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간에 대한 심리적 탐구, Home(2008)
완공되지 않은 고속도로의 끝에 집 한 채가 보인다. 그들은 그곳에서 10년을 살았다. 부부는 세 명의 아이들과 허허벌판을
정원으로 삼고 안온한 삶을 이어가던 터였다. 그런데 어느 날, 도로 공사가 재개된다. 하루에도 수만 대의 차량이 지나가면서 소음과
분진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이전의 평온한 삶은 박살이 난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지나가는 차량들 때문에 길을 건너려면 한참을
걸어가 냄새나는 하수구를 기어가야만 한다. 과연 이 가족은 고속 도로변 'home'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우르술라
마이어(Ursula Meier) 감독의 2008년작 'Home'은 집이라는 공간이 갖는 심리적 의미에 대해 탐구한다.
마르트(이자벨 위페르 분)에게 집은 가족의 완벽한 보금자리였다. 도로가 끝나는 곳에는 막내 아들의 미니 풀장과 큰딸의 선탠용
의자가 있다. 마르트는 다양한 식재료로 쓸 채소도 직접 가꾼다. 저녁에는 끊어진 도로 위에서 가족의 하키 시합이 열린다. 이제
성인이 된 큰딸 주디스가 매사에 엄마를 무시하는 행동을 보이기는 하지만 이 가족은 사랑으로 뭉쳐있다. 착실한 남편 미셸, 영민한
둘째 딸 마리온, 개구쟁이 막내 줄리앙,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까지 마르트에게 고속도로 끝의 집은 평화와 행복을 선사한다. 10년
동안 멈춰졌던 도로 공사가 재개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영화는 그들이 어쩌다 끊어진 고속도로 옆에 집을 짓고 살게
되었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그것이 '돈' 때문이라는 사실은 고속도로가 완공되고나서도 그들이 집을 떠나지 못한다는
사실로 입증된다. 엄청난 소음과 진동을 견뎌낼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귀마개는 무용지물이며, 지나가는 차량 운전자들이 집안을
들여다보는 통에 가족에게는 사생활도 없어진다. 가족들의 심신은 시간이 갈수록 피폐해진다. 그러나 'The
Shining(1980)'의 폐쇄된 호텔에서 지내다 미쳐버린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려고 따라다니는 비극에 이르지는 않는다. 그러기
전에 가장 미셸은 무작정 짐 싸서 떠나자고 하지만, 마르트는 한사코 머물겠다며 버틴다. 그곳만이 자신의 '집'이며, 다시 새로운
곳에서 처음부터 시작할 수는 없다면서...
시멘트 벽돌로 집을 철갑처럼 두르는 이 가족의 재건축기를 보며 관객은
가족이 처한 경제적 압박의 실체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고속도로에서 정체된 바캉스 차량의 사람들에게 집에서 휴가를 보내는 이
가족은 구경거리가 된다. 그들은 더이상 '집'이 될 수 없는 그곳에서 떠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통풍을 위한 최소한의 틈마저도
봉인한 그 감옥같은 곳에서 남아 있는 것을 택한다. 가족과의 유대감이 적었고, 그 집을 부끄럽게 생각했던 큰 딸 주디스는 진작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우르술라 마이어는 '집'이라는 공간이 사람의 내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세밀하게
그려낸다. 잘 짜여진 내러티브에는 한 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다.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이 여성감독은 세트와 배우들을
완벽하게 통제한다.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의 이사는 경제적 자유를 가졌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은 하층민들에게 집은 족쇄같은
고통과 불안의 근원이 된다. 이 영화의 어디에서도 자본주의와 계급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은 없지만, 관객들은 'Home'의 가족에게
닥친 불행의 이면에 그것이 명백하게 자리하고 있음을 본다. 시멘트 벽돌로 세상과 단절된 그곳은 더이상 집이 아니다.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자 집은 쓰레기장처럼 변하고, 가장 미셸은 아이들에게 수면제를 먹고 자게 한다. 어떻게든 살고자 했던 '집'이
'무덤'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이 영화는 이자벨 위페르를 비롯해 배우들 사이의 연기 앙상블이 매우 뛰어나다.
그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이는 막내 줄리앙 역의 케이시 모테트 클라인이다. 'Home'을 찍을 당시에 8살이었던 이 아역 배우의
직관적인 연기는 천부적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감독 우르술라 마이어는 이 꼬마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고, 배우로서 가진
역량을 더 끌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클라인을 위해 쓴 시나리오를 가지고 'Sister(2012)'를 만들게
된다(cineuropa.org와의 인터뷰 참조).
2부에서 계속...
*사진 출처: filmaffini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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