 사업가가 된 구나완은 지배 계층에 안착했다. 이전 시대부터 부르주아였던 노르마의 집안처럼 상류층의 삶은 혁명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았다. 노르마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모인 이들은 마치 딴세상 사람처럼 보인다. 멋진 파티복에 값비싼 보석으로 장식한 여성들, 새로 산 자동차를 자랑하는 남자들, 그들은 춤과 노래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들을 보며 이스칸다르가 '외국인'처럼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단지 계층적인 위화감 때문만은 아니다. 동료들로부터 용감한 군인으로 여겨졌던 이스칸다르는 살상의 기억으로 고통스러워 한다. 전쟁은 그에게 깊은 내면의 상처를 남겼다. 가파르가 들려준 과거의 진실은 이스칸다르를 뒤흔든다. 부대장 구나완이 무고한 이들을 반혁명분자로 몰아 처단시키고 그들의 재산을 빼돌려 축재했다는 것이다. 이스칸다르는 자신이 했던 혁명의 행위가 실상은 구나완이 저지른 범죄의 일부분이었음을 깨닫는다. 조국의 독립이라는 대의명분으로 뭉쳤던 이들이 모두 순수하지는 않았다. 그들 가운데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혁명을 이용한 저열한 이들도 있었다. 이것은 분단과 전쟁, 독재와 민주화 과정을 거친 우리의 역사에서도 결코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성공적으로 혁명 후의 세상에 적응한 가파르와 구나완, 매춘업자로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푸자, 이스칸다르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현실에서 길을 잃었다. 약혼녀 노르마에게 이스칸다르는 혁명의 이상을 완수한 전사이지만, 그 전사의 내면은 죽은 자들의 비명과 죄책감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다. 분노와 고통으로 비틀거리며 이스칸다르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만다. 과거를 잊어야 한다고 말한 가파르의 충고를 무시하고, 혁명 전사는 과거의 기억 속에 자신을 매몰시킨다. 구나완을 죽인 그는 통금 시간대에 거리를 헤매다 총에 맞는다. 이스칸다르의 시간은 그렇게 혁명의 끝에서 멈추었다.

  과연 그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구나완은 전쟁에서의 살상과 자신은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명령을 수행한 이스칸다르에게 피의 책임을 돌린다. 조국의 독립과 혁명의 완수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전사는 도달할 수 없는 이상과 일그러진 현실 사이에서 소멸을 택한다. 우스마르 이스마일 감독이 그려낸 이스칸다르의 초상은 혁명이 끝난 후 마주하게 되는 뼈아픈 진실의 시간과 맞닿아 있다. 누군가는 죽음으로 댓가를 치루었고, 누군가는 그 죽음으로 승승장구하며, 누군가는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간다. 영화 '통금'은 '혁명'이라는 이상 뒤에 가려진 폭력과 광기, 어리석음과 탐욕에 대해 깊이있는 성찰을 보여준다.   


*사진 출처: criterionchann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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