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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잃어간다는 것, 塔洛(Tharlo, 2015)

 

  "이 넓은 천지 사방에, 내 짝은 어디있는가

  님이여, 나의 사랑이 되어주시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양치기로 산에서만 살아온 타를로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전통 가요를 듣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외로운 이가 간절히 연인을 찾으며 부르는 노래. 그는 누가 자신의 이름을 지어주었는지도, 또 자신의 나이가 몇 살인지도 모른다. 아는 것이라고는 오직 자신이 돌보는 양떼들에 관한 것이 전부다. 양들의 색깔부터 시작해서 새끼 양은 몇 마리인지, 새끼를 가진 암양은 얼마나 되는지 타를로는 그 모두를 머릿속에 담아두고 산다.

  티베트 출신의 감독 페마 체덴의 2015년작 '塔洛(Tharlo)'는 순박한 양치기 타를로에게 닥친 비극을 담아낸다. 어느 날 그는 경찰서장에게서 신분증을 만들라는 권유를 받고, 신분증에 필요한 사진을 찍기 위해 읍내의 사진관에 들른다. 사진사는 타를로의 헝클어진 땋은 머리를 보더니, 외모를 좀 단정하게 하고 오라고 이른다. 사진관 건너편에 있는 미용실에 들른 타를로. 젊고 매력적인 미용사 양츠오는 타를로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어 본다. 남자가 자신이 돌보는 양들 가운데 100마리가 자신의 것이라고 말하자 여자의 눈이 반짝거린다. 그리고 이내 타를로는 양츠오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2011년작 'Old Dog'의 마지막 부분에서 티베트 사람들에게 닥친 비관적 미래를 명징하게 보여주었던 페마 체덴은 'Tharlo'에서 그 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의 나이도 모르고 신분증 없이도 양치기로 잘 살아왔던 타를로는 신분증 사진 한 장을 찍으려다 예기치 않은 비극 속으로 발을 디딘다.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읍내 미용실에서 어떻게든 대도시로 떠날 궁리만 하는 여자에게 타를로는 쉬운 먹잇감이나 다름없다. 순박한 타를로에게 양떼를 팔아 베이징이든 어디든 여길 떠나서 같이 살자고 유혹한다. 그때쯤, 관객들은 이 영화의 결말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다. 

  영화 'Tharlo'는 티베트에 불어닥친 개발의 바람과 변화된 모습을 마치 영상 보고서처럼 보여준다. 타를로가 들른 사진관에서는 먼저 온 신혼 부부가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그들 뒤에는 티벳 전통 사찰 사진이 배경막으로 드리워져 있다. 그것을 걷어내고 찍는 다음 사진의 배경막은 베이징의 천안문(마오쩌둥의 사진이 있는)이다. 마지막 배경은 뉴욕이다. 그 부분에 이르면 사진사는 부부에게 전통 의상이 어울리지 않으니 준비된 양복으로 갈아입으라고 말한다. 부부는 그다지 내키지 않지만, 사진사의 요구에 따른다. 마침내 옷을 갈아입고 뉴욕의 배경막 앞에 앉은 부부의 표정은 어색하고 긴장되어 있다. 그때 타를로는 어미 잃은 새끼 양을 작은 가방에 넣어서 데리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새끼 양을 안고 찍어보라고 말한다. 그들은 흔쾌히 그렇게 한다.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양장을 한 신혼 부부는 어린 양에게 젖병을 물리고 있는 사진을 찍는다. 비로소 그들의 표정이 부드러워진다.

  그 사진관 장면에서 페마 체덴은 변화하는 티베트의 모습을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방식으로 재현한다. 그가 보는 티베트는 중국의 영향력 아래 서서히 잠식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티베트인들의 내면은 아직까지 전통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것은 아니다. 신혼 부부가 어린 양을 품에 안았을 때 보여주는 편안한 표정이 그러하다. 그들의 근원은 너른 들판과 산에서 양들과 함께 하는 유목 생활에 있었다. 타를로가 반한 미용사 양츠오도 짧은 머리에 청바지를 입고 있지만, 어린 시절에는 양을 쳤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유목민으로서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타를로는 티베트에서 그렇게 사라져가는 직업을 가졌다. 오직 양떼만 알던 타를로는 양츠오와의 만남을 통해 가라오케와 멘솔 담배의 맛을 알게 된다. 남아있는 마지막 전통과 급작스럽게 조우한 새로운 문물이 가져올 결과가 파국일 것이라는 점을 예측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페마 체덴의 롱테이크 사랑은 이 영화에서도 이어진다. 첫 장면의 롱테이크는 무려 12분이다. 경찰서에서 자신의 암기 실력을 뽐내는 타를로는 1949년에 했던 마오쩌둥의 연설을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암송해 보인다. 그 도입부에 뭔가 좀 뜨악한 기분이 드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티베트인 최초로 북경 전영 학원을 졸업한 영화 감독이라고 하더니, 저렇게 친정부적인 성향의 사람이었나 오해할 수도 있다. 페마 체덴이 'Tharlo'의 첫 장면에서 정확히 무엇을 의도하는 것인지 짐작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어쨌든 그도 중국이 점령하고 있는 티베트 출신 영화인으로서 생존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정치적으로 영합한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다. 그는 2016년에 베이징 공항에서 공안에 체포된 이력이 있는데, 그때의 죄목은 사회불안을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그 사건은 페마 체덴의 영화 작업이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꽤나 껄끄럽게 느껴지고 있음을 입증한다.

  타를로는 양떼를 다 팔아버리고 얻은 돈을 양츠오에게 건넨다. 늘 혼자서 부르던 세레나데를 마침내 들려줄 연인을 찾았다 믿으며 새로운 미래를 꿈꾼다. 그러나 타를로의 기대는 가차없이 배반당한다. 여자는 돈을 가지고 달아나고, 타를로는 낡은 오토바이를 끌고 다시 산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가는 도중에 오토바이가 고장난다. 하는 수 없이 힘겹게 오토바이를 끌고 가다 설산 앞에 멈춰선 타를로는 더이상 자신에게 양떼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제 그에게는 오랫동안 길러온 땋은 머리도 없다. 양츠오가 새출발을 해야한다며 타를로의 머리를 다 밀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민머리의, 고장난 오토바이에 앉아 있는 망연자실한 타를로의 모습은 전통과 정체성을 상실해가는 티베트의 현실을 상징한다. 페마 체덴이 그려낸 티베트의 영상사회학적 보고서인 셈이다. 'Old Dog'에서 암시한 불모의 미래는 그렇게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영화적 은유가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 그리 달가울 리가 없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끊김 없이 술술 마오쩌둥의 연설을 암송했던 타를로는 사건 신고를 하려고 들른 경찰서에서 서장의 요구로 다시 한번 암송을 해보인다. 그러나 그는 더듬거리면서 중간에 멈춘다. 민머리가 된 후에 그는 마치 혼이 나가버린 사람 같다. 내적으로는 중국에 동화되어가고 있고, 외적으로는 서구 문물에 정신없이 물들어가고 있는 티베트의 현실. 페마 체덴은 순박한 양치기 타를로에게 닥친 비극을 통해 티베트의 암담한 미래를 펼쳐놓는다. 그 미래를 상상하는 관객들은 티베트인이 아니더라도 폐부를 찌르는 고통과 마주한다. 자신(身)을 잃어간다는 건 그런 것이다.


*사진 출처: theguard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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