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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ly Scenes of Winter(1979), Happy Hour(2015)

 

1. 어느 쓸쓸한 사랑의 풍경, Chilly Scenes of Winter(1979)

  영화는 한 남자가 눈오는 겨울 날, 퇴근 하는 차 안에서 1년 전을 회상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플래시백으로 제시되는 이 남자의 사랑 이야기는 2개의 결말을 가진 사연있는 영화가 되었다. Joan Micklin Silver 감독의 1979년작 'Chilly Scenes of Winter'는 Ann Beattie가 쓴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다. 영화가 처음 개봉되었을 때의 제목은 'Head over Heels'였고, 원작에 따른 해피 엔딩이었다. 그러나 제작사 United Artists가 1982년에 재개봉하면서 제목은 원작의 것으로 하면서, 정작 중요한 결말을 바꾸었다. 왜 그랬을까? 재개봉 될 당시는 레이건의 시대였다. 레이건이 집권한 1980년대는 우드스탁을 경험한 히피 세대들에게는 암울한 시절이었다. 소설가 스티븐 킹은 그 시절을 견디는 것이 '매우 수치스러웠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어쨌든 제작사가 입맛대로 재단한 쓸쓸한 결말은 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효과를 낳았다.

  솔트레이크 시티의 주정부 공무원인 찰스는 자료 보관 부서의 로라에게 첫눈에 반한다. 남편과 별거 중인 로라는 의붓딸에 대한 애정 때문에 결혼 생활을 끝내길 주저한다. 찰스는 로라를 운명의 사랑이라 믿고 열렬히 구애한다. 둘은 연인으로 좋은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로라는 자신에 대한 지나친 기대, 거기에다 일상의 모든 것을 함께 해야한다고 믿는 찰스의 집착에 점점 거리감을 느낀다. 로라가 남편에게 돌아가자, 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찰스는 괴로워 한다. 우연히 로라가 결국 남편과 헤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찰스는 마지막으로 로라를 찾아가 청혼한다.

  조앤 미클린 실버는 헐리우드에서 여성 영화 감독으로 생존하는 것의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Chilly Scenes of Winter'는 로맨틱 코미디에 대한 이 여성 감독의 재능을 입증한다. 섬세한 감정 묘사가 돋보이는 이 영화는 조앤 미클린 실버가 1990년대의 로맨틱 코디미 붐을 이끌었던 노라 에프론의 선배임을 상기시킨다. 비선형적인 시간 구조 속에 주인공 찰스가 중간 중간 화면을 응시하면서 관객에게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장면은 우디 앨런의 유머와 닮았다. 찰스 역을 연기한 존 허드(John Heard)는 사랑의 감정과 집착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남자의 모습을 충실하게 보여준다.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직업에, 괜찮은 외모, 따뜻하고 관대한 품성을 지닌 찰스를 로라는 결국 거부한다. 왜 그랬을까? 사실 찰스가 로라에게 보여주는 사랑의 감정은 자신의 연인을 극도로 이상화시킨 데에서 기인한다. 로라는 찰스에게 완벽한 운명의 연인이다. 그러나 로라는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인 자신에 대한 그러한 기대가 버겁게 느껴진다. 그러므로 로라는 거기에서 도망치고 싶어한다. 그 기대가 언젠가는 깨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찰스에게 어떤 면에서 연애는 답답한 삶에서의 출구였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주변 사람들에게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착하고 내성적인 남자 찰스의 일상을 비춰준다. 찰스는 매일 상사가 아들의 성생활 문제를 지겹도록 상담하는 것을 참아내며, 실업자 친구 샘이 자신의 집에 염치없이 빌붙어 사는 것도 용인한다. 정서불안인 엄마는 주기적으로 자살 소동을 벌인다. 그 모든 것을 묵묵히 감당하는 찰스에게 로라와의 사랑은 유일한 삶의 활력소가 된다.

  사랑은 우리의 삶을 구원할 수 있을까? 인생의 문제들은 사랑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자신의 괴로움과 고통을 이상화된 사랑의 감정에 투사하는 것은 일종의 도피일 수도 있다. 로라에 대한 찰스의 사랑은 실패로 끝난다. 원래의 해피 엔딩에서 수정된 결말은 레이건 시대의 히피 세대가 느끼는 좌절과도 맞닿아 있다. 끓어오르는 열정과 이상만으로 무언가를 얻어낼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은 끝났다. 이 서늘하고도 쓸쓸한 사랑의 이야기가 솔트레이크의 겨울 풍경 속에 펼쳐진다.



2. 중년 여성은 무엇으로 사는가, Happy Hour(2015)

  하마구치 류스케의 'Happy Hour(2015)를 보고 나는 로베르트 무질의 단편집 '세 여인'의 첫 구절을 떠올렸다. '살다 보면 그냥 이대로 갈까, 아니면 되돌아 가야할까 고민하는 때가 있다. 그 시기에 인간은 불행해지기 쉽다.' 어쩌면 중년은 그런 시기에 속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러닝타임이 무려 5시간 17분인 이 영화에는 4명의 중년 여성이 나온다. 고베에 살고 있는 준과 사쿠라코, 후미와 아카리는 친한 친구들로 우정이 주는 위안으로 중년의 삶을 견딘다. 그러나 견고한 것 같았던 우정은 시간의 흐름 속에 균열을 일으키고, 그들 각자의 삶에도 위기가 찾아온다. 존 카사베츠의 'Husbands(1970)'를 인상깊게 보았다는 이 감독은 그 영화와 기묘한 짝을 이루는 '아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5시간이 넘는 어마무시한 러닝타임을 어떻게 견디고 볼 것인가, 를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영화는 시간의 순서에 따른 선형적 내러티브의 구조를 따라간다. 이토록 영화가 길어진 것에 대해 하마구치 류스케는 영화를 다 찍고 보니, 도저히 줄일 수가 없어서 그랬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어느 정도는 그러한 감독의 의도에 동의하게 된다. 4명의 주인공들이 참여하게 되는 워크숍 강의, 이혼 법정의 재판 과정, 작가의 낭독회 같은 장면들이 꽤나 긴 시간을 잡아먹는다. 솔직히 지루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지만, 그것이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의 변화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줄이거나 빼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간호사로 일하는 아카리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직업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강인함과 단호함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일상에서 결코 긴장을 풀지 못하는 이 여성은 이혼 후 그 어떤 연애도 거부한다. 과학자 남편과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던 준은 남편의 냉담함이 자신을 죽이고 있다면서 이혼 소송 중이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사쿠라코는 일만을 중시하는 남편,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을 두고 있다. 4명 가운데 가장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후미는 출판사 편집자인 남편과 무미건조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비영리 문화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후미는 독특한 워크숍에 친구들을 초대한다. 의자를 다리 한 부분으로 세우는 재주가 있는 강사 우카이는 타인과의 소통에 있어서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놀랍지만 어두운 면이 있는 구루(guru)처럼 우카이는 결코 속내를 알 수 없는 인물로 4명의 여성들의 삶과 이어져 영화 전체를 휘젓는다. 나는 그를 '선동자(agitator)'로 부르고 싶다. 그 워크숍 이후로 주인공들의 삶은 위태위태하게 유지해온 균형들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사실 영화의 줄거리로만 요약해서 보여준다면 1시간 반 정도에서 2시간 이내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마구치 류스케는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자신이 설계한 내러티브를 순차적으로 풀어놓는다. 마치 연기과의 움직임 수업 같은 워크숍은 4명의 친구들이 현재의 삶에 대해 돌아보게 만든다. 우카이는 힘의 균형에 대해 말한다. '해피 아워'의 아내들(이혼녀 아카리도 한때 누군가의 아내였다)의 삶에는 똑바로 설 수 있는 중심의 힘이 없다.

  투철한 직업의식으로 환자들을 보살피는 아카리에게는 오직 강인함만이 있고 부드러움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므로 아카리의 환자는 아카리가 갖지 못한 다른 간호사의 부드러움에 대해 언급한다. 사쿠라코는 집에 오면 명령조로 밥과 차를 내오라고 말하는 가부장적인 남편과 섹스리스로 산지 오래되었다. 후미는 편집자 남편이 젊고 예쁜 여자 작가에게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준은 결혼을 불변의 계약으로 받아들이는 고루한 남편을 피해 잠적한다. 영화는 그렇게 중년 여성들의 삶의 구부러진 부분을 드러낸다. 이대로 계속 살아도 괜찮은 걸까, 그들은 모두 고민에 빠진다.

  워크숍에서 우카이가 한쪽 부분으로만 세운 의자를 똑같이 따라해보려는 수강생들은 모두 실패한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삶의 균형을 잃은 4명의 여성들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준다. 준은 지하철 승강장에서 갑자기 쓰러지며, 아카리는 계단에서 넘어져 발목이 부러진다. 사쿠라코는 식탁에서 죽은 것처럼 엎드려 자고 있다가 눈을 뜬다. 남편에게 이혼을 선언한 후미는 거실 바닥에 엎어지듯 쓰러진다. 이러한 장면들에서 보여지는 신체의 외연적 상태는 중년의 내적 위기에 대한 명백한 은유이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해피 아워'의 아내들에게 쉽사리 자유와 평화를 선물하지 않는다. 중년의 나이는 마치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인생의 구멍 같은 것이며, 그것은 점점 더 커지며 우리 자신을 괴롭게 만든다. 유일한 해결책이 있다면 그 구멍으로 시간과 고통이 흘러가도록 놔두는 것이다. 잃어버린 힘의 균형은 다시 찾을 수 없다. 우카이는 의자를 세우는 방법은 힘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힘을 빼는 것이 중년의 위기를 넘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된다. 그러므로 부러진 다리로 우카이와 클럽에 갔던 아카리는 여러 사람들에 의해 공중에 들어올려진 순간에 자유를 느낀다. 병원으로 복귀한 아카리는 그동안 혹독하게 대했던 후배에게 이전과는 달리 부드럽게 말한다.

  5시간이 넘는 '해피 아워'는 하마구치 류스케가 탐구한 중년의 내면에 대한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긴 여정의 내러티브는 이 감독이 생각하는 연출론의 다층적 구조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물론 마냥 즐겁기만 한 시간은 아니다. 지루함과 뻣뻣함이 공존하는 이 영화는 그럼에도 끝까지 길을 잃지 않는 집중력을 갖고 있다. '해피 아워'는 효율성 대신에 과정의 세밀함을 택했고, 그것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하마구치 류스케가 담아낸 4명의 '아내들'의 이야기는 그런 면에서 존 카사베츠의 'Husbands(1970)'와는 다른 진정성을 보여준다.      


*사진 출처: mubi.com


**사진 출처: reelgoo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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