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군 줄 알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인종차별주의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구!"
자신의 추종자와 함께 총을 들고 다니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늙은 남자는 그렇게 소리친다. 미국 사우스 다코타(South
Dakota) 주의 한적한 시골 마을 리스(Leith), 이곳에서는 소 방목업과 농장을 하는 주민들이 살고 있다. 2013년,
겨우 24명의 주민이 사는 이 작은 마을에 어느 날 흰머리에 긴 수염의 남자가 들어온다. 혼자 조용히 사는 사람이겠거니 생각했던
마을 사람들은 뜻밖의 사실과 마주한다. 남자의 이름은 크레이그 콥(Craig Cobb). 미국에서 잘 알려진 네오나치 운동의
열렬한 신봉자인 콥에게는 자신만의 꿈이 있다. 작은 마을 리스를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공동체로 만들려는 것이다. 그는 마을의 땅을
계속 사들이며, 자신의 추종자들을 그곳에 불러모은다. 네오나치 주의자들에게 리스는 성지가 되어가지만, 그것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다. 마이클 니콜스와 크리스토퍼 워커의 2015년작 다큐 'Welcome to Leith'는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들과
대결하는 리스 주민들의 고군분투를 그려낸다.
마을 초입에 '리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소박한 나무 간판이 있는 마을, 그곳에 콥은 폭풍을 몰고 온다. 콥의 집
마당에는 마을 간판을 비웃기라도 하듯 'Village of the damned(저주받은 마을)'이라는 팻말이 걸려있다. 그의 집
앞에는 온갖 종류의 나치 문양과 백인 우월 단체의 깃발이 내걸리고, 미국의 스킨 헤드족들이 리스에 집결한다. 콥은 마을 주민
회의를 장악하고 그곳의 주인이 되어 자신이 지배하는 리스를 만들려고 한다.
네오나치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는 마을 사람들은
침입자들의 정착을 막고자 갖은 애를 쓴다. 그러나 리스 주민들은 콥과 그 추종자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들의 권한을 극대화하며
마을을 집어삼키고 있음을 깨닫는다. 콥의 패거리들이 저지르는 패악을 견디다 못한 일부 주민들은 이사를 간다. 고향을
포기할 수 없는 이웃 주민들은 투쟁을 선택한다. 집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총기로 무장한다. 그리고 주민들은 변호사와 함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제작자 마이클 니콜스와 크리스토퍼 워커는 'Welcome to Leith'를 마을 사람들의 입장에서만 만들지 않았다. 다큐는
콥의 입장도 나름 공평하게 담는다. 관객들은 히틀러를 흠모하는 백발의 늙은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나름의 논리로 무장하고
있음을 본다. 유색인종과 유대인 인권 단체가 있는 것처럼 자신들은 '백인 시민 단체'이며, '백인들만의 나라'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한다. 콥과 추종자들에게 그것은 '정상적인 질서'로의 회복인 셈이다. 이 네오나치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는 결코 미친 사람이
아니다. 콥은 자신을 제재하지 못하는 법률의 한계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으며, 스스로를 마을 사람들에 의해 핍박받는 희생자로
부각시킨다.
"나는 리스 마을 사람들이 개방적이지 못하고 편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나를 내쫓지 못해 안달하고 있어요."
결국 총기를 들고 다니며 마을 사람들을 위협하던 콥과 추종자는 체포된다. 지리한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마을은 평화를 되찾는다.
주민들은 콥과 추종자들의 근거지를 부수고 불태우며 흔적을 없애려고 하지만, 나중에 콥의 석방 소식을 듣는다. 과연 리스 마을
사람들은 네오 나치주의자들로부터 마을을 되찾을 수 있을까?
다큐는 콥과 마을 사람들의 대결을 서부 영화처럼 묘사한다. 황량하기 짝이 없는 리스 마을의 풍광, 그곳에 모여든 네오나치
주의자들의 그로테스크한 모습은 공포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거기에 음울한 음악까지 더해진다. 그러나 'Welcome to
Leith'가 보여주는 극적인 긴장감은 재판이 끝나면서 동력을 잃는다. 무엇보다 이 다큐는 사태의 근본 원인에 대한 탐구나 성찰이
결여되어 있다.
폭넓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한 미국의 수정 헌법 1조는 네오나치와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방패막이가 되어왔다. 1977년,
이른바 스코키 판례(National Socialist Party of America v. Village of Skokie)로
불리는 미국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진다. 스와스티카(swastica, 卐)를 내건 시위를 허용하는 것을 두고 일어난 법적 다툼은
결국 네오나치 주의자들의 승리로 끝났다. 'Welcome to Leith'는 혐오 단체의 활동 근거가 되는 수정 헌법 1조의
문제점에 대한 그 어떤 언급도 없으며, 공정성이라는 미명하에 콥의 이야기도 열심히 주워담는다.
콥의 석방 소식을 들은 이웃 주민은 아내에게 사격 연습을 시킨다. 평범한 가정 주부는 자신과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총을 쥔다. 그 장면은 역설적이게도 미국의 관대하기 짝이 없는 표현의 자유가 총기 문제를 격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차별과
혐오의 발언,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의 대결 국면에서 총기는 효과적인 자기 방어 수단이 된다. 'Welcome to
Leith'는 다인종 국가로 오늘날 미국이 안고 있는 근원적 고민을 드러낸다. 그것을 해결하는 일은 단순히 법적인 토대를 마련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인종적 다양성을 분열이 아닌 성장의 동력으로 만드는 일은 어떤 면에서 미국의 미래와도 이어져 있다.
*사진 출처: vulture.com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