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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뽑힌 이들의 슬픔, 청홍(靑紅, Shanghai Dreams, 2005)

 

  "내가 아는 건 우리는 상하이에서 왔다는 것과 우리 애들도 상하이로 돌아가야 한다는 거야."

  칭홍()의 아버지는 '상하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에게는 이 시골 촌구석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래 살던 곳인 상하이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다. 아버지 '우'는 아내의 분별력 없는 판단 때문에 상하이를 떠나서 십수 년 동안 시골에 처박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 가족이 상하이에서 그곳 꾸이양에 오게 된 것은 칭홍의 엄마 탓만은 아니다. 그 배경에는 문화혁명 시기 마오쩌둥이 추진했던 삼선건설(三線建設)이 있었다. 그것은 미국과 소련의 침략에 대비해 연안 지역(일선과 이선지역)의 주요 산업시설을 서북부 지역(삼선지역)으로 이전하거나 새롭게 공업 단지를 건설하는 정책이었다. 그에 따라 연안 대도시의 주민들은 강제적으로 이주해야만 했다.

  왕 샤오슈아이(Wang Xiaoshuai)의 2005년작 '靑紅'은 그 삼선정책으로 뿌리 뽑힌 삶을 살아야 했던 일가족의 모습을 담아낸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서 왕 샤오슈아이는 이 영화를 자신의 부모와 삼선에서 일했던 이들에게 바친다고 썼다. 강제적으로 시행된 당의 정책은 일반 민중들의 삶에 고통스러운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1980년대 개혁개방 정책이 시작되고서야 그들은 비로소 자신의 원거주지로 돌아갈 수 있었다. 칭홍의 아버지에게 그 기다림의 시간은 견딜 수 없는 모멸감을 안겨준다. 어떻게든 자신의 아이들은 그 깡촌 시골에서 벗어나 상하이로 가게 해야한다는 일념으로 그는 칭홍과 어린 아들을 엄격하게 훈육하고 다그친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된 칭홍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둘도 없는 친구 찐찐, 그리고 남자친구 홍껀이 있는 그곳에서 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마을의 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그곳 출신의 홍껀이 칭홍의 아버지 마음에 들 리가 없다. 칭홍의 뒤를 늘 따라다니며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가 하면, 홍껀에게는 칭홍은 언젠가 상하이로 돌아가야 하니까 네가 알아서 마음 접으라며 구슬리기도 한다. 아버지의 바램과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칭홍은 홍껀에게 이별을 고하지만, 홍껀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국 그 일은 예기치 못한 비극을 불러온다.

  영화의 초반부, 홍껀은 빨간 구두를 칭홍에게 선물한다. 구두는 예쁘지만, 시골의 돌길을 걷는 칭홍의 걸음걸이는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 친구 찐찐은 정말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지만, 칭홍은 그 구두를 다시는 신지 못한다. 그걸 본 아버지가 내던져 버렸기 때문이다. 시골의 흙바닥 돌길에는 어울리지 않는 그 빨간 구두는 마치 칭홍의 꿈과 소망 같다. 홍껀과의 마지막 만남에서 홍껀은 구두를 다시 주워왔다며 돌려주지만, 구두는 결국 더렵혀지고 버려진다. 칭홍의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버린다. 

  영화 속에서 칭홍은 붉은 색 스웨터와 재킷, 파란 색 바지와 같이 자신의 이름에 들어가는 색의 옷을 입고 나온다. 칭홍을 연기한 고원원의 하얀 얼굴은 옷의 색감을 더 부각시킨다. 극도의 고통과 상처의 기억을 안고 상하이로 쫓기듯이 떠나는 새벽의 차 안에서 칭홍이 두른 머플러의 색도 붉은 색이다.

  왕 샤오슈아이는 뿌리 뽑힌 삶을 살아야 했던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 현대사의 그늘을 들여다 본다. 가족의 삶에 드리운 회한과 고통의 상처는 쉽게 회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어쩌면 평생을 두고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청홍'은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함으로써 왕 샤오슈아이에게 영예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대외적인 호평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에서는 흥행에 실패했다. 역시 6세대 영화 감독 지아장커도 2004년작 '세계(界)'로 토론토 영화제 수상을 비롯해 인정을 받았지만, 그 영화 역시 중국 내에서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작품성 있는 영화들이 실질적인 흥행 수익을 내지 못하는 현실은 포스트 6세대 영화 감독들을 각성시켰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대중의 요구에 부합하는 상업성 있는 영화들을 찍기 시작했다. 그런 흐름에서 기존의 영화 감독들도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 어떤 면에서는 작품성을 희생시키고 상업성과 영합하는 댓가로 영화들이 조금씩 망가져가는 과정을 2010년 이후의 6세대 감독들의 영화에서 발견한다. 

  어쩌면 우리가 아는 중국 작가주의 감독들의 좋은 영화들은 점점 더 만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냉혹한 자본의 논리가 중국의 팽창하는 영화 산업을 지배하게 된 현실에서 과연 그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내가 '청홍'을 보며 느꼈던 슬픔의 정서는 단지 영화 속 청홍에게 닥친 돌이킬 수 없는 비극과 그 가족의 고통에서만 기인하지 않는다. 이런 괜찮은 영화들, 다소 거칠고 투박하지만 지난 역사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아낸 중국 영화들을 이제는 보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청홍'이 다룬 뿌리 뽑힌 이들의 슬픔은 6세대 감독들이 마주한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시대적 흐름에 따라 예술성이라는 자신들의 뿌리를 점차적으로 잘라내고 '자본'이라는 새로운 거주지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 그들. 영화 마지막에 상하이로 향하는 가족을 태운 차가 길고도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가는 모습처럼 6세대 감독들도 이 시대를 힘겹게 지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진 출처: cn-hanx-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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