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Ken Burns의 PBS Jazz 미니 시리즈(2001) 1, 2, 5, 6편

  

  몇 년 동안 시사 주간 잡지를 구독한 적이 있었다. 그 잡지들을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영화는 중간부터 보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잡지는 그것이 가능하다. 이런 미니시리즈도 뭔가 처음부터 보는 것이 답답해서 전번에 3, 4편을 먼저 봤다. 그리고 이번에 1편과 2편, 5편과 6편을 몰아서 봤다. 각각의 제목은 이렇다. 1편 'Gumbo(To 1917)', 2편 The Gift(1917-1924) , 5편 Swing: Pure Pleasure(1935-1937), 6편 Swing: The Velocity of Celebration(1937-1939). 1편과 2편은 재즈의 기원과 초창기의 이야기, 5편과 6편은 스윙의 시대를 다루고 있다.

  뉴올리언스(New Orleans), 재즈의 시작과 그 전설적인 도시를 떼어서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1870년대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흑인 노예들이 향유하던 음악이 있었다. 이른바 '슬레이브 뮤직(Slave Music)'. 그 음악은 재즈의 기원을 이루는 하나의 물줄기이다. 거기에 여러 다른 물줄기들이 합쳐진다. 캐리비안 출신의 크리올(Creole)들의 음악, 흑인 영가, 노동요가 섞인다. 1편의 제목 'Gumbo'는 미국 남부 지방에서 먹는 온갖 종류의 식재료를 넣은 잡탕 수프를 의미한다. 그것처럼 재즈는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섞인 곳에서 시작되었다. 재즈 초창기에 크리올 음악가들의 역할은 매우 컸다. 크리올은 흑백 혼혈로 옅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고, 꽤 높은 생활 수준에 좋은 교육을 받았다. 흑인들 보다는 우월하다고 느꼈던 그들의 정체성은 남북 전쟁(Civil War)을 거치면서 변화가 생긴다. 백인들에게 크리올들은 흑인과 같은 열등한 이들이었다. 그렇게 크리올 음악가들이 재즈 음악계에 편입되면서 재즈는 원시적이고 단순한 가락에서 음악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재즈는 시간이 갈수록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다양한 재즈 밴드들이 쏟아져 나온다. 마치 재즈 밴드의 춘추전국시대처럼 다양한 밴드들이 활동하게 되는데, 그것은 재즈가 하나의 거대한 음악 산업으로써 자리잡았음을 의미한다. 밴드들은 레코드 녹음을 비롯해 미국 전역을 순회 공연하며 돈을 끌어모았다. 물론 밴드를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거기에는 사업적인 감각이 필요했는데, 그걸 제대로 해내는 음악가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백인 재즈 악단을 이끌었던 클라리넷티스트 베니 굿맨(Benny Goodman)과 뛰어난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의 밴드는 양대 산맥처럼 자리했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시대의 재즈 언어, 스윙을 만들고 이끌어 간다.

  인종(Race) 문제는 재즈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커다란 주제를 형성한다. 재건 시대를 거치면서 흑인들에게 주어졌던 자유와 권리는 서서히 박탈되고, 1896년에는 흑백 분리가 법제화되었다. KKK단의 창설을 시작으로 흑인에 대한 린치가 공공연하게 자행된다. 그 시기를 거치면서 재즈 뮤지션들은 흑백 차별이 심한 남부에서 벗어나 시카고와 뉴욕으로 진출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이 부분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빌리 할러데이(Billie Holiday)가 부른 'Strange Fruit'이다. 린치로 죽은 흑인의 시체를 나무에 달려있는 '이상한 열매'로 비유한 이 노래는 재즈로 외친 강한 정치적 목소리였다. 그 시절, 흑인 뮤지션들은 백인 뮤지션들과 같이 공연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베니 굿맨은 뛰어난 흑인 뮤지션들과 같이 공연하기도 했지만, 그런 그의 의지는 외부의 시선과 압력에 의해 좌절되었다. 대중은 흑인과 백인이 같은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흑인 뮤지션들이 백인들 보다 적은 출연료와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한 시대였다.

  그런 시대의 어려움 속에서 재즈는 위대한 천재 뮤지션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을 영접한다. 2편 'Gift'는 이 순전한 재능의 대스타를 다룬다. 1901년에 태어난 암스트롱의 어린 시절은 가난과 불행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온갖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세계를 보고 듣고 자랐던 거친 꼬마는 자신의 생애 전체를 재즈의 언어를 만들어 나가는 데에 바친다. 그의 삶이 재즈의 역사 그 자체가 되었다. 젊은 시절, 마피아 매니저에 혹사당하기도 했던 암스트롱은 유능한 새 매니저 조 글레이저를 맞이하며 연주와 음반 제작을 순조롭게 이어간다. 다큐에서 트럼펫 연주자 윈튼 마살리스의 인터뷰가 무척 돋보이는데, 그는 암스트롱에 온갖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마살리스는 입담도 좋을 뿐 아니라, 트럼펫으로 연주도 직접 보여줌으로써 다큐를 보는 재미를 더한다.

  강렬한 비트와 춤에 적합한 재즈 음악, 스윙 시대를 이끌었던 대표적 밴드 리더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는 스윙의 심장처럼 자리하고 있다. 부드럽고 편안하며 듣기 좋은 재즈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카운트 베이시는 완벽하게 구현해낸다. 내가 재즈를 처음 접하게 된 것도 카운트 베이시 악단의 연주였다. 일반인들이 재즈 음악에 바라는 모든 것을 담아낸 그는 스윙 재즈의 중심에 자리한다. 그리고 이 시대의 빛나는 여성 가수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를 빼놓을 수 없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딛고 재즈 가수가 된 엘라 피츠제럴드는 유명한 칙 웹(Chick Webb)의 악단에서 자신의 음악 경력을 쌓아간다. 밴드 리더 칙 웹은 피츠제럴드의 재능을 무척 아꼈는데, 그는 안타깝게도 34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엘라를 잘 보살펴 달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엘라는 보살핌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칙 웹 밴드는 곧 엘라 피츠제럴드 밴드가 되었고, 그 인기는 갈수록 커져갔다.

  클래식 음악팬들에게 잘 알려진 조지 거슈인도 잠깐 등장한다. 그의 '랩소디 인 블루(Rhapsody in Blue)'는 재즈와 클래식의 절묘한 조화로 여겨진다. 이렇게 다양한 뮤지션들이 재즈의 언어를 계속해서 변용해가는 가운데 재즈의 역사는 더욱 풍성해지며 그 영역을 확장해 간다. 물론 재즈 음악의 진화는 시대와 맞물려 있었다. 이제 어두운 시절이 다가온다. 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려는 시점이었다. 풍요와 번영의 시기를 함께 했던 스윙의 열풍은 사그라든다. 충격과 혼돈의 시대를 재즈는 어떻게 지나갈 것인가? 다큐는 아직도 4편이나 더 남아있다.     


*사진 출처: pbs.org 가수 빌리 할러데이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적룡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영화, 천애명월도(天涯明月刀, The Magic Blade, 1976)

    영화의 제목이 독특하다. '천애명월도'라는 명검을 두고 벌이는 검객들의 혈투인가, 막연한 생각으로 영화를 봤다. 그런 검은 영화 속에 나오지 않는다. 대신에 이 영화를 지배하는 비장의 무기는 공작령(孔雀翎, 공작의 깃모양 무기로 막강한 화력을 지님)이다. '천애명월도(天涯明月刀, 1976)'는 '유성호접검( 流星蝴蝶劍, 1976)'을 만든 초원 감독의 작품이다.     검객 부홍설(적룡 분)은 강호의 일인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고향을 떠나 방랑 중이다. 그는 자신과 적대 관계에 있는 연남비로부터 흑도파의 우두머리 공자우가 공작령을 차지해서 강호제패를 노린다는 말을 듣는다. 공작령을 찾아내기 위한 여정에 함께 하게 된 연남비와 부홍설, 부홍설은 공작령의 주인이자 공작산장의 우두머리 추수청에게 공작령을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 과정에서 추수청이 공자우의 밀정에 의해 죽게 되고, 추수청은 딸 옥정을 부홍설에게 부탁한다. 공자우는 자신의 부하 검객들을 보내 부홍설을 죽이고 공작령을 빼앗으려 한다. 그 와중에 연남비의 생사도 알 수 없게 되고, 추옥정은 납치된다. 부홍설은 공작령을 지키고, 옥정을 구해낼 수 있을까...   이 영화의 원작은 무협 소설 작가 고룡의 동명 소설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전작이 있다. 말하자면 시리즈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변성랑자(邊城浪子)'가 그것으로 '부홍설'이라는 인물의 인생을 담고 있다. 그러나 영화 '천애명월도'는 부홍설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주지 않고 바로 연남비와의 대결에서부터 시작한다. 초원 감독은 캐릭터에 대한 묘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 같다. 영화는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대결로 꽉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공자우의 본거지에 부홍설이 들어가기까지 너무나 많은 자객들이 나오고, 대결이 이어진다. 말하자면 볼거리 위주의, 철저히 흥행을 노린 감독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관객들 시각에서 ...

자작시: 다래끼

  다래끼 무지근한 통증은 너와 함께 온다 나는 네가 절대로 그립지 않다 너 없이도 잘살고 있다 하지만 너의 부드러운 눈길을 기억한다 아주 약한 안약에서부터 센 안약까지 차례대로 넣어본다 나는 너를 막아야 한다 나은 것 같다가 다시 아프고 가렵다 나는 조금씩 끈기를 잃어가고 있다 너는 물기를 머금은 염화칼슘처럼 끈덕지게 내 눈가를 파고들며 묻는다 이길 수 있니? 곪아서 터지게 내버려둘 자신이 없으므로 열심히 눈을 닦아주며 온기를 불어넣는다 그대로 그렇게 잠들어 줄 수 있다면 그래, 우리는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어

자작시: 하이엔드(high-end)

  하이엔드(high-end) 싸구려는 항상 냄새가 나 짜고 눅진한 부패의 냄새 썩은 감자의 냄새는 오천 원짜리 티셔츠의 촉감과 비슷해 등고선(等高線) 읽는 법을 알아? 만약 모른다면 안내자를 찾는 것이 좋아 안내자의 등에 업혀 이곳에 올 수도 있지 더러운 수작, 아니 괜찮은 편법 차별하고, 배제하고, 경멸을 내쉬어 우리가 서 있는 곳 우리가 가진 것 우리들만의 공론장(公論場) 즐겁고 지루한 유희 불현듯 당신들의 밤은 오고 부러진 선인장의 살점을 씹으며 낙타가 소금 바늘귀를 천천히 바수어내는 하이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