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여동생의 뺨을 인정사정없이 후려친다. 여동생도 지지 않는다. 물건을 내던지며 자신을 때리는 오빠에게 달려든다. 그렇지만
남자의 손아귀 힘을 당해내기는 힘들다. 마당으로 밀쳐진 여동생은 그래도 흙바닥에 쓰러지지는 않는다. 급기야 분을 이기지 못하고
마룻바닥에 드러눕는다. '그래, 차라리 날 죽여. 죽여보라구!' 두 사람을 말리던 노모와 여동생은 허탈함에 눈물만 훔칠 뿐이다.
이토록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는 가족극이라니. 다른 감독이라면 몰라도 이 영화가 나루세 미키오의 필모그래피에 들어있다는 사실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그의 1953년작 영화 '오누이(Older Brother, Younger Sister)'는 원작이 되는 소설이 있다. 작가 무로 사이세이(室生犀星)의 단편 소설을 영화화했다. 나루세 미키오의 '안즈코(杏っ子, Anzukko, 1958)'도 무로 사이세이의 소설이 원작이다.
영화 '오누이'의 이야기는 패전 이후, 일본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영화가 시작되면 우리는 백발이 성성한 비쩍 마른
가장 아카자와 만난다. 그는 한때 직원을 70명이나 둘 정도로 잘 나가는 사업가였다. 전쟁 시기 하천 준설로 큰돈을 벌었으나,
이제는 무기력한 백수 가장이 되어버렸다. 늙은 아내는 강가의 낚시터 근처에서 구멍가게로 생계를 꾸려간다. 이들 부부에게는 삼남매가
있다. 첫째 아들 이노키치(모리 마사유키 분), 둘째 딸 몬(쿄 마치코 분), 막내딸 산(쿠가 요시코 분)이 그들이다. 도쿄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산은 오랜만에 부모를 만나러 온다. 집에는 남자와 사귀다 임신한 언니 몬이 와있다. 불같은 성미를 지닌 사고뭉치
큰오빠가 그런 여동생을 곱게 볼 리가 없다. 이 영화의 일본어 제목 '오누이'는 바로 이노키치와 몬을 가리킨다.
오누이의 치고박는 육탄전 못지않게 이 영화에서 눈길을 끄는 장면은 또 있다. 몬이 슬립 차림으로 나오는 장면이다. 우물가에서
몬은 물수건으로 목과 어깨를 천천히 닦는다. 이때 그 얇은 슬립이 흘러내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관객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씻은 후, 몬은 그 차림 그대로 마룻바닥에 누워서 잠이 든다.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들에서 여성의 육체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렇게
선정적으로 보여지는 경우가 있었던가? 정말이지 이 영화는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팬들에게는 특이하게 느껴진다.
이
남매의 갈등은 여동생이 사귀던 대학생 오바타가 집을 찾아온 것을 계기로 증폭된다. 몬은 집을 떠나 소식이 끊겼다. 그런 상황에서
오바타는 몬의 부모를 만나러 온다. 크게 화를 낼 것 같았던 아버지는 별 말 없이 오바타를 보낸다. 그런데 이노키치는 그럴 수가
없다. 그는 돌아가는 길의 오바타를 붙잡고 후드러팬다. 이노키치는 아기였던 몬을 등에 업고 키웠으며, 17살이 될 때까지 같은
방을 썼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 장면을 몬에 대한 이노키치의 근친상간적 욕망이 드러난 것이라고 보는 서구의 평론가도 있다. 물론 그
대사가 상당히 뜨악하게 들릴 법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남매 사이에 성적인 긴장감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면이 있다.
그렇다면 이노키치는 왜 그토록 여동생에게 분노하는가? 어떤 면에서 그것은 도덕적인 수치심과도 관련이 있다. 이
영화에서 몬의 직업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적어도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산이 사귀는 남자의 집안에서는
그러한 이유로 둘의 결혼을 반대한다. 집을 떠났던 몬이 3개월 후에 다시 돌아왔을 때, 비로소 몬의 직업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화려한 기모노 차림의 몬을 보며 동네 여자들은 수군거린다. 트럭을 타고 가던 남자들은 환호한다. 몬은 막내 여동생에게
자신이 일하면서 만난 남자들이란 죄다 시시하고 못믿을 존재였다고 털어놓는다.
그런데 몬이 화류계에 종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패전 이후 몰락한 집안 때문이다. 아버지는 과거의 영광에만 도취되어서 사는 패배자이이다. 석공으로 일하는
큰오빠는 버는 돈을 술과 도박, 여자에게 써버린다. 불쌍한 엄마는 구멍가게를 힘겹게 꾸려간다. 산은 언니가 벌어다주는 돈으로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전쟁의 그림자는 이 가족의 현재에 음울하게 드리워져 있다. 이노키치의 몬에 대한 분노는 자신을 비롯해
가족의 무너져 내린 삶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일 수 있다. 몬은 그러한 오빠의 간섭과 물리적 폭력에 대항한다. 이노키치와 치고받는
몸싸움은 몬이 가족의 과거, 가부장제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도쿄로
돌아가는 몬과 산의 모습이다. 비록 도쿄에 살고 있지만, 시골 본가에서만 얼굴을 보는 이 소원한 자매는 다정스럽게 대화를 나눈다.
언제 다시 집에 돌아오냐고 묻는 동생에게 언니는 말끝을 흐린다. 언니만 가족과 서서히 결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산은
간호사로 일하면서도 '조산사(助産師)' 자격증을 따려고 노력중이다. 안정적인 소득만이 산에게 대도시에서의 삶을 보장해줄 수 있다.
이제 이 자매의 삶은 시골이 아닌 도쿄에서 이어질 것이다. 나루세 미키오의 이 생경한 가족 멜로는 자매가 서있는 평화로운
시골길의 풍광에서 끝난다. 이후 나루세 미키오는 오누이가 거친 몸싸움을 벌이는 그러한 세계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 '안즈코(杏っ子, Anzukko, 1958)'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3/little-peach-195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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