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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의 영화 리뷰: Husbands(1970), 'Melancholia(2011)', National Gallery(2014)

 

1. 난파선 같은 영화, Husbands(1970)

  '우연과 상상(Wheel of Fortune and Fantasy, 2021)'의 하마구치 류스케의 인터뷰를 읽다가 그가 좋다고 생각하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존 카사베츠의 'Husbands(1970)'였다. 사실 그 영화는 전에 보려고 하다가 그다지 평이 좋지 않아서 미뤄둔 영화였다. 도대체 영화의 어떤 점을 하마구치 류스케는 좋게 평가한 것일까 궁금해졌다. 그렇게 해서 본 'Husbands'는 정말이지 영화 보기의 '극한 체험'이 무엇인지를 실감하게 해주었다.

  거스(존 카사베츠 분), 해리(벤 가자라 분), 아치(피터 포크 분)는 절친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장례식에 모인다. 뉴욕 교외에 살고 있으며, 전문직에 종사하는 부유한 중년의 세 남자는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들의 현재를 돌아본다. 술집에서의 폭음, 길거리의 치기어린 달리기 경주, 그리고 체육관의 농구 연습. 그렇게 같이 시간을 보내던 그들은 즉흥적으로 런던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여자들과 짧은 유흥을 즐긴다. 거스와 아치는 뉴욕으로 돌아오지만 해리는 런던에 남는다.  

  러닝 타임 2시간 22분 동안 이 영화는 끊임없이 관객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장례식이 끝난 후, 세 친구는 술집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신다. 그들은 술자리에 있던 중년 여인을 집요하게 희롱하고 모욕을 준다. 엄청나게 퍼마신 이들은 화장실에서 구토를 하고 거기에서 지리한 대화를 나눈다. 그 화장실 장면이 무려 20여분에 달한다. 도대체 이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중년 남자의 공허한 내면과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파괴적인 몸부림에 대한 묘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 당시 폴린 카엘과 같은 당대의 평론가에게 혹평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카사베츠는 관객들을 중년 남자의 내면에 자리한 지하 하수구로 질질 끌고 간다. 그것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영화를 익스트림 스포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미덕을 찾는 일은 나에게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정말이지 끔찍한 재난과도 같은 영화였다. 이 영화를 보고 무려 이틀 동안 난파선의 승객이 된 듯한 비참한 기분을 느꼈다. 


2. 요란한 빈 수레, 'Melancholia(2011)'
  2011년을 휩쓸었던 영화, 아마도 라스 폰 트리에의 전성기를 마감하는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해 칸 영화제에서 폭탄 같은 발언(나는 히틀러를 이해하고 동정한다)으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던 이 감독은 허세 쩌는 예술 영화의 끝판을 보여준다. 나에게 이 감독은 도그마 선언(Dogma 95)으로 질기게 우려먹은, 그로 인해 지나치게 고평가된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 지긋지긋한 핸드 헬드는 영화 내내 울렁증을 일으킨다.

  영화는 지구에 충돌하는 행성 멜랑콜리아를 두고 저스틴과 클레어 자매에게 일어나는 일을 담는다. 1부는 저스틴의 시점에서, 2부는 클레어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딥 임팩트(Deep Impact, 1998)'의 고상한 유럽 예술 영화 버전처럼 보이는 이 영화는 포장만 그럴 듯하다. 서양미술사의 주요한 회화 작품을 명백하게 차용한 장면들(영화 포스터에 쓰인 John Everett Millais의 그림 '오필리아'를 비롯해) 별 의미도 없는 알레고리, 영화 전편을 흐르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음악이 비장함을 더할 뿐이다.

  언니 클레어가 사는 고풍스러운 성채에서의 결혼식, 저스틴은 인생의 정점에 서있다. 잘 생기고 애정 넘치는 멋진 남편이 옆에 서 있고, 결혼식장의 상사는 저스틴의 승진을 선언한다. 그러나 저스틴의 내면을 채우는 알 수 없는 우울감은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든다. 결혼은 무효가 되며, 직장에서는 잘리고, 자신은 심각한 우울증 상태에 빠진다. 1부에서 흥미있는 장면은 감정이 급변한 저스틴이 서재의 서가에 진열된 화첩들을 바꾸어 놓는 부분이다. 20세기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말레비치(Kazimir Malevich)의 그림은 16세기 풍속화의 대가 브뤼겔(Pieter Bruegel the Elder)의 그림으로 바뀐다.

  라스 폰 트리에는 행성의 충돌로 결국 절멸될 지구의 운명은 고도화된 문명과 인간의 탐욕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1부에서 저스틴의 모든 것이 망가지고 무너진다. 화첩의 20세기는 16세기로 되돌아갔다. 그러더니 2부에서는 나무로 얼기설기 세운 티피(tepee,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원뿔형 천막)가 등장한다. 그것은 저스틴이 임박한 종말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다. 지구 최후의 날, 저스틴은 클레어에게 테라스에서 와인을 마시거나,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듣는 것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2부의 처음에 우울증으로 거의 죽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저스틴은 원시성에 근접하면서 활기를 되찾는다. 잼을 손으로 퍼먹고, 나체로 한밤중에 달빛 아래 풀밭에 누워 있기도 한다. 영화는 오늘날의 사람들 내면을 병들게 하는 것이 현대성(modernity)이라고 부르짖는 것 같다. 겉만 번지르르한, 요란한 빈 수레 같은 이 영화는 모호함을 예술성으로 포장한다.


3. 거장의 지루한 설교, National Gallery(2014)

  다큐멘터리의 거장 프레데릭 와이즈먼의 2014년작 다큐 'National Gallery(2014)'는 러닝 타임이 무려 3시간에 달한다. 다큐는 미술사의 보고인 런던 내셔널 갤러리를 속속들이 들여다 본다. 와이즈먼은 관객들을 박물관 이곳저곳으로 안내한다. 그림이 걸려있는 전시실부터 관람객들은 볼 수 없는 직원들의 사무실과 복원 작업실, 다양한 강좌가 이루어지는 세미나실의 풍경이 펼쳐진다. 이 다큐에서 가장 말을 많이 하는 이들은 박물관 사람들이다. 직원들은 어떻게 하면 많은 관객들을 오게 할 수 있는지 박물관의 상업성에 대해 고민하며, 예산 삭감에 따른 대책을 지루하게 토론한다. 도슨트들의 유창한 설명에 관람객들은 압도당해 그저 조용히 들을 뿐이다. 전시실 내부를 청소하는 청소부들, 인테리어 작업을 하는 인부들은 비춰지기만 할 뿐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와이즈먼은 거대한 박물관이 어떻게 기능하고 작동하는지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 것처럼 보인다. 일반 관객들이 비오는 날 긴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장면이 있는 반면, 박물관 측에서 특별히 초청한 귀빈들은 비싼 음식과 술이 대접되는 전시실에서 박물관장의 설명을 듣는다. 그림의 복원 작업은 다양한 학계 인사들의 의견을 취합해서 신중하게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시각 장애인들의 그림 감상을 돕는 수업과 일반인 대상의 크로키 수업도 있다. 그린피스 운동가들이 기습적으로 박물관 외벽에 시위 걸개를 내거는 장면도 포착된다.

  '내셔널 갤러리'는 과거의 약탈과 착취의 그림자를 가진 박물관이 어떻게 현대 사회에서 생존을 모색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공공의 이익과 학술적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그곳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한다. 그럼에도 그 공간에는 계층적 위화감이 내재되어 있으며, 자본과 상업성의 압박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노대가는 느리고 진중한 호흡으로 자신의 탐험 경로를 철저히 복기한다. 친절한 내레이션도 듣기 좋은 음악도 없지만, 이 다큐는 우직한 진정성으로 관객을 붙잡는다. 그러나 거장의 스타일은 지루하고 구식이다. 그나마 3시간을 견딜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다큐에 등장하는 서양 미술사의 걸작들이다. 렘브란트, 루벤스, 홀바인, 카라바지오, 베르메르, 고야, 고흐... 다큐에 촘촘히 박힌 위대한 화가들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거장의 긴 설교는 충분히 견딜 만한 것이 된다.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사진 출처: filmquarterly.org


***사진 출처: amanecemetropoli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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