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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뉴 웨이브의 신호탄, Walkabout(1971)

 

호주 영화의 눈부신 전성기, 호주 뉴 웨이브(Australian New Wave) 영화들 1부
 
Walkabout(1971), Nicolas Roeg



  자신이 하는 말을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원주민과 작업한 감독이 있다. Nicolas Roeg. 그의 1971년작 영화 'Walkabout'에는 원주민 David Gulpilil가 나오는데, 촬영 당시 그는 전혀 영어를 하지 못했다. 굴필리는 단순히 몇 장면 나오는 조연이 아니라 주연이었다. 그런데도 영화의 완성도가 괜찮은 것은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의 연기력 모두 좋았기 때문이다. 이 원주민은 이후 배우의 길로 나선다. 다음 편에서 다룰 'The Last Wave(1977)'에서도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영화 'Walkabout'은 여러모로 흥미있는 작품이다. 뢰그는 정해진 시나리오도 없이 대부분의 장면을 즉흥적으로 촬영했다(촬영 감독 출신으로 그는 이 영화를 직접 찍었다). 물론 영화의 원작 소설이 있기는 했다. James Vance Marshall이 1959년에 발표한 소설은 비행기 사고로 사막에 조난당한 남매와 원주민의 만남을 다루었다.

  원작 소설을 기본 뼈대로 뢰그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살로 붙여 나갔다. 영화가 시작되면 낮게 깔리는 기이한 구음
(口音)이 들린다. 교실에서 학생들은 발성 훈련을 하고 있다. 마치 낯선 야생에서 들리는 동물들의 소리처럼 들리는 이러한 사운드는 영화 전체를 통해 계속적으로 반복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관객은 백인 중산층 가족과 만난다. 아버지는 시드니 근교 사막으로 십 대의 딸과 어린 아들을 데리고 소풍을 나간다. 그런데 갑자기 총소리가 들린다. 남자는 자신의 아이들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하고 놀란 딸은 장난인 줄 아는 어린 동생을 데리고 황급히 숨는다. 딸은 아버지가 차에 불을 지른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본다. 이것이 영화 시작 10분 동안 일어난 일이다.

  이후 영화에서 남매의 사막 여행기가 이어질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원작의 비행기 사고는 영화 속에서 아버지의 비극적 죽음으로 대체되었다. 갈증과 더위에 시달리던 남매는 원주민 소년과의 만남으로 겨우 살 길을 찾는다. 뢰그는 이야기 중심의 내러티브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는 문명과 대비되는 날것 그대로의 야생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어했고 그것이 영화 전체의 이미지를 아우른다. 도마뱀을 비롯해 고슴도치, 캥거루, 독수리와 같은 호주 사막의 야생 동물들은 죽음의 이미지와 함께 제시된다. 동물 사체에 들러붙는 파리와 구더기들, 사막에 쌓여있는 동물 뼈들... 아버지의 참혹한 죽음으로 시작된 남매의 여정은 문명에서 야생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정장 구두에 단정한 교복을 입었던 소녀에게 옷은 거추장스러운 것이 된다. 그들은 원주민 소년을 통해 거친 자연에서 생존하는 법을 하나씩 배워나간다.

  니콜라스 뢰그는 그 사막의 여정을 영화적 감각으로 계획하지 않고 찍었다. 'Walkabout'에서는 마치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의 '자동기술법(automatic writing)'에서 볼 수 있는 자유분방함이 느껴진다. 원주민 소년이 창을 들고 캥거루 사냥을 하는 장면은 역동적인 핸드 헬드로 찍었다. 소년이 사냥감을 해체하는 장면은 도시 정육점의 고기 절단 장면과 교차 편집한 몽타주로 제시된다. 뢰그가 그려내는 야생성에는 먹고 마시는 생존에 더해 성적인 본능도 들어간다. 카메라는 관음증적인 시선을 감추지 않는다. 아주 짧은 교복 치마를 입은 소녀(Jenny Agutter 분, 영화에서는 이름이 없다)가 절벽을 오를 때 의도적으로 속옷이 보이는 것을 포착하는 장면이라든가, 계곡에서 나체로 수영을 하는 장면을 꽤 긴 분량으로 찍은 것을 보면 그렇다.

  그러한 성적인 에너지는 곧 이들 사막 여행자들의 여정에 변화를 만들어 낸다. 원주민 소년은 소녀를 향해 자신만의 구애 의식을 하고, 그것은 소녀에게 공포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영화는 원주민 소년이 왜 사막을 배회하게 되었는지, 자신의 부족에게 돌아가지 않는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원작에는 거기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소년은 13살이 되면 성인식을 치루게 되는데, 8개월 동안 홀로 사막을 여행하는 것으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니까 영화 속 사막은 남매와 원주민 소년 모두에게 성장의 통과 의례가 되는 공간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두 문명의 만남은 예기치 못한 파국을 가져온다. 소년의 갑작스런 죽음, 남매는 나무에 축 처진 채 걸려있는 소년의 시신을 발견한다. 원작에서 소년은 남매와 함께 지내다 병에 걸려 죽는 것으로 나온다. 백인들의 질병에 면역력을 갖지 못한 원주민들이 겪는 비극이었다. 'Walkabout'에는 문명/야생의 구도 뿐만 아니라 백인/원주민, 정복자/식민지인의 대립적 구도도 포함되어 있다. 남매는 여행 도중 마을을 지나친다. 그곳에서 원주민들은 백인이 만드는 조악한 석고 기념품 제작하는 일을 돕는다. 백인 남자는 원주민 아이의 몸에 흰색 페인트를 문지른다. 이러한 식민지성에 대한 표현은 영화 곳곳에 널려있다.

  영화에서 백인들은 냉담하고 오만한 사람들로 묘사된다. 백인 여자는 원주민 소년과 남매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나친다. 길을 잃었다며 도움을 청하는 소녀에게 늙은 백인 남자는 집 마당의 어떤 것도 만지지 말라며 내쫓는다. 남매에게 사막에서 물을 구하는 법을 알려주고 사냥한 고기를 나누어 먹은 원주민 소년과는 다르다. 그 백인들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소녀는 다시 구두를 신고, 교복을 입는다.

  영화의 마지막, 귀가한 남편을 맞이하는 한 여자가 보인다. 여자는 남편과 이야기 하다 말고 어떤 생각에 빠진다. 사막에서의 기억이다. 낯선 자유로움을 만끽했던 야생의 기억은 살아있었다. 그 장면은 소녀의 내면에 각인된 야생성과 자연에 대한 감각이 일종의 향수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한 향수는 호주 이주민 백인이 원주민과 그 문화를 바라보는 관점을 반영한다. 영화에서 소녀를 연기한 Jenny Agutter는 2016년 The Guardian과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기억을 회상했다.

  "내가 경험한 그 세계(호주의 사막)는 진짜였죠. 자연, 사람들, 그곳의 삶을 포함해서요. 영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모든 게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아마도 내 자신이 좀 야성적으로 변했던 것 같아요(It really became our world, our community, our life. Coming home from Australia, everything felt completely alien. We’d all gone a bit feral)."

  16살 소녀 배우에게 '진짜'라고 각인된 광대한 호주 대륙의 자연은 놀라운 체험의 공간으로 남았을 뿐이다. 그와 유사하게 'Walkabout'은 백인 이주민, 정복자의 시선으로 이상화된 자연을 투사한다. 니콜라스 뢰그는 도시의 삶에 결여된 야생성을 인간의 본질로 간주한다. 그러나 결코 찬미하지는 않는다. 결국 백인들과 지내다 목숨을 잃는 원주민 소년은 '정복자/문명'이 가진 힘의 우위를 입증한다. 그 힘의 대결에서 오는 긴장과 불안을 그려낸 'Walkabout'은 침체된 호주 영화 부활의 신호탄이 된다. 그렇게 '새로운 물결(Australian New Wave)'이 밀려들고 있었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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