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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생존자 마그리트의 목소리, The Last Duel(2021)

 

  "아무도 그 사건의 진실을 알지 못했다."
  (No one really knew the truth of the matter.)
  Jean Le Coq, Parisian lawyer, 14세기


  미국의 중세 문학 연구자인 Eric Jager는 14세기 프랑스의 연대기 작가인 Jean Froissart의 책에 매혹되었다. 1386년, 프랑스 파리에서 있었던 중세 시대의 마지막 결투를 기록한 책이었다. 에릭 재거는 연대기 작가가 펼쳐놓은 이야기를 따라 자신만의 학구적 여정을 시작했다. 무려 10년에 걸쳐 그는 두 명의 남자와 한 여자,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시대에 대해 탐구했다. 그런 후에 낸 책이 'The Last Duel: A True Story of Crime, Scandal, and Trial by Combat in Medieval France(2004)'였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마지막 결투: 중세 프랑스에서 있었던 범죄와 스캔들, 그로 인한 싸움이 촉발한 재판의 실제 이야기'가 되겠다. 팔순을 넘긴 리들리 스콧 감독은 그 책을 영화로 만들었다. 영화 'The Last Duel(2021)'은 연대기적 구성에 의해 기술된 책과는 다른 방식을 취했다. 결투 사건의 중요한 세 인물, 장 드 카루주, 자크 르 그리, 마그리트의 시점에서 사건이 각각 펼쳐진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羅生門, Rashomon, 1950)'을 떠올리게 된다.

  'The Last Duel'의 뼈대를 이루는 사건은 이러하다. 14세기 프랑스, 장 드 카루주와 자크 르 그리는 피에르 백작을 주군으로 섬기는 가신들이다. 둘은 친한 친구 사이였으나 주군의 총애가 르 그리에게 치우치면서 멀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카루주는 아내 마그리트로부터 르 그리에게 강간당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분노한 카루주는 행동에 나선다. 당시 봉건제 치하에서 지역 사법 재판의 관할권은 영주에게 있었다. 르 그리를 총애하는 피에르 백작은 카루주가 제기한 소송을 가볍게 기각한다.

  생의 대부분을 전장에서 보낸 50대 전사는 그대로 물러앉지 않았다. 파리로 가서 국왕을 알현하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결정적 증거의 유무였다. 국왕의 명에 따라 열린 재판에서 마그리트는 분명하고 일관되게 자신이 입은 피해를 증언했다. 그에 대해 자크 르 그리는 알리바이를 대며 그 모든 것은 자신을 시기한 카루주와 그 아내의 모함이라고 맞섰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책의 저자 에릭 재거는 마그리트에 대한 신뢰가 책을 쓰게 쓰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리들리 스콧 감독도 마그리트의 증언에 마음이 기운듯 하다. 영화 속 마그리트의 이야기에 해당하는 세 번째 장에 'The Truth'라는 소제목을 붙인 것을 보면 그렇다.

  카루주가 보기에 자크 르 그리는 주군에게 아첨하는 소인배이며, 아내 마그리트를 강간한 천인공로할 범죄자이다. 자크 르 그리의 입장에서는 카루주와의 애정없는 결혼 생활에 지친 마그리트와 사랑에 빠져 합의된 관계를 맺은 것 뿐이다. 르 그리의 속마음을 그려낸 영화의 그 부분은 에릭 재거의 책과는 다르게 각색되었다. 재거의 책은 장 프와사르가 기록한 연대기를 바탕으로 하는데, 거기에는 르 그리의 변호인이었던 Jean Le Coq의 상세한 기록이 나와있다. 르 그리는 일관되게 자신의 범죄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므로 르 콕은 자신의 의뢰인을 의심하면서도 확신은 하지 못했다. '아무도 그 사건의 진실을 알지 못했다'고 쓴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한 명은 아내가 당한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한 명은 그것이 강간이 아닌 사랑이라고 주장하고, 사건의 당사자인 여성은 명백한 강간이라고 말한다. 영화 'The Last Duel'은 관객들로 하여금 안개 속에 있는 진실의 실체를 탐색하도록 만든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분할된 이야기 구성이 그다지 효용성이 없다는 데에 있다. 리들리 스콧은 그것이 뭔가 대단하고 의미있는 시도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을 처음으로 해본 이는 선구자('라쇼몽'의 구로사와 아키라)가 되지만, 그걸 그대로 따라하면 어설픈 짝퉁이 된다. 스콧의 영화에는 먼저 시도한 이와의 독창적인 차별점이 없다.

  영화 'The Last Duel'은 맥아리 없이 변주되는 이야기와 그저그런 볼거리로 채워진 기사 무용담이 뒤섞여 있다. 이 무너져 내리는 서사의 문제점은 어디에서부터 기인하는 것일까?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찾는다면 시나리오이다. 벤 애플렉과 맷 데이먼은 남자의 관점에서 두 챕터의 시나리오를 썼고, 여성 시나리오 작가인 Nicole Holofcener는 마그리트 부분을 담당했다. 일부러 사건을 더 모호하게 만들기 위해 책에는 없는 부분이 덧대어 지면서 영화는 산으로 간다. 예를 들면 르 그리와 마그리트가 연회장에서 대화를 나눈 장면, 르 그리가 시장에서 마그리트를 우연히 보게 되는 장면, 마그리트가 가슴이 깊게 파인 드레스 때문에 남편에게 질책을 당하는 장면, 마그리트가 르 그리를 미남이라고 말했다는 마그리트 친구의 증언 같은 것들. 실제 연대기의 기록에는 마그리트와 르 그리는 공식적으로 단 한 번 만났을 뿐이며, 영화 속 마그리트의 친구가 한 증언 같은 것은 없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사건의 정확한 기록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원작인 에릭 재거의 책을 찾아 보았다. Random House의 영문본은 약 83페이지 분량이다(이 책은 번역본이 작년에 출간되었다). 의외로 글이 술술 읽히고 흡인력이 있다. 책은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면면과 시대 상황을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영화에서 맷 데이먼이 연기한 기사 장 드 카루주는 그야말로 치열한 전장에서 구른 백전노장이다. 그는 매우 거칠고 직설적인 인물이었다. 아내의 지참금으로 받을 몫이었던 땅 '오누 르 포콩(Aunou-le-Faucon)'을 두고 주군 피에르 백작과 벌인 소송전은 그 단적인 예이다.

  그의 장인 Thibouville은 왕위 계승권자들의 다툼에서 샤를 5세의 반대편에 섰던 이였다. '배신자'라는 오명이 있는 그의 딸 마그리트를 카루주가 아내가 맞아들인 이유는 명확했다. 지참금으로 받을 재산이었다. 오누 르 포콩은 아내 몫으로 남겨졌지만, 피에르 백작은 그것을 탐냈다. 백작은 정당하게 값을 치루고 땅을 구입했다. 그리고 그것을 르 그리에게 선물로 주었다. 카루주의 르 그리에 대한 원한은 아마 거기에서부터였을 것이다. 사실 이전까지만 해도 카루주의 첫 부인에게 얻은 아들의 대부가 르 그리였을 정도로 두 사람은 친밀했다. 이후 첫 부인과 아이들이 불운하게 세상을 뜨면서 카루주는 심리적 타격을 받았다.

  티부빌의 딸 마그리트는 젊고 아름다웠으며, 무엇보다 카루주에게 땅과 돈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 그런데 아내의 지참금이 될 노른자위 땅이 백작에게 넘어가자 카루주는 주군을 상대로 소송을 벌였다. 결과는 패소였다. 봉건제 사회에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주군에게 반기를 드는 가신의 행태는 비우호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카루주는 땅을 억울하게 빼앗겼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더해 집안 대대로 내려온 벨렘 성의 대장직이 르 그리에게 넘어갔다. 피에르 백작은 카루주의 아버지가 죽은 후 그 직위를 카루주에게 주지 않았다. '기사'였던 자신보다 낮은 지위에 있었던 르 그리는 주군의 총애를 바탕으로 차츰 영향력을 키워갔다. 그런 상황에서 아내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카루주를 격노하게 만들었다.

  르 그리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자신과 적대적 관계에 있었던 카루주의 아내를 범했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에서처럼 그는 죽음의 순간까지도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카루주는 불 같은 성미의 사람이었고, 르 그리에 대한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그대로 표출했을 것이다. 아마도 르 그리는 카루주에게 모멸감을 안겨주기 위해 마그리트에 대한 범죄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영화 속 르 그리는 마그리트에게 그 일을 발설하면 남편이 당신을 죽일 거라며 협박한다. 마그리트도 자신의 남편이 거친 성품의 사람임을 알았다. 하지만 여자는 결코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었다. 우리의 눈에 무지막지하게 보이는 중세 시대에도 강간은 중범죄였다. 그것을 고발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여성들은 한정되어 있었고, 마그리트는 그럴만한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소송을 하는 일은 평생을 따라다닐 낙인, 가문의 명예, 태어날 아기(마그리트는 그 사건 이후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의 미래, 그리고 부부의 목숨을 담보로 했다. 영화의 마지막 결투 장면에서 마그리트는 족쇄에 묶여 남편과 르 그리의 결투를 본다. 그 싸움에서 남편이 지면 마그리트는 무고죄로 화형을 당할 운명이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결투는 신의 뜻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였다. 그것이 즉각적으로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사법부는 함부로 결투를 결정할 수 없었다. 사건의 진상을 두고 양측의 진술이 엇갈리는 가운데 카루주는 최후의 수단으로 결투를 제청했다. 그즈음, 샤를 5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17살의 샤를 6세는 영국을 상대로 원정길에 나섰다. 사법부는 왕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하루빨리 재판을 마무리짓고 싶어했다. 결국 카루주의 청이 받아들여졌고, 그것은 중세 시대의 마지막 결투가 되었다(물론 그 이후에도 결투는 있었지만 공식적인 재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지방 영주의 관할 지역에서 일어났다).

  영화는 연대기의 기록을 충실히 재현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시 기사들의 투구가 얼굴 전면을 감싸도록(부상의 위험을 생각하면 당연하다)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영화는 얼굴 반면이 노출되도록 찍었다. 주연 배우들의 얼굴이 드러나야 박진감이 넘치기 때문이다. 결투에서 누가 승자가 될지 가늠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카루주가 르 그리에 비해 전장터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지만, 기록은 르 그리가 카루주에 비해 더 큰 체격 조건을 가졌다고 되어있다. 결국 승리의 여신은 카루주에게 미소를 지었다. 결투를 보기 위해 프랑스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심지어 샤를 6세는 원정을 포기하고 파리로 돌아왔다. 왕은 어린 왕세자를 병으로 잃은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다.

  영화에 나오지 않은 르 그리의 최후는 이러하다. 흙바닥에 널부러진 르 그리의 시신은 말에 끌려가 'Montfaucon'의 교수대에 내걸려졌다. 몽포콩은 교수형된 시신이 내걸리는 곳이었다. 르 그리의 패배는 그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신의 처벌로 받아들여졌다. 결투에서 승리한 카루주는 왕의 신임을 받고 왕실의 주요 일원이 된다. 이 불굴의 용사는 다시 한 번 주군 피에르 백작을 상대로 오누 르 포콩 땅에 대한 소송을 제기한다. 소송은 패배했다. 어떤 면에서 그가 가문의 명예와 목숨을 내걸고 결투까지 하게 된 것은 아내 마그리트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면보다는, 자신의 것(그 시대에 아내는 남성의 재산, 소유물로 간주되었다)을 건드린 데에 대한 보복의 집념이 더 커보인다.

  이후 이 사건은 여러 세대에 걸쳐 다르게 읽히고 변조되었다. 후대의 호사가들과 문인들에게 르 그리는 무고한 희생자로 여겨졌다. 카루주와 르 그리의 '마지막 결투'는 중세 시대의 무지와 악습을 부각시키는 대표적인 사건이 되었다. 마그리트는 남편을 부추겨 죄없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게 만든 '간악한 여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다. 프랑스의 계몽주의자 디드로와 달랑베르가 편집한 '백과사전(Diderot and d'Alembert's Encyclopedie, 1707)'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것은 그대로 이어져 1992년에 중세  연구자 R. C. Famiglietti도 자신의 저서에서 마그리트를 간교한 베갯머리송사의 주인공으로 묘사했다. 에릭 재거의 책은 그와는 반대되는 지점에서 마그리트의 입장을 옹호한다.

  영화 'The Last Duel'은 흥행에서 참패했다. 이를 두고 리들리 스콧은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사는 요즘 애들(the box office failure is the fault of young people and their cellphones, he says: 출처 variety.com) 때문'이라고 탓했다.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노감독의 경멸이 느껴지는 대목이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다 떠나 그는 영화를 잘 만들지 못했다. '왜 내가 좋은 영화 만들었는데 알아주지 않는 거냐'고 볼멘 소리를 해도 별로 공감이 되지 않는다. 정말이지 원작이 된 책이 훨씬 재미있게 읽힌다면야 말 다한 거 아닌가.

  그럼에도 영화 'The Last Duel'은 잊혀져 있었던 중세 시대 여성 마그리트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마그리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편의 변호인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우리는 다시 르 그리의 변호인 르 콕에게로 돌아간다. 그는 '아무도 그 사건의 진실을 알지 못했다'고 썼다. 하지만 그가 세세하게 남긴 기록에서 후대의 사람들은 한 여인의 용기있는 외침과 불의에 저항하는 의지를 읽는다. 이 여자를 둘러싼 상황은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배신자의 딸이라는 불리한 오명, 가문과 남편을 위기에 몰아넣었다는 비난, 태어날 아이가 평생 지고갈 삶의 무게,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마그리트는 침묵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여자는 '피해자(victim)'가 아닌 '생존자(survivor)'가 되었다. 그것은 기나긴 고통의 여정이었다. 영화를 보는 이들은 마그리트가 들려주는 진실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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