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영화를 공부할 때의 일이다. 강의를 듣고 있는데, 어디선가 신경을 긁는듯한 소음이 계속 들려왔다. 나는 조용히 강의실
뒷문으로 나와서,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 나섰다. 영상원 본관 3층의 복도를 천천히 걸어가면서, 마침내 그 소리의 근원을
찾아냈다. 열린 교수 연구실 안쪽에, 희끗희끗한 머리의 한 남자가 이상한 악기를 천천히 두드리고 있었다. 홍상수였다. 그는 매우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악기를 두들기던 그가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약간 당황했는지, 잠시 연주를 멈추었다. 나는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동남아시아인지, 아프리카인지 원산지를 알 수 없는 악기 소리는 내가 다시 강의실에 도착할
무렵에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해 가을, 홍상수가 영상원 교수직을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 홍상수의 강의는 영화과 학생들에게 악명이 자자했다.
거의 강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홍상수가 영상원을 떠날 무렵에는, 자신의 영화를 찍어야 한다는 당위성과 교수직 사이에서의
줄타기가 형편없이 어그러졌다. 나는 홍상수의 그 지치고 지루했던 표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는 결국 떠날만한 때에 떠났다. 그건
학생들에게도, 그에게도 좋은 결정이었다.
어제, 홍상수의 2023년 작 영화 '물안에서'를 보았다. 러닝타임 61분의 이 영화는 대부분의 화면이 초점이 나간 상태(ouf
of focus)로 흐릿하게 나온다. 처음에는 또렷했던 화면이 인물을 제대로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로 나오니, 관객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다. 등장인물은 세 명. 배우로 활동하던 승모는
자신의 단편 영화를 찍겠다며 섬에 왔다. 승모와 동행한 사람은 촬영을 맡은 친구 상국, 연기를 할 여배우 남희이다. 승모는
아르바이트로 어렵게 모은 돈 300만 원을 들고 왔다. 그런데 정작 그는 시나리오조차 쓰지 않았다. 상국과 남희는 승모가 찍을
영화가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과연 승모는 자신의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영화 속 승모는 어떤 면에서 홍상수의 영화적 자아이기도 하다. 승모는 자신이 찍고 싶은 영화가 뭔지 모른다. 승모의 모습은
창작자가 늘 맞닥뜨리는 괴로움의 근원과 맞닿아 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하지? 물론 그 누구도 그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한다. 그 답을 찾는 것은 온전히 작가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홍상수에게 있어 영화를 만드는 행위도 그러하다. 그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거기에서 영화의 소재를 찾아낸다. 영화 속 승모도 그냥 섬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러다 바닷가에서 쓰레기를 줍는 젊은 여자를 만난다. 여자와 나눈 짧은 대화를 가지고 승모는 마침내 자신의 영화를
만들어 낸다.
더듬더듬, 마치 어둠 속에서 헤매듯 작가는 그렇게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그것은 포커스가 나간 화면의 비가시적인 불투명성과도
일치한다. 그리고 마침내 승모는 배우로서 자신의 영화에서 연기하면서 바다로 걸어 들어간다. 그가 화면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바다
깊이 들어갔을 때, 승모가 마주하게 되는 물속의 알지 못하는 세계는 창작자의 내면 그 자체가 된다. 작가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작가 자신도 알지 못한다. 승모는 우연히
쓰레기를 줍는 섬 주민을 만나고 나서야 자신의 영화를 찍기 시작한다. 우연(偶然)과 영감(靈感). 그것이야말로 승모에게, 감독
홍상수에게 영화를 만드는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다. 사실 홍상수의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 우연과 영감의 기이한
태피스트리(tapestry)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가지 드는 의문이 있다. 왜 배우로 연기만 하던 승모는 자신의 영화를 찍을 생각을 한 걸까? 상국이 그 이유를
묻자, 승모는 대답한다. 영화를 찍어서 돈을 벌 것도 아니고, 자신이 얻고 싶은 것은 결국 '명예'라고. 그것에 대한 열망이
승모를 미지의 세계로 이끈다. 승모에게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 하지만 그저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는 시작될 수 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무모한 열정이고 용기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승모는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 삼백만 원을 섬 주민과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영화적 세계로 치환한다.
승모라는 캐릭터를 통해 홍상수는 자신의 영화적 작업 과정을 반추한다. 그런데 그것은 홍상수 개인만의 특화된 방식이 아니다. 뿌연
물속에 있는듯한 불확실성 속에서 우연과 영감에 기대어 새로운 예술적 세계를 만들어 내는 일. 창작자, 예술가가 성취해 내는 예술
작업의 본질은 거기에 있다.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걸어가야 한다. 그리고 해야 할 이야기를 발견해 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작가의 숙명이고 명예가 된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도 모르게 '아, 홍상수!'하고 탄성이 나왔다. 홍상수는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다. 그가
작가로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결코 질리지 않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다음에 들려줄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무기력한 표정으로 이국의
악기를 두드리던 중년의 남자는 20년이 지난 후에도, 자신의 영화 속에서 일상성과 영화적 세계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준다.
'물안에서'는 홍상수가 사생활 논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작가적 명예를 지켜내고 있음을 여실히 입증한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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