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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적 공포 영화에 구현된 미국의 인종 문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 1968)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흑인 남자 배우는 백인 여자 배우의 뺨을 때리라는 감독의 연출 지시에 무척 당황했다. 그는 감독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다. "그 장면을 넣은 영화가 개봉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정말 모르는 겁니까?"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 1968)'에 출연했던 여배우 Judith O’Dea는 당시의 일을 그렇게 회고했다(출처: atlantamagazine.com과의 인터뷰). 감독 조지 로메로(George A. Romero)는 자신의 첫 장편 영화에 신인 흑인 배우를 주연으로 캐스팅했다. 배우의 이름은 Duane Jones. 그는 영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로 학교에서 교편을 잡기 전에 잠시 연기 생활을 했다(후에 그는 영문학과 교수가 된다). 로메로가 존스를 캐스팅한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존스는 오디션했던 배우들 가운데 연기력이 가장 좋았다. 그렇게 듀웨인 존스는 기념비적인 공포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 영화에는 처음부터 정해진 대본도 없었다. 영화는 최소한의 예산으로 매우 경제적으로 제작되었다. 감독의 지인들이 스태프로, 촬영 장소 지역 주민들이 엑스트라로 참여했다. 비싼 컬러 필름 대신에 흑백으로 찍은 것도 다행이었다. 허술한 분장과 현장 세트의 결점을 무난하게 가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인 감독의 패기 넘치는 첫 장편은 좀비 영화(zombie movie)의 기원이 되었다. 잔혹하고 폭력적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제작비의 무려 250배에 달하는 엄청난 수익을 냈다.

  부모의 묘를 참배하러 왔다가 좀비에게 오빠를 잃은 바바라(주디스 오디아 분)는 인근 농가로 황급히 숨어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좀비를 피해 벤(듀웨인 존스 분)이 집으로 들어온다. 벤은 매우 차분하고 침착하게 좀비 무리와 맞설 준비를 한다. 그런데 그 집에는 벤과 바바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하실에는 아픈 딸과 그 부모, 두 명의 남녀가 숨어있었다. 시골 농가에 갇힌 사람들은 습격해 오는 좀비들과 일대 결전을 벌인다. 어떻게 좀비들이 나타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TV와 라디오에서는 그저 안전한 곳에 피신해 있으라고만 전할 뿐이다. 정부도 속수무책이다. 각자도생. 그런 가운데 흑인 벤은 좀비와 적극적으로 맞서려 하고, 백인 가장 해리는 구조될 때까지 지하실에 있을 것을 주장한다. 과연 이들은 좀비와의 대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오늘날의 관객들에게도 매우 흥미로운 텍스트이다. 이 영화에서 단연코 눈길을 끄는 캐릭터는 좀비와 용감히 맞서는 흑인 캐릭터 벤이다. 그는 매우 침착하고 용의주도하게 좀비의 습격에 대비한다. 침입을 막기 위해 집안 곳곳을 나무로 덧대며, 무기로 쓸 총기를 찾아내어 손질한다. 패닉 상태에 빠진 바바라를 진정시키는 것도 그의 몫이다. 벤은 해리와 헬렌 부부의 딸이 아픈 것을 보고 의약품을 구해올 계획을 짠다. 하지만 해리는 벤의 그 모든 것이 못마땅하다. 그는 외부의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지하실에 숨어있으려고만 할 뿐이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배우 시드니 포이티에(Sidney Poitier)가 보여주었던 캐릭터는 선하고 정의로운 흑인이었다. 포이티에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Guess Who's Coming To Dinner, 1967)'에서의 흑인 엘리트 청년, '밤의 열기 속으로(In the Heat of the Night, 1967)'의 열혈 형사, '언제나 마음은 태양(To Sir, With Love, 1967)'의 인간적인 교사를 연기했다. 그는 기존 사회 질서에 결코 위협이 되지 않는 순응적 흑인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다. 그와는 달리,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듀웨인 존스가 연기한 '벤'은 매우 전복적인 캐릭터이다. 벤은 공포에 질려서 이성을 잃은 백인 여자 바바라의 뺨을 후려친다. 그는 또한 자신과 대립하는 백인 가장 해리에게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 비합리적이고 독단적인 해리와는 달리, 벤은 매우 이성적으로 행동한다.

  이 영화에서 벤이 농가에 갇힌 사람들 중에 최후의 1인이 된다는 점은 그가 가진 탁월한 생존력을 입증한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남은 벤은 정부 구조대의 백인이 쏜 총알에 맞아 죽는다. 이러한 결말은 1960년대 미국내 인종적 갈등에 대한 영화적 반영이다. 백인에게 도전하는 흑인 캐릭터는 결코 영웅으로 남아있어서는 안되며, 안전하게 제거되어야만 했다. 이 영화 속 벤에게 닥친 비극과 현실은 분명히 닮아있었다. 듀웨인 존스는 당시 영화 촬영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겪었던 일을 회상한다. 차에 탄 백인 십 대 청소년들은 존스의 차를 위협적으로 추격했다. 존스는 영화 속 좀비와의 끔찍한 사투보다 흑인이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인종차별의 현실에 몸서리를 쳤다(출처: thetwingeeks.com).

  조지 로메로의 선구자적 위치는 '좀비'라는 가상의 존재를 영화로 끌어들였다는 데에만 있지 않다. 그는 비판적 관찰자로서 공포 영화 장르에 현실의 부조리를 적극적으로 구현한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인종 문제의 정치성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로메로는 자신의 또 다른 대표작 '새벽의 저주(Dawn of the Dead, 1978)'에서는 물질만능주의와 자본주의의 탐욕을 비판한다. 무차별적인 좀비의 습격은 현대인의 내면을 잠식하는 과도한 물질적 욕망과 등치된다. 로메로 영화의 분장과 특수효과는 오늘날 관객의 시각에서는 조악하기 짝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의 독창성은 공포 영화 장르에 동시대 사회 문제를 성공적으로 이식했다는 점에 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보는 관객들은 비좁은 시골 농가가 당시 미국 사회의 축소판임을 직관적으로 인식한다. 영화 속 벤에게 닥친 비극은 임계점에 이른 인종 문제의 선명한 예시로 각인된다.   

 


*사진 출처: vox.com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조지 로메로의 The Amusement Park(1975)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6/amusement-park19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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