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아프간 파병 군인 가족의 재건 드라마, Father Soldier Son(2020)

 

  아이들은 아빠의 모습이 보이기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마침내 군복 차림의 한 남자가 나타났다. 12살 아이작, 7살 조이는 아빠를 열렬히 환영하며 끌어안는다. 남자는 2주간의 휴가를 보내기 위해 잠시 귀국했다. 아이들과 보내는 좋은 시간도 잠시, 남자는 다시 떠난다. 카트린 아인혼과 레슬리 데이비스의 다큐 'Father Soldier Son(2020)'는 제대 군인 가족의 삶을 10년의 시간을 두고 담아낸다.

  삼촌 내외와 함께 지내는 아이작과 조이, 부모는 이혼했고 아빠는 먼 나라 아프간에서 군 복무 중이다. 아이들에게 아빠는 영웅이며, 거대한 산과 같은 그리움이다. 그런데 그 아빠가 부상을 입고 제대한다. 나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견뎠지만, 결국 절단 수술을 받게 된다. 군인으로만 살아온 남자는 장애인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아이들도 그러한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는 동안 아빠의 동거녀 마리아, 마리아의 아들 조던이 새로운 가족으로 들어온다. 다큐는 파병 군인의 부상과 제대, 그 가족이 보내는 긴 재건의 시간을 펼쳐 보여주면서도 거기에 그 어떤 정치적 신념과 쟁점을 개입시키지 않는다. 물 흐르듯 펼쳐지는 이 가족 드라마를 보며 관객은 미국의 골치아픈 아프간 전쟁에 대해 구태여 떠올릴 필요가 없다. 어떤 면에서 그것이 다큐 제작자들의 의도이기도 하다. 아인혼과 데이비스는 '가족'이라는 주제에 집중하고 싶었다고 말한다(출처 coffeeordie.com과의 인터뷰).

  일반적으로 전쟁 다큐가 보여주는 긴박하고 치열한 전투 현장,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참상, 부상과 죽음, 그러한 장면들은 이 다큐에서 볼 수 없다. 브라이언이 주둔한 아프간 쿤두즈 기지와 그가 수행한 전투가 짧게, 삽화적 장면처럼 들어가기는 한다. 그러나 다큐는 그가 미국으로 돌아온 이후의 이야기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뉴욕 타임즈에서는 아프간 파병 군인에 대한 기사를 시리즈로 내보냈는데, 육군 중사 브라이언도 취재 대상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의 순수하고 귀여운 아이들이 제작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렇게 해서 'Father Soldier Son'의 10년에 걸친 여정이 시작되었다.

  두 명의 여성 제작자들이 보여주는 가족 드라마의 풍경은 매우 인간적이다. 가족 구성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물론이고 집안의 자잘한 소품들을 담아내는 것에도 남다른 데가 있다. 다큐 속 집안의 풍경은 이 가족이 군인 가장의 강한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군복과 군모를 일상복처럼 걸치고 지낸다. 이오지마에서 성조기를 세우는 군인들 미니어처를 비롯해 전쟁 관련 소품들이 진열된 거실, 아이작은 소파에서는 군용 담요를 덮고 낮잠을 잔다. 아버지 브라이언은 아이들이 강한 남성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조이가 학교 레슬링 경기에서 패하는 모습을 보이자 브라이언은 아들을 다그친다. 아이작이 하는 컴퓨터 게임은 전쟁 서바이벌 게임이다.

  브라이언이 상정한 '군인'이라는 이상적 직업, 사명감과 자부심은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어린 조이는 군인이 되어 아빠의 다리를 못쓰게 만든 놈들을 죽여버리겠다고 말한다. 조이와는 다르게 아이작은 대학에 진학하는 평범한 삶을 꿈꾸지만, 브라이언과 새엄마 마리아는 아이작의 꿈에 냉소적이다. 브라이언은 아이작이 결국 군대에 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부상으로 상이군인이 된 아빠가 어떻게 아들이 군대에 가는 것을 반길 수 있을까? 어쩌면 이 남자의 삶에서 군대는 전부였고, 그것이 자신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하더라도 운명처럼 끌어안고 살아야할 무엇이라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런 생각이 두 아들의 내면에 무겁게 드리웠다는 점이다.

  다리 절단 수술 후 의족에 적응해야 하는 힘든 재활의 시간, 제대 군인이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경제적인 어려움... 그에 더해 12살이 된 조이의 죽음으로 가족은 길고 고통스런 시련의 시간을 보낸다. 비운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동생 조이는 아이작의 인생 행로를 바꾸게 만든다. 고교 졸업 후 아이작은 군에 입대한다. 입대 지원서를 쓰고 기초 군사 훈련을 받은 후 수료식에 이르기까지 다큐는 담담하게 아이작이 군인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장면들은 미 육군에서 자원 입대 홍보 영상으로 써도 괜찮을 정도로 보인다. 거기에서 미국이 세계 각지에서 수행하는 군사 작전과 정치적 결정으로서의 파병과 같은 배경을 바라보기란 쉽지 않다. 다큐는 오직 '가족'의 풍경에만 집요하게 천착할 뿐이다.

  가족 심리 상담학자들에게 이 다큐는 매우 좋은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아버지가 만들어낸 가족 문화와 양육 방식, 그것이 어떻게 한 가족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그 구성원의 삶을 변화시켜 가는가를 'Father Soldier Son'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큐를 보는 관객들은 자신의 부모와 성장기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이 다큐의 경우에는 '군인'이라는 직업적 특수성이 반영되었다는 점이 일반적인 가족과 좀 다를 뿐이다. 여느 전쟁 관련 다큐와는 달리 군인의 '가족'에 촛점을 맞추고, 10년의 시간을 두고 담아낸 이 다큐에는 가족 관계의 역동성(Family dynamics)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2년을 군에서 보낸 후, 아이작은 자신의 입대 결정은 부모의 이혼, 동생의 죽음, 아버지에 대한 의무감 같은 여러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결부되어 있음을 고백한다. 군인으로서의 자부심 보다는 혼란과 불안함 속에 있는 이 젊은이의 모습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조이의 죽음 이후, 마리아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얻은 브라이언은 군복 무늬가 그려진 배냇저고리를 산다. 겉보기에 이 가족은 시련을 이겨내고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재건된 가족의 풍경에서 '조화'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는 어렵다.

  군에서 제대한 이후 사회인과 가장으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브라이언, 그런 남편의 모습을 감내해야하는 마리아, 자신의 욕구 보다는 아버지의 기대에 종속된 아이작, 떠도는 주변인처럼 보이는 마리아의 아들 조던, 이들 가족의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 한 켠이 서늘해진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에게 이 다큐는 애국심과 같은 보수적 가치를 의도적으로 배제시켰다는 의혹을, 자유주의자들에게는 전쟁과 정치가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유화적으로 그려냈다는 비난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Father Soldier Son'이 담고 있는 가족이란 주제의 근원성, 상처와 회복의 과정은 묵직한 감정의 파고를 일으킨다.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적룡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영화, 천애명월도(天涯明月刀, The Magic Blade, 1976)

    영화의 제목이 독특하다. '천애명월도'라는 명검을 두고 벌이는 검객들의 혈투인가, 막연한 생각으로 영화를 봤다. 그런 검은 영화 속에 나오지 않는다. 대신에 이 영화를 지배하는 비장의 무기는 공작령(孔雀翎, 공작의 깃모양 무기로 막강한 화력을 지님)이다. '천애명월도(天涯明月刀, 1976)'는 '유성호접검( 流星蝴蝶劍, 1976)'을 만든 초원 감독의 작품이다.     검객 부홍설(적룡 분)은 강호의 일인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고향을 떠나 방랑 중이다. 그는 자신과 적대 관계에 있는 연남비로부터 흑도파의 우두머리 공자우가 공작령을 차지해서 강호제패를 노린다는 말을 듣는다. 공작령을 찾아내기 위한 여정에 함께 하게 된 연남비와 부홍설, 부홍설은 공작령의 주인이자 공작산장의 우두머리 추수청에게 공작령을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 과정에서 추수청이 공자우의 밀정에 의해 죽게 되고, 추수청은 딸 옥정을 부홍설에게 부탁한다. 공자우는 자신의 부하 검객들을 보내 부홍설을 죽이고 공작령을 빼앗으려 한다. 그 와중에 연남비의 생사도 알 수 없게 되고, 추옥정은 납치된다. 부홍설은 공작령을 지키고, 옥정을 구해낼 수 있을까...   이 영화의 원작은 무협 소설 작가 고룡의 동명 소설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전작이 있다. 말하자면 시리즈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변성랑자(邊城浪子)'가 그것으로 '부홍설'이라는 인물의 인생을 담고 있다. 그러나 영화 '천애명월도'는 부홍설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주지 않고 바로 연남비와의 대결에서부터 시작한다. 초원 감독은 캐릭터에 대한 묘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 같다. 영화는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대결로 꽉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공자우의 본거지에 부홍설이 들어가기까지 너무나 많은 자객들이 나오고, 대결이 이어진다. 말하자면 볼거리 위주의, 철저히 흥행을 노린 감독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관객들 시각에서

전후 일본 영화(Post-war Japan Movie, 1946-1955) 3편: 전후 일본 사회가 마주한 고통과 혼란, 미스터 푸(プーサン, Mr. Pu, 1953)

    노로는 고등학교 선생이다. 그는 과속을 하는 트럭을 피하려다 손을 다친다. 그가 받는 빠듯한 봉급으로 단칸 월세방 돈 내는 것도 힘든데 병원비까지 나가게 생겼다. 그는 학교에서 그의 봉급을 올려주길 기대한다. 하지만 깡패같은 고등학교 이사장은 노로에게 야간 고등학교 강의까지 더하라고 강권한다. 천성이 유약한 노로는 '아니오'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한다.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 노로. 그는 자신의 제자가 권유한 반정부 시위에 나가보기로 한다. 시위대는 경찰의 강경대응으로 무참히 진압되었다. 노로는 경찰서에 끌려갔다가 겨우 풀려난다. 하지만 이 일을 빌미로 이사장은 노로를 해고한다. 전후의 어려운 시절, 노로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이치카와 곤(市川崑, Kon Ichikawa) 감독의 영화 '미스터 푸(プーサン, Mr. Pu, 1953)'는 고등학교 선생 노로와 그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후 일본 사회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원작이 되는 만화가 있다. 만화가 요코야마 타이조(横山泰三)는 1950년부터 1953년  마이니치 신문(毎日新聞)에 4컷 만화 '미스터 푸(プーサン)'를 연재했다. 4컷 만화에 담긴 날카로운 사회비판적 메시지 때문에 만화는 연재 중단의 압력을 받았다. 이치카와 곤은 그 만화에서 영화의 주요한 소재를 차용했다. 영화  '미스터 푸(プーサン)'는 명확한 서사 대신에 다양한 등장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영화의 그러한 구성은 전후 일본 사회의 여러 면면들을 부각시킨다.    노로는 다친 손의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간다. 그런데 의사는 노로의 몸을 진찰하더니 '영양실조'라면서 잘 먹어야 한다고 처방을 내린다. 젊은 의사는 환자들 대부분이 제대로 먹지 못해 건강이 좋지 않다고 말한다. 노로가 의사에게 손을 치료받고 싶다고 하자, 의사는 병원의 X-ray 기계가 고장나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전후

아, 홍상수: 물안에서(In Water, 2023)

    오래전, 영화를 공부할 때의 일이다. 강의를 듣고 있는데, 어디선가 신경을 긁는듯한 소음이 계속 들려왔다. 나는 조용히 강의실 뒷문으로 나와서,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 나섰다. 영상원 본관 3층의 복도를 천천히 걸어가면서, 마침내 그 소리의 근원을 찾아냈다. 열린 교수 연구실 안쪽에, 희끗희끗한 머리의 한 남자가 이상한 악기를 천천히 두드리고 있었다. 홍상수였다. 그는 매우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악기를 두들기던 그가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약간 당황했는지, 잠시 연주를 멈추었다. 나는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동남아시아인지, 아프리카인지 원산지를 알 수 없는 악기 소리는 내가 다시 강의실에 도착할 무렵에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해 가을, 홍상수가 영상원 교수직을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 홍상수의 강의는 영화과 학생들에게 악명이 자자했다. 거의 강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홍상수가 영상원을 떠날 무렵에는, 자신의 영화를 찍어야 한다는 당위성과 교수직 사이에서의 줄타기가 형편없이 어그러졌다. 나는 홍상수의 그 지치고 지루했던 표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는 결국 떠날만한 때에 떠났다. 그건 학생들에게도, 그에게도 좋은 결정이었다.     어제, 홍상수의 2023년 작 영화 '물안에서'를 보았다. 러닝타임 61분의 이 영화는 대부분의 화면이 초점이 나간 상태(ouf of focus)로 흐릿하게 나온다. 처음에는 또렷했던 화면이 인물을 제대로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로 나오니, 관객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다. 등장인물은 세 명. 배우로 활동하던 승모는 자신의 단편 영화를 찍겠다며 섬에 왔다. 승모와 동행한 사람은 촬영을 맡은 친구 상국, 연기를 할 여배우 남희이다. 승모는 아르바이트로 어렵게 모은 돈 300만 원을 들고 왔다. 그런데 정작 그는 시나리오조차 쓰지 않았다. 상국과 남희는 승모가 찍을 영화가 어떤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